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악장
.
“너의 연주에는 감정이 없어.”
달이 국제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3악장이었다. 음정의 실수는 없었다. 박자 또한 정확했다. 따뜻한 손가락의 끝이 차가운 건반에 닿는 순간, 달은 페달을 밟아 전투의 시작을 알렸고, 건반들은 늘 연습해 오던 전술에 익숙한 병정들처럼 빠르고 정교하게 관객 사이의 깊고 어두운 공간을 노렸다. 몇 번의 빛이 번쩍였고, 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익숙한 클라이맥스. 예측할 수 있는 절정의 순간. 1년간의 연습은 단 몇 분의 전투에 의해 무너져버렸다. 패잔병에게 주어진 기회는 더 이상 없었다. 콩쿠르 이후 달은 사람들에게 감정이 없는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을 뿐이었다.
그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는 점차 흐려졌고, 청중의 박수 소리는 먼 메아리처럼 희미해졌다. 손끝에 남아 있던 차가운 건반의 감촉도. 그의 기억 속에서 자꾸만 옅어져만 갔다. 뜨거운 태양 빛과 거실 천장에 반쯤 꺼져있는 등 따위를 보는 순간마다, 달은 스스로가 희미해지는 듯했다. 빛이 드는 곳에 아주 잠깐 머물더라도 그곳은 곧 무대가 되었으며, 그것은 달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는 어디에도 쉽사리 머무르지 못했기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거리를 덮는 순간은, 달의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목적은 없다. 검정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다, 운이 좋다면 자극적인 장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은밀한 취미였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 한밤중 다툼을 벌이는 연인,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고성, 가로등 아래 홀로 담배를 피우는 청춘.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 한편이 묘하게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살아있구나. 내 존재는 아직 남아 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해가 뜰 무렵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달이 거리에 모습을 비춘다. 서울 도심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건물의 불빛들은 안간힘을 다해 어둠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12월 31일. 한 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었다. 달은 주머니 속으로 차가운 손을 밀어 넣었다. 입김이 허공으로 하얗게 퍼져 나갔다. 곧 눈이라도 내릴 것만 같았다.
가로등 불빛은 그를 계속해서 주시했고, 사람들의 들뜬 대화는 스스로를 향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그 빛과 소리를 피하듯 달은 점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안단테에서 알레그로. 그리고 템포 주스토. 도심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넓어져만 갔다.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골목. 검정으로 물들어버린 반지하 주택의 반쪽짜리 창문. 스산함만 가득한 거리에 접어들자 달은 내심 안심하며 그제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빛이 닿지 않는 이곳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달은 깊게 눌러쓴 모자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웃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공허만이 가득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그 농도가 더욱 짙었다. 달은 자신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꺼내 가만히 쳐다보았다. 싸구려 로션을 바른 그의 손은 투박하고 볼품없었다.
“아까 3마디, 음정 틀렸잖아. 다시. 처음부터.”
기계적인 연습의 반복. 한 곡이 지나면 끝없는 다카포. 누군가 적당한 재능은 저주라고 했던가. 어렸을 적, 달은 피아노에 있어 적당한 재능을 타고났다. 달이 7살이 되었을 무렵, 햇볕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오는 거실. 그날따라 바람은 기분 좋게 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달은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을 연주하고 있었다. 조금은 어설프고 박자 또한 이상했지만, 그것은 분명 베토벤의 비창이었다. 아다지오 칸타빌레. 작은 새가 느리지만 노래하듯 은은하게 집 안으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불행은 달의 아버지 영수 씨가 그 연주를 들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달아, 너 이 곡 누가 알려준 거야?”
“아빠가 저번에 치는 거 듣고 쳤어.”
영수 씨는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저 그런 피아니스트였다. 중앙 음악콩쿠르, 베토벤 콩쿠르, 음악 저널 콩쿠르 등 국내 여러 콩쿠르에 매년 3번 정도 도전을 해 보았지만, 본선에 단 한 번 진출한 것 빼고는 번번이 예선 낙방이었다. 그럼에도 영수 씨는 음악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달은 보면서 자라났다. 어찌 보면 피아노를 칠 수밖에 없는 운명. 어릴 때부터 건반이 익숙했던 달. 그 후부터 달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루에 4시간씩 강제로 피아노 연습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말해도 달은 같이 갈 수 없었다. 몰래 가더라도 조금만 늦는다 싶으면 영수 씨에게 전화가 오곤 했다. 일주일에 28시간. 그렇게 10년. 14,600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쩐지 달의 내면 어딘가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가서는 그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게 되었지만.
“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야만 해. 그래야 우리 가족들도 다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영수 씨는 가끔 술에 취한 날이면 저런 소리를 달에게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달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동들이 올라왔다. 그 충동은 달이 자신의 손을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학대하도록 유도했다. 체육 시간에 농구하다가 의도적으로 손을 다친다거나, 종이에 베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도 얼마 가지 못했다. 한 달이 채 안 되어 자꾸만 다치는 달에게 이상함을 느낀 영수 씨는 학교에 전화하였고, 달이 농구하다가 실수로 손을 다쳤다는 거짓말은 담임선생님과의 전화 한 통으로 너무나도 쉽게 들통나고 말았다. 그날 이후부터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영수 씨는 달이 스스로를 또 해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부터 했다.
달이 교실에서 앉아 있을 땐, 주변 친구들의 모습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조용한 교실 안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살랑살랑 흔들리는 커튼. 그 순간만큼은 마치 스스로가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함께 노래방에 가서 놀다 오거나 어제 봤던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달은 어쩐지 그믐달처럼 작아져만 갔다. 그들의 부모님은 저녁 늦게 놀 때면 계속해서 전화를 하진 않을 것이다. 통금이 있더라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 드라마를 보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녹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달의 세계와는 달랐다.
