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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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뛰어왔어?”
미주는 헐떡거리는 달의 모습이 의아하게만 느껴졌다. 그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두운 달의 표정을 보고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2월 31일은 미주에게 있어 특별한 날이었다. 그녀는 길었던 외국 생활에 싫증이 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3년간의 긴 생활 중 그녀가 먹은 음식들은 파스타, 리소토 등 죄다 느끼하고 어쩐지 속이 더부룩해지는 음식들뿐이었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또한 느끼했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나눠진 잘생긴 남자들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것은 미주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사람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유창한 발음을 굴릴 때마다 미주는 어쩐지 한국어의 된소리가 그리웠다. 국제 콩쿠르 3등의 성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음악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미주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유튜브를 틀었다. ‘맵닭볶음면 with 실비 김치' '마라 맛 기묘떡볶이 먹방' 등 다양한 먹방 영상들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한국 음식을 배송시켜 먹어보기도 했지만, 드넓은 대륙들을 넘어온 된소리의 음식들은 외국의 굴림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미안해. 오다가 조금 일이 생겨서.”
미주가 국제 콩쿠르에 3등을 한 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녀는 된소리의 축하를 받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에 인스타그램에 작은 게시물을 하나 올렸다. 이런 게시물을 올리는 게 누군가에겐 자랑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 올렸던 게시물을 지우려던 순간, 달에게 '좋아요'를 받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미주에게 작은 파동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추운 겨울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입시의 어둠 속에서, 달은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빛이자 언젠가 벗어나야 할 대상이었다. 미주는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가끔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끼쳐오곤 했다. 그는 연주할 때마다 단 한 번의 음정도 틀린 적 없이 완벽한 타이밍에, 정확한 완급조절을 해냈다. 미주는 당시 달의 모습은 어쩐지 기계와도 같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미주 또한 어려운 곡을 충분히 소화해 낼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연주할 때마다 곡에 취해 박자가 조금씩 빨라진다거나, 악보에는 없는 추임새 등을 넣곤 했다. 그럴 때면 달은 귀신같이 알아채고선, 그녀가 틀린 부분을 짚어주었다. 우연히 달의 지적을 듣지 않았던 연주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였다. 운이 좋게도 그것이 영상으로 남게 되었고 꽤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기쁜 마음에 미주는 달에게 달려가 자랑했지만, 당시 달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떠올려 보노라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쉽게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어쩐지 시시한 남자네’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시함이 미주의 마음에 와닿았다. 그것은 된소리처럼 맛있게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까르보나라 파스타 같은 발음처럼 느끼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달과도 멀어지게 되었지만, 미주에겐 그가 분명 크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더 높은 곳에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오만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달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기억 속의 달은 세월을 넘어왔다. 그리고 미주에게 닿았다. 단 한 번의 음정도 틀리지 않는 기계 같던 그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 달의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겨울의 향. 하지만 그사이에 분명 아주 살짝 꽃의 향이 모습을 내비쳤다.
“미안하면 밥은 네가 사. 얼른 들어가자. 나 배고파.”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달의 낯짝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오늘은 12월 31일이니까. 그녀는 아무렴 괜찮다고 생각했다. 둘이 들어간 식당은 유명 유튜브가 추천한 맛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몇 시간을 고르고 골라 찾을 수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먹방 영상만 보았던 그녀에게 이곳은 최고의 맛집임이 틀림없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은 많았고, 먹음직스러운 낙지볶음 냄새가 가게 안에 은은하게 퍼져있었다 둘 또한 낙지볶음을 시켰다. 자연스럽게 얼음장같이 차가운 소주 한 병을 가져와 서로의 잔에 따랐다. 서늘한 감촉. 그리고 작은 침묵. 주변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지만 그 모습 속에서 달은 작은 공간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의 모습은 어쩐지 귀가 먹은 사람처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미주는 오스트리아에 살았던 한 음악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가운 소주잔 안에 달의 얼굴을 넣어보았다. 굴절되어 수심 가득한 달의 얼굴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곧이어 시뻘건 양념 범벅이 된 낙지볶음이 가스버너 위에 올라갔고, 얼마 안 있어 지글지글 끓어대기 시작했다. 미주의 식욕 또한 함께 끓어올랐다. 그녀는 낙지가 익어가는 시간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재빠르게 젓가락을 뻗어 큼지막한 낙지 한 점을 집고선 입에 넣었다.
“앗 뜨거워.”
뜨겁게 달궈질 대로 달궈진 낙지는 미주의 혓바닥에 토막 나버린 자신의 한을 풀었다. 몇 번의 혀굴림 끝에 그녀는 3초도 안 되어 토막 난 낙지에게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뜨거운 낙지를 뱉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곧이어 시뻘건 양념은 쉴 틈도 주지 않고 미주의 혀를 뒤덮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앞의 소주를 연달아 들이키며 통증이 가시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순간 달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녀가 한 잔 받으면, 달은 두 잔을 마셨다. 묘하게 주고받는 느낌이 좋았다. 마치 서로의 리듬이 합쳐지는 것만 같았다. 미주는 달 너머에 있는 티브이를 쳐다보았다. 티브이에선 곧 열리는 새해맞이 불꽃놀이에 관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길었던 2025년도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오늘 서울 용산에서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다는데요, 김 기자. 현장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미주는 달을 보았다. 그리고 티브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뉴스에서 말한 대로면 불꽃놀이까지는 앞으로 1시간 정도 남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달에게 말했다.
“이따 용산에서 불꽃놀이 한대.”
“그래?”
“안 볼 거야?”
달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남은 소주를 잔에 채우고선 한 번에 들이켰다. 그의 눈은 이미 풀려있었다. 미주는 달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차오르던 달은 다시금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과거를 듣지는 못했지만, 미주는 달의 호흡과 눈빛, 말투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가 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달아. 너를 보면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던 한 음악가가 떠올라.”
“무슨 말이야?”
미주는 달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귀가 들리지 않았대. 너도 알겠지만, 청력을 잃는다는 건 음악가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잖아? 중요한 부분은 지금부터야. 그 사람의 걸작들은, 청력을 잃은 후부터 나오기 시작했어.”
“나는 그게 너무 이상하고… 또 멋있다고 생각했어. 어둠 속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
“달아, 나는 네가… 그 사람을 닮았다고 생각해.”
미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하나둘씩 사라져만 갔다. 그럼에도 달은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달은 다시 차오를 것이고, 불꽃놀이는 그때 봐도 늦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직은 박수를 칠 때가 아니다.
‘커튼콜까지는 조금 남았을지도 모르겠네.’
미주는 달의 어깨를 툭 치고 가게 밖을 나섰다. 이제는, 달의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