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종착지에서 일을 끝마친 버스가 한숨을 내 쉬었다.
‘후-’
정확히는 에어 파킹 브레이크 소리였지만, 분명 나에게는 버스가 한숨을 내뱉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버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한숨은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이었을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지쳐버린 기계의 한숨이었을까.
물어보지도 못해서 여간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도 어쩌면 답답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지 모른다. 뭐라 말해보기도 전에, 버스는 지쳤다는 듯 주차장으로 스르르 들어가 빛나던 눈을 감으며 깊은 잠에 들 뿐이었다. 그리고 한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나는 왜 그 소리를 한숨이라고 느꼈을까.
어쩌면 우리도 저 버스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힘을 다하는 삶. 에너지가 떨어지면 밥을 먹고 다시 일하러 나가는 삶.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는 위안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스르륵 잠에 드는 그런 삶. 우울한 한숨은 도시를 덮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한숨을 몰라준다. 그 소리는 너무나도 조용하기에, 세상 소리에 쉽게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각자 내면 속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한숨을 듣지 못한다. 어쩌면 서로의 한숨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편이 더욱 편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 어디선가 불편함이 느껴지곤 했다. 분명히 맞는데, 맞아서는 안 되는 사실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그런 불편함을 안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버스를 탈 일이 있어 교통카드를 찍고선 뒷좌석에 앉았다. 여러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들의 행동도 다양했다. 그 모습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불편함은 이내 모습을 감췄다.
나는 버스의 시점을 놓치고 있었다. 반복되는 삶에 지친 나의 일방적인 투사였다. 버스는 반복되는 노동에서도, 분명히 그 삶의 의미를 지켜 나가고 있었다. 버스는 걷기 불편하신 노약자 분들을 먼 곳까지 편하게 태워드리고, 공부하러 가는 학생들에게 잠깐의 독서실이 되어주며, 직장인들에게 사소한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았다.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의 한숨은 하루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안도의 한숨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사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내는 하나의 숨결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삶이 비록 고되고 힘들지라도, 그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희생을 통해 세상은 돌아간다. 그렇기에 당신의 한숨은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서로의 한숨을 다독여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보람찬 일을 하더라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수고했어 ‘ 진심 어린 한마디 남겨줄 수 있는 그런 사소한 관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불어오는 희망찬 숨결로 도시에 덮인 우울한 한숨을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의미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당신은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하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