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부호

2.

by 강인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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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기 전, 이모에게 받은 초콜릿 하나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하지만 주머니 너머로 초콜릿이 불쑥 튀어나왔기에 그것을 다시 꺼내 팬티 속에 넣고 현관문을 열었다. 몇 시간 동안 갇혀있던 알코올 냄새가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눈을 감고 코를 막았다.


“왜 이렇게 늦었냐.”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이시면서 꺼져가는 말투로 말했다. 대답 대신 조심스럽게 검정 봉투를 아버지의 앞에다가 가져다 놓았다. 아버지는 봉투를 뒤적거리다, 에쎄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윽고 아버지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다. 그것은 추운 겨울날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과 같은 입김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눈은 연기가 들어갈수록 생기를 되찾았다. 푹 숙여진 고개는 담배가 짧아질수록 점점 자신감을 되찾아갔다. 고개가 완전히 펴진 순간, 아버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내 쪽으로 쭉 뻗었다.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걸렸구나’


팬티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초콜릿을 아버지의 손바닥 위에 올려다 놓았다. 딱딱했던 초콜릿은 어느새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아버지의 표정은 순식간에 짜증으로 뒤덮였다. 초콜릿이 녹아버려서 화를 내시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초콜릿을 받고 난 뒤에도, 아버지는 그 손을 내리지 않으셨다.


“아니. 이거 말고.”

손 위에 있던 초콜릿은 철퍽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정말 더 가진 게 없었기에 제자리에 서서 입을 앙다물었다. 답답하다는 듯 내쉬는 한숨 소리가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거스름돈. 안 받았냐.”

“이모가 외상값도 안 나온다고 하셨어요.”

“그러냐.”

아버지는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쉬고, 내 얼굴을 향해 내뱉었다. 연기가 매워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초콜릿을 다시 주워 방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아버지는 나를 멈춰 세웠다.


“야. 그거 놓고 가라.”


속으로 집 밖에서 먹고 들어갈걸 하고 몇 번이고 후회했다. 아버지의 빈 손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채워지긴 했다.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뒤돌았을 때,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흐물흐물해져 버린 초콜릿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새끼… 지 애미 닮아서 속이 음흉하기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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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했던 기분은 창문이 점점 검어질수록 어쩐지 나아져만 갔다. 별이 도쿄 하늘을 지나, 자유의 여신상을 거치고, 시드니에서 뛰어노는 캥거루와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만나러 온다. 학교에서 맞은 손바닥이 아직도 얼얼했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 어쩐지 내가 상상한 존재들과 똑같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티브이 소리도 잠잠해졌을 때쯤,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아버지는 코를 골며 새우잠을 자고 계셨다. 하얀 러닝에 회색 반바지를 입은 아버지의 등 뒤에 절반 정도 남은 소주와 초콜릿 한 조각이 있었다. 조심조심 다가가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달았다. 어쩐지 갈색 입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기 전,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별의 시선은 이런 것일까? 모든 게 한눈에 보였다. 집집 사이 보이는 구불구불한 골목들. 그 사이 골목을 지키고 있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 그 끝에서 엄마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실눈을 뜨고선 엄마의 표정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곳까지 나의 시선이 닿지 못했다. 문득 팬티 바람으로 쫓겨났던 그날, 별은 우리의 표정을 확인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한 별 중에 가장 밝고 선명하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별. 다행히 별은 어제와 똑같은 위치에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을 한번 깜빡였다.


깜빡.


어제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궁금한 점이 많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차고 넘쳤다.


“안녕 난 수호야 넌 이름이 뭐야?”


주변 이웃들이 듣지 못하는 정도의 크기의 목소리로 별에게 말을 걸었다. 잠잠했다. 순간, 오늘 교실에서 본 친구들의 행동이 떠올랐다. 양손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에도 역시 잠잠했다. 텔레파시란 건 순 엉터리였다. 별은 내가 눈을 깜빡거릴 때만 짧고 길게 반응했다.


