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묻는다.
좀 살아보니 사랑뿐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한다. 그 중에 라면도 포함된다.
어릴 시절, 라면은 그저 끓여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최고의 간식'이었다. 요즘처럼 다양한 과자들이 없던 시절, 생라면을 부신 다음, 스프를 적당히 뿌려, 봉지 채 흔든 후, 입안 가득 집어넣고 씹을 때의 그 바삭한 행복! 당시 여타의 과자들은 이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청소년기, 특히 고등학생 시절의 라면은 '저녁의 설렘'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전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던 탱글탱글한 라면, 몽실몽실 풀린 계란 국물에 도시락 찬 밥을 말아 먹던 그 행복감. 주말에도 야자를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물론 분식점은 주말에 쉬었지만).
청년기 때에, 라면은 '술안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대학 시절 친구들의 자취방이나 주점에서 계란 두세 알 풀어 넣은 라면 한 그릇에 소주잔을 부딪히던 그 밤들. 그때, 라면은 친구였고, 위로였으며, 의리였다.
그리고 직장에서 1,2,3차 회식이 끝난 후의 라면은? 풀 해, 베알 장, '해장국'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기서 잠깐, <백종원 라면땅 레시피>와 다른 방법을 공개한다. 라면을 뽀개 전자레인지에 30초에서 1분 정도 돌린 뒤, 스프를 찍어 먹으면 고소하면서 짭쪼름한 맛의 간단한 술안주가 된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이제 라면과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예전처럼 자주 먹지도,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혼자 있거나, 캠핑, 여행같은 예외적인 날에만 먹는 특식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특별한 날에도 예전만큼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너무 많이 먹어서 식상한 걸까, 아님 내 입맛이 변한 걸까? 그것 또한 아니면 세상의 익숙한 것들과 서서히 이별할 때가 되어서 그런걸까?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닌데..)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답을 찾았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더라면, 취업이 아닌 사업을 했더라면, 그(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돈을 더 모았더라면, 더 열심히 놀았더라면, 악기 하나쯤 배웠더라면" 등등..
이런 가상의 라면들이 실제 라면들과 뒤섞여 질린 것이다.
다니엘 핑크의 <후회의 재발견>을 보면, 인간은 기반성, 대담성, 도덕성 그리고 관계성 후회 등 네 가지 핵심 후회를 한다고 정의했다.
더불어, 후회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 스스로 발전할 수 있었던 열쇠임을 역설한다.
인간은 누구나 후회한다. 하여, 가상의 라면을 많이 먹었던 것은 당연했다. 이제라도 줄이면 된다.
라면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는 말도 들리곤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라면의 영양 비율은 대략 탄수화물 60 %, 지방 10%, 단백질 30%로 꽤 균형 잡혀 있다. 다만 국물은 가능한 적게 마시는 것이 좋다. 나트륨 때문이다.
라면에 치즈나 계란을 넣으면 부족한 칼슘과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대파나 김치를 더해 식이섬유를 채워보자.
2023년 기준 국내에서 판매되는 라면의 종류는 무려 557종에 이른다. 골라 먹는 재미도 있지만, 이쯤 되면 한 가지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