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리 알았다 해도

미리의 시간 epi. 11

by 우유강

오전 8시쯤 되어서 장례식장엔 12인승 밴 두 대가 나타났다.

할머니의 강 씨 아들들이 각자 밴 하나씩을 렌트해서 자신들의 직계가족들을 가득 태우고 도착한 것이다.

이모할머니의 막내 아들, 영천이 삼촌이 예약해 둔 함덕 리조트에 가방들을 실어다 두고 오겠다며 밴 두 대가 곧바로 되돌아 나갔고 가족들 중 몇은 상복을 받으러 관리실로, 나머지는 상조 화환들이 늘어선 짧은 복도의 한가운데 서있던 미리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미리는 그들을 자세히 본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내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자 속으로 놀랐다.

그들의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끌듯이 다가오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노인 중 한 사람이 미리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말을 걸었다.

“미리냐? 예리랑은 얼굴이 많이 다르네. 니가 일찍 와서 고생이 많았겠다.”

미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그냥 할머니 얼굴이었다.

어찌 보면 매번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만나는 자신의 얼굴과도 비슷했다. 지금보다 한 십년쯤 젊은 할머니가 남장을 한다면 바로 그들일 것이다. 그 익숙한 얼굴 둘이서 미리를 바라보자 머릿속이 멍해지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싶어 미리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털어보았다.

“아닙니다. 영천이 삼촌이 다 해놔서 저는 한 게 없어요.”


그들 중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잔뜩 긴장하고 어색해하는 미리를 조금 짠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빨리 와서 할머니 옆에 있어준 게 젤 큰 일 한 거지. 예리는 아직 안 온 거지?”

영천이 삼촌이나 예리와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를 그들은 당연히 예리를 찾았다.

할머니와 내내 같이 살았던 예리는 어쩌면 간간이 그들의 얼굴을 봤을지도 모른다.

“예리가 아직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신호가 오락가락하는데 통화는 못했어요. 문자 수신도 어젯밤에야 확인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외국인 것 같아요.”

왠지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미리의 답변이 뜻밖에도 길어졌다.

“웬만하면 아무리 멀어도 통화 정도는 다 될 건데."

나이가 조금 덜 들어 보이는 남장한 할머니가 못마땅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의 말을 서둘러 덮으며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장한 할머니가 미리의 어깨를 도닥거리며 말했다.

"일단, 장례식 먼저 치르고 예리도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자.”

이모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영천이 삼촌 말고는 미리가 예리 혹은 할머니에 대해서 누군가와 상의해 본 적이 있었던가? 너무 익숙한 얼굴의 한 없이 낯선, 나이 든 남성이 “ ~ 보자.”라고 말 어미를 끝낸 것에 대해 미리는 옆머리가 띵할 정도로 어색하면서 어룽어룽한 감정을 느꼈다.


추운 날을 견디기에는 턱도 없이 얇은 검은 상복 슈트를 챙겨 입은 비교적 젊은 남자들이 나왔다. 그 뒤로 줄줄이 방으로 들어갔던 여자들이 외투만 벗어던지고 두툼하게 입은 평상복들 위에 역시 얇은 검정 치마저고리를 둘러 입고 아주 작은 하얀 리본이 붙은 실 핀을 옆머리에 꽂고서 차례로 나와 빈소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반소에 앉아 기다리던 이모할머니를 둘러싸고 저마다 손을 마주 잡거나 잠시 껴안거나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모할머니는 그들과 손을 맞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미리가 도착한 첫날 밤 이모할머니 집에서 미리를 껴안고 울었을 때보다 훨씬 더 깊숙하고 묵직하게 토해내는 이모할머니의 곡소리에 미리는 팔뚝에 돋는 소름을 느꼈다.


이모할머니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할머니와 똑 닮은 저들이 아버지의 성이 다른 형들이다. 어린 시절 미리가 이모할머니 옆에 붙어살던 때, 한 번씩 툭툭 던져줬던 이야기 속, 할머니와 강씨 아들 둘 그리고 미리의 아버지인 현씨 아들, 그 네 사람의 관계는 미리로서는 감히 이해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 따위는 일도 보이지 않던 어두운 심연이었다.


미리 역시 그들과는 또 다르게 할머니와 예리 그리고 이모할머니 가족들과 얽혀있는 할머니의 또 다른 심연에 속한 존재였고 그 심연에서 숨 가쁘게 발버둥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미리는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늘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고 생각해 왔다. 생각해봤자 누구라도 탓을 할 만한 구체적인 상대도 없는 깊이가 안 보이는 원망과 끝 모를 자책이나 자기비하 말고는 그 어떤 답도 보이지 않던 심연이었다.


이모할머니야말로 할머니의 삶을 둘러싼 모든 얼크러진 넝쿨들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어떻게 가지를 뻗다가 서로 얽히고 자빠지고 녹아서 심연으로 잠겨 들어가는지 고스란히 보고 겪었을 산증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할머니의 빈소에서 누구보다 가장 서럽고 애달프게 통곡할 수 있는 진정한 한 사람일 것이다. 그 앞에서 같이 주저앉아 세상을 떠난 자신들의 어머니를 애도하며 울거나 혹은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며 울 수 있는 그들 또한 순식간에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장악하며 착 붙는 모습이었고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미리는 자신이야말로 이곳에서 부유하는 향연기보다 더 가볍고 어울리지 않는 존재 같았다.


나이 많은 남자들이 저렇게 울 수가 있나 싶게 그들의 흐느낌은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통곡하다 두번을 엎드려 절했고, 울며 절하다 기어이 영정 앞에 드러누웠고 곧 다시 일어나 앉아 바닥을 치며 소리 높여 울기를 반복했다.