달은 이내 투박한 손에 머무른 시선을 치우고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시간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평소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던 달이었지만, 오늘은 그에게 하나의 작은 약속이 잡혔다.
‘국제 콩쿠르 3등. 과분한 결과지만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달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미주의 게시물을 보게 된 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았을뿐더러, 맞팔로우가 되어있는지조차 달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올린 게시물 속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달이 잊고 있었던 기억들도 한 번에 올라왔다.
“피아니스트는 손이 생명이야.”
미주는 달이 막 성인이 되기 전, 같이 예대 입시 준비를 하던 달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녀는 마치 피아노를 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실수는 꽤 잦았지만, 연주 난이도가 극악으로 평가받는 리스트의 초절기교를 아직 연주 방식이 정립되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완벽하게 소화를 해냈고, 그녀의 연주가 유튜브에 올라갔을 땐 세간에서 꽤 주목을 받았다.
긴 생머리에 작은 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배치된 눈코입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옆에 있으면 여름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비가 온 뒤 축축하게 젖은 초록 잎의 냄새. 습기로 끈적하지만 그렇기에 느껴지는 생명의 냄새. 달의 향기를 굳이 따지자면 겨울 냄새에 가까웠기에 달과 정반대인 그녀의 향은 달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평소의 달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게시물을 우연히 보게 된 순간, 달은 잔향처럼 남아버린 그녀를 생각하며 '좋아요'를 눌렀다. 어디까지나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좋아요'를 누른 순간 달은 후회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다. 분명 답장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달아. 잘 지내지? 오랜만이다.”
하지만 다음날, 달의 예상과는 달리 미주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의 걱정은 그녀의 연락 하나로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 버렸다.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달은 하루를 써가면서 고민했다. ‘그럼 잘 지내지.'라는 기계적인 대답으로 끝낼 수도 있었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 다시 생각해 보니 달은 그녀에게 잘 지낸다고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현재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 솔직하게 보내자니, 그녀에게 동정의 대상이 될 것만도 같았고 그것만큼은 달에게 있어선 답장을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었다. 달은 자신의 사소한 인사에 연락까지 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달은 오리가 꾸벅 인사하는 이모티콘 하나와 축하한다고 응원하는 이모티콘을 이어서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귀여운 아기 곰돌이가 춤을 추는 이모티콘으로 시작한 답장은 곧이어 화면을 쾅 치는 이모티콘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은 ‘말을 하세요…’하고 협박하듯 곰돌이가 나무 배트를 들고 있는 이모티콘으로 끝이 났다. 달은 그제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콩쿠르 영상 잘 봤어. 대단하더라.’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고마워. 안 그래도 이번에 한국 잠깐 갈 일이 있어서. 너 시간 괜찮으면 얼굴 한번 볼래?’라는 대답을 받았다. 오늘 달에게 생긴 작은 약속은 사소한 '좋아요'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달은 가로등 불빛도 닿지 않는 골목길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작은 술집 앞, 젊은 남성 두 명이 얼굴을 맞대며 서로를 밀쳐대고 있었다. 둘 다 술이 꽤 되어 보였지만, 비틀비틀거리면서도 그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숨죽여 눈으로 담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씨발. 술 잘 먹고 있는데 왜 계속 꼬나보시냐고”
“씨발? 야. 씨발?”
남자는 욕에 꽂힌 듯싶었다. ‘씨발’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른 문장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몸싸움. 그것은 언젠가 달이 보았던 UFC 격투기 선수같이 멋진 싸움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초등학생들이 싸울 때의 몸싸움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달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것부터 시작된 싸움은 한 남자가 넘어지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쓰러진 남자 위로 빠르게 올라탄 또 다른 남자는 그제야 주먹을 쓰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자신이 바닥을 치는 건지, 앞의 남성을 치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듯 보였지만 그 남자는 분명 울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도 날 무시하는 거냐고…’ 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약간의 저항을 하다 이내 포기하곤 가만히 맞고 있던 남자 또한 무언가 말을 중얼거렸지만, 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입 모양의 변화에 집중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들려왔기에, 어쩐지 그 남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만 싶었다. 더 다가가기는 위험했지만 두 남자는 서로의 세계에 빠진 상태다. 달이 조심스럽게 지나가기만 한다면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달은 두 사람을 향해 살며시 다가갔다. 올라탔던 남자는 만취한 상태에서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본능적으로 어두운 골목길을 향해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그의 손은 붉었고, 곧이어 그 손에서 나는 비린 향조차 어둠 속에 삼켜져 버렸다. 이제 남은 건…
‘… 나 좀 꺼내주세요.’
하늘을 바라보며 뻗은 남자는 자신을 꺼내달라는 말을 하며 달의 발목을 붙잡았다. 남자의 손이 달의 발목에 닿은 순간, 달의 표정은 바뀌었다. 살려달라는 말을 달에게 했다면, 달은 쓰러진 남자를 병원에 데려다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의 말은 보기 좋게 달의 예상을 벗어났다. 이상하고. 또 기묘했다. 달은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뛸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의 골목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달은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뛰었다. 숨이 차올랐다. 그래도 달은 뛰어야만 했다.
‘꺼내주세요.. 나 좀 꺼내주세요…’
남자의 말은 달을 계속해서 쫓아왔다. 그 목소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벗어난 그제야 멈췄다. 큰 한숨을 들이쉬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달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그건 달에게 문제가 될 것이 아니었다. 잠시 진정이 되고 난 후, 달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의 모습이 어쩐지 두 개로 보였다. 달은 분명히 하나였지만, 골목길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달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명확하게 나뉘어있었다. 중요한 건 달이 얼마큼 기울어져 있느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