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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 엿보기

짧고, 긴 쾌락

by 강인한 Mar 29. 2025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열심히 해온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잠자기, 다른 하나는 유튜브 쇼츠 보기다. 딱히 무언가 할 일이 없을 때, 그렇지만 재밌는 자극을 찾고 싶을 때. 유튜브 쇼츠를 보면 시간도 잘 갔고, 제한된 시간 내에 다양한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을 켜면 무의식적으로 유튜브 쇼츠부터 보게 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이전에는 영상을 몇 시간씩 봐도 재밌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 구석 어딘가 공허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 빈 곳을 또 다른 마음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정확하게 언어로 설명을 하자면 힘들다. 그래도 최대한 비슷하게 말해보자면,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영상을 넘기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불편함. 시간을 허투루 소비하고 있다는 죄책감. 보면 볼수록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지 않아 드는 답답함과 불안함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복적인 흡연 행위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언젠가 무심코 길을 지나가다가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유튜브 쇼츠를 계속 보는 행위와 담배를 끊지 못하는 누군가의 흡연은 분명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자극을 주고, 힘들지 않고,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까.


유튜브 쇼츠가 문제라면 단순히 그것을 보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나는 왜 그러한 행동이 공허함을 가져다주는지 그 이유를 파고들어야만 했다.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유튜브 쇼츠가 아닌 다른 이유로도 비슷한 경우를 겪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나를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흐름은 어쩐지 싫었다.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책도 살펴보고, 검색도 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그것에 대한 해답을 얻은 건, 한낮 최고 온도가 15도를 넘었던 어느 봄날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기에 밖에 나가서 독서를 하다, 우연히 고대 그리스 철학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쾌락에 관한 논제였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이다.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할 경우 쾌락주의의 역설에 빠질 우려가 있어 이를 추구하지 않았다. 쾌락주의의 역설이란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강도가 높은 쾌락을 원하게 되어 결국에는 고통과 근심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히 내가 겪었던 상황과 똑같았다.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은 더 강도 높은 쾌락을 달라는 신호였다. 처음엔 짜릿했던 자극도 반복되면 무뎌진다.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고, 결국 허기만 남는다. 그것은 끝없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된 순간부터, 내가 하는 행동에는 하나의 의문이 붙게 되었다.


 ‘이 행동이 순간적으로 끝날 쾌락일까?’


단순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다양한 인생의 경험에서 생겨날 수 있는 공허함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역설적으로 계속해서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행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에피쿠로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유튜브 쇼츠를 완전하게 끊지는 못했다. 가끔은 자극적인 음식도 끌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더는 유튜브 쇼츠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내 인생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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