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상> 남만을 비춰주는 거울

by 미라보 Feb 06. 2025

사랑하는 거울에게,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를 기억하니? 

벽 한쪽에 조심스럽게 걸려, 처음부터 너는 네 모습을 보려 한 적이 없었지. 너는 그저 묵묵히 다른 이들의 얼굴과 몸짓을 비추면서,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담아내는 데만 집중했어. 


네 안에서 누구는 아침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누구는 하루의 피로를 확인하며 한숨을 쉬곤 하지. 하지만 정작 너 자신은 한 번도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겠구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 중에서 너처럼 이타적인 것들이 또 있을까? 




영화, <백설공주>


동화 <백설공주> 속 거울은 매일 왕비의 질문에 답해야 했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왕비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했지만, 너는 진실을 말했어. 결국 그 솔직함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네 죄였을까? 네 안에 비친 모습은 단지 외형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진짜 얼굴이라는 걸 왕비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아.



영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


문학과 영화 속에서도 너는 언제나 남을 비춰주는 존재였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속 거울은 앨리스를 현실과는 모든 것이 뒤바뀌는 환상적인 세계로 데려갔고, <해리 포터>의 '이리세드의 거울'은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한 욕망을 비춰주었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았지만, 결국 그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며 현실을 잊었지. 



영화,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거울은 중요한 역할을 했어. 크리스틴은 거울 속에서 팬텀의 모습을 보았고, 그것이 그녀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지. <설국열차>에서도 열차의 앞과 뒤를 구분하는 유리창은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하며 사회적 계급을 반영했어. 거울은 단순한 반사된 이미지가 아니라, 때때로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비추는 창이 되었어. 


거울아, 난 때때로 네가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돼. 너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만, 정작 너 자신을 돌볼 기회는 없잖아. 네 앞에서 웃고 우는 사람들을 보며, 너도 함께 웃고 울고 싶지는 않을까?  



영화, <블랙스완>


<블랙 스완> 속 니나는 거울과 대화하며 점점 광기에 휩싸였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거울은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보여주었지. 거울이 단지 비추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도 드러내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신기하지 않아?


사실 우리는 모두 네가 닮고 싶은 사람들인지도 몰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상대방을 비추며 살아가잖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연인은 상대를 위해, 친구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살아가지만, 정작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지. 





선생님, 멘토처럼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학생과 멘티를 위해 조언하고 가르치지만, 때때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기회가 적지. 종교 지도자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야. 타인의 깨달음을 돕지만, 정작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고민하기도 하지.


너도 언젠가는 네 자신을 비추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마칠게. 


어쩌면 너는 이미 우리 모두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존재인지도 몰라. 항상 남을 비추지만, 결코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는 너이기에.


언제나 네 앞에서 서성이는 네 친구가.


P.S) 나는 내 자신보다 남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 적이 있었을까?

 

 

이전 14화 <일상> 민중적 서사, 양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