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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표현

너의 의미

by 강인한 Mar 01. 2025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있다. 분명히 느껴지는데,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면 어쩐지 입에서 단어가 자꾸 걸렸다. 그래도 최대한 풀어서 말을 해 보려고 했지만 비슷한 느낌만 있을 뿐,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완벽하게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나의 어휘력에는 분명 문제가 없었다. 이 느낌을 설명하고자 사전까지 찾아봤지만 내 마음에 드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 동안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속 시원하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 감정은 친구가 던진 한 마디에 너무 쉽게 해결되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안 좋아 보이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걸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당시 나는 말로 본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데, 굳이 비언어적 표현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비언어적 표현은 분명히 필요했다. 동시에 그것을 알아차리는 친구의 능력 또한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기분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 고요 속에서 어쩌다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평소에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의 표정. 그 사람의 주변에서 피어나는 분위기. 찌릿- 하는 느낌과 비슷한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의 표현들. 이런 것들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욱 강한 정보와 감정이 흘러들어온다. 그만큼 사람의 감정이란 복잡하다. 단순히 말로 표현하기엔 사람의 감정이란 너무나도 깊고 드넓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숨기고자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표정과 행동으로 크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동공의 축소, 시선 처리 등 아주 미묘한 차이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한 무언의 표현들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친구의 한 마디가 없었더라면, 나는 끝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바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상대방에게 신경을 쓰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가 항상 의식하지 않는다면 무언의 표현들은 시야에서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을 겪을 때, 빠르게 알아차리고선 그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시야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의 심리를 읽고 거기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인지하기에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소통 방식이 미묘하게나마 변화하는 것이다. 굳이 ‘나 힘들어’라고 말해야지만 ‘그래, 너 힘들었겠구나’라고 반응하는 방식이 아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위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를 더 잘 알아봐 준다면, 상처받더라도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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