순간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개그 프로그램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주제는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과 검은 눈을 가진 동양인의 대화였는데, 서로 무언가 열정적으로 말하지만, 이후 무슨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는지 물어보니 각자 전혀 다른 내용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손짓발짓을 다 써가면서 설명했지만, 연결되지 못하고 무의미한 몸짓만이 서로의 기억 속에 남았기에 그 모습이 우스워 한동안 깔깔댔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 나는 한국어. 너는 별의 언어. 말이 통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언어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할 일이 생겼다.


시선은 다시 동네로 내려왔다. 어느새 엄마는 집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제야 엄마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를 맞이하러 달려 나갔다. 폭신폭신한 엄마의 품에 안긴 그 순간, 따뜻한 냄새가 났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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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숫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000번부터 900번까지 분류된 책들을 차근차근 확인해 나가다 내 시선은 700번에서 멈췄다. 바로 이곳이다. 운이 좋다면, 별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리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부터 나의 일과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행동이 하나 추가되었다. 마구잡이로 몇 권의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딱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만 남아서 조사를 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그 며칠이 쌓여 몇 달이 흘렀다. 나의 옷은 서서히 얇아졌고, 밤은 점점 짧아져만 갔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 한구석 어딘가 자꾸 조급해져만 갔다. 마땅히 이렇다 할 수확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 칠천백삼십구 개의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 수많은 언어 중에서 별의 언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별의 언어라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영어부터 시작해서 이름 모를 크메르어까지 싹싹 살펴보았지만, 작은 단서 하나조차 나오지 않았다.


“수호야. 무슨 일 있니? 표정이 좋지 않구나.”


그 몇 달간 사서 선생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선생님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알아보았던 언어조차 별의 언어와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사서 선생님은 내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눈치챘다. 입을 한가득 앞으로 죽 내밀고 발끝을 쳐다보았다. 꼼지락. 꼼지락. 발가락에 괜스레 화풀이했다.


“무언가 찾고 있는 게 있니?”

“… 별의 언어요”


선생님의 표정은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활짝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 참 멋진 언어구나!”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이끌었다. 손이 부드러웠다. 엄마의 향이 나는 것만 같아 어쩐지 포근해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500번 과학 분야 책들의 앞이었다.


“이곳이면 네가 원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원한다면 선생님이 대신 찾아 줄 수 있어. 하지만 수호 스스로 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몇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왔었잖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드러운 감촉을 조금만 더 느끼고 싶었다.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표정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쪼그려 앉아 밑에 있는 책들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은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다,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책장을 잠시 훑어보았다. 시선이 책장 오른쪽 구석에 닿았을 때, 하나의 책 제목이 내 눈에 들어왔다. ‘비밀의 메시지’. 책을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 쭉 읽었다. 어느덧 집에 갈 시간이 되었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스부호는 점(·)과 선()의 조합으로 문자와 숫자를 표현하는 통신 방식으로, 1830년대에 새뮤얼 모스에 의해 고안되었다. 주로 전신, 무선통신, 조난 신호(SOS) 등에서 사용되며, 빛이나 소리, 진동 등 다양한 매체로 전달할 수 있다. 단순한 구조지만 거리와 언어의 한계를 넘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암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특정 부분은 말이 너무 어려웠기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단순히 짧고 긴 깜빡임만으로도 먼 거리에 있는 상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이것은 분명 별과 내가 이야기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모스부호. 그것은 별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모스 씨는 어쩌면 별과 대화를 해 본 첫 번째 인류가 아닌가 싶었다. 유레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팔을 쭉 뻗었다. 사서 선생님이 놀라 달려오셨지만 웃으면서 책을 들고 학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정문을 나오면서 별을 올려다보았다. 이젠 우리는. 그러니까 별(어쩌면 외계인일 수도 있다.)과 나는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우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마음들을 담아 마구잡이로 눈을 깜빡였다. 별도 나의 깜빡임에 기뻐하며 화답하는 것만 같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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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언어를 알게 된 순간부터 학교가 끝나면 더는 도서관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방에 틀어박혀 ‘비밀의 메시지’만 봐댔다. 그 책을 보고 있을 때면 나는 마치 첩보 영화에 나오는 요원이 된 것만 같았다. 방문 앞에 조금의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재빨리 책을 이불속으로 숨기곤 자는 척을 했다. 책 내용은 어려웠지만, 이러한 조용한 첩보 행위는 나에게 꽤 스릴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별에게 어떤 말을 할지 상상했다. ‘안녕 나는 김수호야. 너는 이름이 뭐니? 나는 11살이야. 너는 정말로 외계인이야?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쩐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아졌다. 그것들을 하나씩 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짧은 내 이름만 남게 되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남아있는 이름만이라도 별에게 전송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의 언어는 영어와 관련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언어를 만든 사람은 미국인이니까 미국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되어있는 게 당연할 것이다. 영어. 학교에서 조금 배우긴 했지만, 유창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는 알파벳의 발음표를 읽을 줄 안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서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만들어보는 활동을 했었다. 그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알파벳 발음표를 주고 구구단 외우듯 강제로 외우게 시켰다. 한번 틀릴 때마다 손바닥 한 대씩.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는 행위에 지쳐 그만둘 때쯤, 발음표를 다 외울 수 있었지만.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 칠판에 영어로 된 내 이름을 몰래 쓴 적이 있다. ‘KIM SOO HO’ 그리고 지금은 그 이름을 별의 언어로 바꾸고 있다. 하나의 알파벳에 여러 개의 짧고 긴 깜빡임. 비록 지금은 짧은 인사지만, 곧이어 능숙하게 할 수 있으리라 다짐했다.


