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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없는 능선이 있을까?

미리의 시간 epi. 9

by 우유강

알람 소리에 우찬은 이불 밖으로 팔을 뻗고 더듬어서 휴대전화를 찾았다. 테이블과 침대 틈 아래에서 알람 소리가 반은 같이 떨어진 베개에 먹히고 반은 벽에 부딪혀 울리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실내는 어둑하지만 디지털 숫자는 이미 08:30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찬은 밤새 체온을 함께 나누다 같은 온도로 한 몸이 된 침구로부터 벗어나기 싫었지만 이미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와 휴대폰을 거머쥔 팔이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커튼이 덜 여며진 틈 사이로 길고 희미한 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미리가 얘기해 줬던, 고교시절 교실의 커튼 틈 사이로 칼날처럼 공간을 베고 들어왔다는 광선 검 같은 빛은 아니었다.



우찬은 날씨를 보여주는 기상 앱 화면이 있는 페이지로 휴대전화 홈 화면을 밀어냈다. 온도는 여전히 영하 5, 6도를 오르내릴 예정이고 눈도 하루 종일 내리다 말다 할 계획인 듯 눈 올 확률이 백 퍼센트인 시간대들이 중간중간 보였다. 눈보라에 이 온도면 체감온도는 영하 십도 아래를 훨씬 밑돌 거였다. 서울도 영하 십도 이하의 날씨는 드문 상황인데 여긴 한반도 최남단 제주다. 우찬의 경험에 이런 날이 있었나하고 아무리 기억을 뒤적거려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찬은 따로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지 못했지만 언제든 육촌 형제들 것을 얻어 입든지 급하면 시로 나가 조달이 가능할 것이니 옷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주간 날씨를 확인하니 밤부터 조금씩 눈구름이 얇아지다 내일 새벽 시간에야 비로소 완전하게 눈발이 멈춘다고 한다. 공항이나 항구는 자정이 넘어야 본격적으로 제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른 오전부터는 하늘과 바다에 길이 열릴 것이다. 여름엔 태풍이, 겨울엔 폭풍을 동반한 폭설이 오면 제주는 대책불가, 고립무원의 세계가 된다.

제주와 육지를 오고 갈 물자, 혹은 기어이 출입해야 할 사람들에게 비로소 섬이 바닷물 속에 숨겨둔 묵직한 땅덩어리의 무게만큼이나 깊숙한 고독을 뼛속까지 안겨줄 뿐이다. 오직 소식들만이 날씨 따위에는 꿈쩍 않는 인공위성들을 이용해 서로 애타고 분주할 것이다.

그 고독의 무게에 짓눌려지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뭔가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뚜렷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스케줄이 침대에 걸터앉은 우찬의 다리를 묵직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어제 이 시간만 해도, 오늘 이 시간에 제주에 와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습관처럼 찬물 샤워를 하고 나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닦고 속옷을 급히 입은 후 다시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예상했던 대로 미리의 문자는 더 없었다. 간밤에 잘 잤는지 궁금했지만 눈보라가 갠 내일에야 일포가 있을 거라서 오늘은 그다지 힘든 일은 없을 거였다. 오늘은 자신에게 집중해야겠다고 우찬은 마음먹는다.



묵직한 암막커튼을 열어젖히니 부연 빛이 가득 들어왔다. 뿌옇게 서린 김을 손날로 닦아내니 닦아낸 자리만큼 창 밖으로 옆으로 가로 누운채 날아가는 눈보라가 선명하게 보이고 창 안으로는 물방울들이 뭉쳐 흘러내린다. 우찬은 커튼 자락을 움켜쥐고 창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바하마블루가 섞인 평소의 함덕 물빛은 간데없고 먹빛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밀고 당기느라 경계조차 없다.



으르렁거리며 드러낸 파도의 하얀 이빨이나 뒤집혀져 헝클어진 먹구름을 비교하며 구분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하루 종일 바다와 파도는 서로를 구박하며 너니 나니 엉켜 있을 것이다. 낯선 바다고 낯선 하늘이었다. 어렸을 때 살던 마을은 해안에서 비교적 떨어져 산록으로 올라온 곳에 있어서 파도를 보며 살지는 않았다.

이런 날씨의 제주는 낯설었다. 중학교 입학하던 학기 초에 제주를 떠나야했기 때문에 꼭 와야 할 집안 어르신들의 부고 외에는 이런 날씨에 구지 제주에 올 일이 없었다. 명절조차도 어머니는 우찬에게 서울 삼촌들과 함께 작은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라고 할 때가 많았다.



우찬은 아침 식사를 위해 방을 나오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사. 서울도 눈보라 치고 있는가?”

