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겨울은 종말을 고했지만, 계절이 남긴 향기는 아직 여전하다. 수많은 초록 잎들은 그 색을 잃어가며 말라붙었고, 남아 있던 몇 개의 잎사귀마저 이제 곧 떨어질 것이다. 춥고 배고팠던 나날들이었다. 굶주린 나무의 앙상한 손가락들은 하늘을 향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원하는 듯 자꾸만 하늘을 향해 그 손바닥을 뻗어나갔다. 칼바람이 불 때면, 나무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구멍 난 창호지처럼, 차가운 바람은 가지 사이를 누비며 나무를 너무나도 쉽게 괴롭힐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지 못했다.
“이제 슬슬 꽃이 피려나 보네.”
“무슨 말이야?”
“저기 나뭇가지 끝에 꽃봉오리. 보여?”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차가운 기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 나무는 변해있었다. 그것은 아주 미묘한 변화였다.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무의 손가락 끝에 작은 꽃망울이 생겨나고 있었다. 구 꽃망울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아직 꽃이 피기까지는 꽤 남았지만, 나무속에는 분명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었다.
대견했다. 참 대견했다. 춥고 배고픈 삶 속에서 포기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지만, 나무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버텨냈다. 그 꽃망울은 따뜻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춥고 배고픈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마음이 앙상하게 식어간다. 웃음도 잘 나오지 않고, 외부에서 조금만 충격을 받더라도 쉽게 우울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겨울을 버티며 봄을 맞이하는 나무의 삶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설계되어 왔다.
무엇이 우리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는가?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나뭇잎을 떼어내며 그 몸을 움츠린다. 화려한 꽃의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한다. 그렇게 아낀 에너지로, 새로운 생명은 싹튼다. 우리도 꽃의 순간을 위해서 몸을 움츠리곤 한다.
취업 준비를 위해 밤낮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을 위해 잠깐의 멋을 포기한다. 몇 년간의 힘든 순간임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도, 미래의 행복한 순간을 위해서 하루. 또 하루를 버텨낸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는 학생들, 노년에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사람들.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따뜻함의 이름은 희망이다.
희망은 꽃의 순간을 노래한다.
추위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이제 곧 나무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화려한 꽃이 그 자리를 채워나갈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 손에, 한가득 꽃이 담기게 될 것이다. 앙상하던 나무는 꽃의 순간을 맞이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가감 없이 향으로 표현할 것이다. 그러면 벌과 나비가 모여들게 될 것이다. 현재 당신의 인생이 춥고 배고픈 순간의 연속일지라도 조금만 참고 견뎌보자. 꽃망울은 추위 속에서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혹독한 추위가 덮치면 그 몸을 더욱 움츠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희망을 움켜잡자.
시간이 지나면, 화려한 꽃길이 내 앞을 가득 채울 것이고.
그 순간은 분명 짜릿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