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에 꺼낸 서른셋의 일기
#1. 아침에 일어나서
6시 40분에 어제 얘기를 나누었던 친구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도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잤는데, 지금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오늘 너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전에 트랜짓 센터에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미안함을 전했다.
9시 30분에 일어나서 씻고 온 사이에 왠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식사 하시려면 식당으로 오세요”
나는 약속을 지키지도 못한 미안한 사람인데,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어주다니...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양파를 까면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함께 볶음밥을 준비하면서 아침을 함께 하고... 감사한 마음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 마음으로 보낼 뿐이었다.
#2. 마운트 쿠사
그 친구와 함께 마운트 쿠사행 버스를 탔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브리즈번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지만,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그와 함께 나누던 대화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이렇게 마음이 통하면서 얘기해보는 경험은 아마도 처음이었던 듯...
#3. 저녁시간과 함께 한 술 한잔...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 숙소로 올라와서 짐을 꾸렸다. 호주에 와서 맛보는 신라면의 그 맛은 군대에서 처음 먹었던 컵라면에 비기는 맛이었다. 이후 내일 출발할 옷가지를 정리하고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창조자에 대한 이야기.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
떠나지 못하는 유령에 대한 이야기.
인간 진화에 대한 이야기.
철학, 과학, 인문, 예술에 대한 공통된 이야기.
여행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
군주와 모사에 대한 이야기.
......
8시에 시작한 대화가 새벽 2시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되어 지금 숙소에 들어와 있다.
서울을 출발할 때 팩소주를 5개를 준비해왔었다. 그 중 하나를 그에게 선물로 남기고 하나를 함께 나누어 마셨다. 여행을 열심히 즐기는 나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선물이지만, 그 소주가 너무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마실 수 있음이 더욱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대화를 마치며 연락처를 나누는 대신 시드니에서의 우연을 다시금 기약하기로 했다.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통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만날 수 있겠지.
설령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기에 서울에 다시 가서도 나는 그를 만날 수 있기에 걱정 따위는 남기지 않는다. '배기석'
내일은 브리즈번의 일정을 마치고 골드코스트로 향한다.
아직 내 여행에 대한 질문을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그 질문을 완성하고 그 해답과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신이 나의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내가 실천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줄 수 있음을 믿는다.
“병주야, 사랑해”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