아버지는 우찬과 대화할 때 최대한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었고 그러다보면 언제나 억양이 꼬여서 이도저도 아닌 소속불명의 어체를 쓰곤 했다. 터져 나오는 제주어와 그걸 억누르며 조심스레 표준어로 말하려다 엉키면 아버지의 흥분이 귓가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우찬은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어젯밤에 함덕 왔는데 걱정하실까 봐 연락 안 드렸어요. 함덕서 잤어요.”

“잘핸. 잘핸. 밥은 먹언?”

“지금 먹으러 가고 있어요.”

“경하믄 내가 갈크라. 밥 먹고 커피 한잔하고 이서이.”

“눈이 많이 와서 길이 험해요. 일주도로로 오셔야 오실 수 있을 건데요.”

“버스 다니는 길로 가야하믄 일주도로가 나을거긴 해라. 느 어멍헌티 가는 길도 꽝꽝 얼어사 제주시로 빙 돌아가야 할 건디.”

번영로가 꽝꽝 얼어서 곧바로 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집에서 어머니 병원까지는 번영로를 타면 이십분도 안걸리는 데 눈 때문에 한 시간이 훨씬 넘을 거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우찬과 함께 어머니한테 갈 요량이다.

“그럼 체인 감고 일단 여기로 오세요. 저랑 같이 삼양 쪽으로 돌아서 올라 가게요.”

“알안. 호꼼(조금만) 기다려라이.”



아버지는 우찬이 왜 제주에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우찬의 전화를 받자마자 아버지 눈가에는 반갑고 좋아서 눈물이 고였을 것을 안 보고도 알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된 우찬을 서울에 보내놓고 늘 오며 가며 우찬을 보살펴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서울에 한번씩 왔다가 다시 제주로 돌아갈 때마다 아버지는 다 큰 아들 우찬을 품에 안고 울먹거리셨고 그러다 몇 번은 작은할아버지한테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우찬이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우는 일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예고도 없이 서울에 올라와 우찬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기다리셨고, 등교하고 나면 돌아가시곤 해서 서울과 제주가 생각만큼 먼 곳이 아니고 당신은 언제든 우찬이 곁에 있다고 알려주려는 듯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쩌면 유독 감성적인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 더 그랬을 거 같아보였다.



우찬에게는 자폐스펙트럼 1급 장애를 지닌 형 해찬이 있었다.

해찬이가 애기 때부터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클수록 괴성을 지르며 집안의 물건을 던지거나 자신의 팔뚝을 손톱으로 파거나 물어뜯는 중등도의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스물네 시간 돌봐 줘야 하는 상황이라 더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는데 잠시 방심했다가 우찬이 생겼다고 했다. 모계 유전이라는 진단 때문에 우찬의 어머니는 해찬을 돌보는 일에 전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고군분투했고 남편이 큰 아들을 돌보는 일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우찬이 생겼으니 어머니는 거의 공황상태가 되어 아이를 지우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라고, 아니 자폐여도 괜찮다고 하나만 더 낳자고 애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아이를 지우려고 산부인과를 몇 번 찾아다녔는데 그때마다 눈을 못 떼고 감시하던 아버지에게 붙잡혀 돌아와야 했고 아버지가 울며 하소연하거나 차라리 내가 죽겠다고 반 협박까지 해서 결국 세상 빛을 본 우찬이였다. 다행스럽게 우찬이 건강하다는 것을 병원으로부터 증명받자 우찬의 어머니는 우찬의 양육을 남편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직 해찬을 돌보는 일로 되돌아갔다.



해찬이 만들어내는 하루하루의 시간들은 어머니에게도 가족 모두에게도 전쟁 같은 시간들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그 시간들을 무찔러나갔다. 어머니의 치맛자락은 방패가 되고 어머니의 두팔은 창이 되어 해찬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해하는지 그것으로부터 해찬을 지켜주기 위해 쉴 틈 없이 쓰였고 때때로 방전되기 일쑤여서 우찬도 아버지도 어머니의 에너지를 따로 소모시킬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입학할 때 어머니의 SOS가 처음으로 아버지께 요청되었다.

우찬이를 작은할아버지가 계시는 서울로 보내자는 거였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도와줘야 할 때가 왔던 거였다. 해찬이가 너무 커져 있었다. 키도 몸무게도 너무 커져서 어머니 혼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기였고 사실 어머니는 너무 늦게 도움을 요청했는지도 몰랐다.