노트를 꺼내 별의 언어로 바꾼 내 이름을 써 내려갔다. 한국어로는 단 세 글자의 이름이지만, 그것을 영어로 바꾸고, 또 영어를 별의 언어로 바꾸니 페이지의 두 마디가 가득 찼다. 그러니까 한국인 김수호가 미국에 사는 모스 씨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모스 씨가 별에게 대신 말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것도 이해가 갔다. 이제 남은 건 모두가 잠든 새벽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별이 더 잘 보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방해할 사람들이 잠에 들 시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시간은 별과의 연결이 더욱 잘 되는 시간이다. 아버지의 코골이가 절정을 향해갈 때쯤, 나는 방문을 살짝 열어 빠져나온 뒤, 현관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잘못한 건 없었지만, 아버지가 일어나서 지금 내 모습을 보신다면 아버지는 분명 나를 빨갱이로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 산에서 살금살금 내려와 사람들의 목을 몰래 따간다는 그 빨갱이. 자는 아버지를 한번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곤 휙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새벽은 별빛 하나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래도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에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다 넘어질 뻔했다. 옥상에 올라갔을 땐,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도 나를 찾은 듯, 선명한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집 앞마당에 피던 벚꽃 같았다. 반갑다 말하지 못해도 느껴지는 반가움. 연결의 기쁨. 나는 노트를 펴서 눈 깜빡임을 연습했다. 혹시라도 한 번이라도 잘못 깜빡이면, 별이 내 이름을 잘못 이해할 수 있으니까. 신중하고 정확하게 신호를 보내야만 했다. 연습이 끝나고 별에게 내 이름을 천천히 전달했다. 한 번도 이렇게나 무언가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신호를 보내다 눈에 경련이 올 뻔했다.


‘ㅡ.ㅡ .. ㅡㅡ’

그래도 그 순간은 조용했고,


‘… ㅡㅡㅡ ㅡㅡㅡ’

썩어버린 나뭇잎이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 내뱉는 마지막 향과 함께


‘…. ㅡㅡㅡ’

나의 이름은 새벽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전달되었다.


다시 노트와 펜을 들어 별을 바라보았다. 별의 깜빡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눈을 부릅떴다. 사그라드는 깜빡임이 멈출 때까지, 드문드문 보이는 미세한 깜빡임까지 전부 기록했다. 별은 나의 이름을 듣고 무슨 대답을 해 주었을까. 자신의 이름 또한 알려주었을지, 자신도 나와 연결되어 기뻤다고 말해주었을지. 별의 대답이 궁금했기에 바로 해석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일단은 나중의 행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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