해찬이를 학교에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지 않았던 모든 시간들을 어머니는 힘겹게 보내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마치 우찬의 몫인 양 아무리 힘들어도 도움요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도움 요청을 고마워하면서도 우찬을 멀리 떠나보내는 것을 슬퍼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해찬이 때문에 어린 우찬이 몇 번쯤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이제는 우찬이 미리 알고 방어하며 상황을 피할 만큼 많이 컸지만 우찬이 형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고 편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서울로 보내야 된다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달래고 얼르고 설득했고 아버지가 가까스로 납득하자마자 우찬은 그야말로 화살처럼 제주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우찬에게 제주는 어머니였다.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처럼 제주는 늘 막연하게 그립고 구체적으로 낯설었다.

제주에 와도 때로는 집이 아닌 함덕 호텔에서 지낼 때가 있었다. 외가 친척이 관리하던 바닷가 호텔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부탁하면 우찬을 위한 방이 마련되었다. 어머니는 우찬이 해찬이 있는 집을 지옥처럼 여길까 봐 상황이 심각한 경우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우찬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에 묵을 때면 아버지가 열일을 제치고 와서 함께 투숙했다. 최소한 밤에 잘 시간까지는 와서 아들이 혼자 호텔방에 투숙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는 우찬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오실 것이다.

안 봐도 서두르며 우찬에게 달려올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눈에 선해서 오늘 같은 날은 해리포터 빗자루라도 있으면 딱 좋을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찬과 아버지의 실제 세상엔 그런 빗자루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찬의 어린시절 아버지는 늘 우찬과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해리포터 영화를 보러 가거나 책을 읽거나 놀이를 했었다. 동네 공터나 분교 운동장에서 마당을 쓰는 기다란 플라스틱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다른 팔로는 플라스틱 골프채로 배드민턴 공을 치는 놀이를 하면 동네 아이들이 몰려왔다.

아이들이 몰려오면 아버지는 번개처럼 집으로 달려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분홍색과 황금색 보자기를 가져와서 그리핀도르파와 후플푸프파 혹은 그리핀도르파와 래번클로파로 나누었다. 그리핀도로파는 서로 하려고 했지만 슬리데린파를 하자는 아이들은 절대 없었다. 파가 정해지면 다들 분교 청소용구 창고에 들어있던 플라스틱 빗자루를 다리에 끼고 분홍색이나 황금색 보자기를 어깨에 묶어 펄럭이면서 이리저리 뛰면서 소리지르고 놀곤 했었다.


어릴 적 친구들은 그래서 한 번도 해찬이 형을 두고 우찬이를 놀린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도 거의 없고 폐교된 지 오래되었지만 카페로 쓰이는 분교의 마당 한 쪽 창고엔 여전히 연두색 플라스틱 빗자루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호텔 일층 라운지에서 곶자왈처럼 꾸민 중정을 돌아 남쪽으로 자리 잡은 곳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카페는 바다와 중정을 볼 수 있도록 ㄴ자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한식으로만 제공되는 호텔조식을 좋아하지 않는 손님들을 위해 아주 이른 시간부터 브런치가 가능한 곳이라 관광객들 사이에서 호텔보다 더 유명해진 곳이었다.

게미역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옮겨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우찬은 꽁꽁 언 해안 도로를 찰그락거리는 체인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낯익은 차량을 보았다.

아버지의 낡은 SUV였다.

중고로 구입해서 십 년이 넘게 타고 다니는 덩치 큰 닷지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눈 쌓인 길에 흔적을 남기며 호텔 카페 옆 도로변에 몸을 붙이자마자 성급하게 운전석 쪽 도어가 열렸다.

눈보라가 순식간에 운전석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두꺼운 패딩 점퍼에 러시안 털모자를 쓴 남자가 조심스레 왼쪽 다리를 쭉 뻗으며 내린다. 키가 작은 아버지는 늘 덩치가 큰 차를 몰고 다녔다. 닷지를 몰기 전에도 포드 트럭을 몰았던 아버지는 우찬과 함께 픽업트럭을 타고 국내일주를 하는 게 로망이었다.

눈 쌓인 계단에서 잠깐 삐끗하며 기우뚱거리던 아버지는 호텔 입구로 가면서도 얼굴은 카페를 향해 안쪽을 훑어보느라 바빴다. 미셰린 타이어 캐릭터처럼 차려입은 아버지의 얼굴이 우찬과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다 또 한 번 미끄러져 삐끗했지만 이미 활짝 핀 아버지의 얼굴 꽃은 당분간 오므라들지 않을 것이다. 잠깐 새에 어깨와 모자에 하얗게 눈이 쌓인 아버지가 호텔 입구로 들어와 곧장 카페로 들어오는 동안 계속 지켜보던 우찬은 두 팔을 벌려 아버지를 안았다. 아버지의 모자 위에 쌓였던 눈들이 순식간에 녹아 물방울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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