“어멍. 우리 어멍. 어디 가셤수광”

“이자 아방한테 갑서. 아무데서나 헤매지 말고 아방한테 졸바로(곧바로) 갑서게. 어머엉”


부산억양이 제주말과 뒤섞여 흘러나왔다. 미리에게 건네던 표준어의 낮고 묵직하던 그들의 말투는 그들의 울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에게서, 어딘가 밑바닥에 가라앉혀뒀던 곰삭아버렸지만 여전히 한 치도 틀림없는 억양과 단어로 되살아난 제주어가 흰 눈 가득 덮인 현무암 돌담으로 빙 둘러 처진 장례식장 한 가운데서 용암처럼 터져 나와 그대로 굳지 않고 흐르다 바다 물에나 닿아야 주름지며 식을 것처럼 구불구불 흘러내렸다.

상주들의 곡소리가 예사 집과 달리 서러움에 재워진 발성으로 한껏 높아지자 빈소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기웃거리는 듯했다.

그들의 곡성이 높아져도 그들을 따라온 가족들 그 누구도 따라 우는 사람이 없었다. 아주 어린아이들 둘이 영문도 모른 채 할아버지들의 대성통곡을 보며 울먹거리다 앙앙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엄마들이, 혹은 고모나 이모일지도 모르는 젊은 여자들이 우는 아이들을 핑계로 그들의 생애 또 볼 수 없을지도 모를 통곡의 공간을 피해서 화환들 사이를 지나 관리실 쪽으로 빠져나갔다.


앙앙 울던 아이들이 나가자 남은 어른들도 빈소에 누운 채 발버둥 치며 우는 늙은 아버지들을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보다가 접객소 쪽으로 몸을 비켜나왔다. 그들 중 몇이 미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살면서 들었던지, 오면서 들었던지 미리와 예리의 존재에 대해 알 터였고 불편하거나 어색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였다. 이럴 때 영천이 삼촌은 어디를 갔을까.

할머니의 장례를 주관하다시피 해온 분주한 영천이 삼촌의 옷자락을 붙잡을 만큼 미리는 더이상 어리지도 않지만 영천이 삼촌이라도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몸을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표정과 뚝딱거리는 몸짓으로 그 모든 장면들로부터 뒷걸음을 치다 누군가에게 부딪혔다.

부딪힌 사람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던 미리의 눈이 커졌다.

우찬이 서 있었다.


미리를 바라보는 우찬의 눈망울에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숨이 드나들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해져가던 가슴 한가운데로 뭔가 찌르르하게 지나가며 숨통이 트이는 것 같더니 깊은 숨과 함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찬이 손을 뻗어 미리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잠깐 나갈래?”

우찬의 엄지손가락에서 체온이 옮겨와 미리의 눈물샘을 말려주고 마음까지 뎁혀주었나싶게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외롭고 서럽던 물기가 잦아들었다. 미리는 우찬을 따라 잠깐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직. 곧 입관식이 있을 거라서.... 상주들 올 때까지 입관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바로 할 거.”

“그럼 어디라도 잠깐 앉자. 얼굴이 너무 창백하다.”

우찬은 들고 왔던 여성용 검은색 롱 패딩을 하나 미리에게 내밀었다.

“오다 주웠어. 추울 때 걸치고 있어.”

우찬의 어색한 농담에 미리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롱 패딩 입고 왔잖아."

"알아. 그건 너무 얇아서."

미리의 안색이 편안해졌다.


그때 미리의 휴대전화에서 기다렸던 컬러링이 들려왔다.

미리는 예리와 우찬, 이모할머니와 막내 삼촌에게서 오는 수신음을 따로 지정해 놓았었다.

피아노 건반 소리가 뚱땅거리며 발랄하게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아메리카인을 휴대전화 밖으로 튕겨내놓고 있었다. 예리가 좋아하던 음악이었다.


“어디야? 왜 전화를 안 받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냐? 언제 와?”

숨이 넘어가듯 질문을 연달아하는 미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비로소 엷어지는 불안의 끝자락이 이제야 찾아오는 안도감과 뒤섞여 미리의 억양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잠긴 목소리와 들뜬 목소리 사이에서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수화기 너머 예리의 말은 조금씩 늦은 답으로 돌아왔다. 예리는 스리랑카에 있다고 했다. 먼 나라에 있어서 답이 늦는 것은 아닐 건데 하필 전기도 인터넷도 심지어 건물에 벽도 거의 없는 요가센터에서 보름 정도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간밤에 꿈에 보이던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워서 와이파이가 가능한 곳으로 잠시 나와 휴대폰을 열어봤다가 패닉이 와서 헤매다가 겨우 정신 차려 전화한다는 소리에 두려움과 슬픔과 자책이 몽땅 섞여 들려왔다.

전화에 쓰나미처럼 몰려 들어가 쌓여있을, 익숙한 착신번호에 붙은 숫자들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들에 예리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갔다.

요가센터에서 공항이 있는 수도까지 오는 길이 폭우로 끊기는 바람에 버스도 끊겨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멀고 먼 길을 돌아서 제주까지 오려면 이틀 이상 족히 걸릴 거였다.

예리의 목소리가 기운 없이 가늘어져서 먼 하늘 위의 인공위성을 겨우 징검징검 건너오는 것 같았다.

비 오는 열대우림의 한적한 시골 마을 진창길에서 끊긴 버스 대신 툭툭이라도 타려고 기다리고 있을 예리가 눈에 선해 미리는 가슴 한 구석이 시렸다.

지금은 그 비를 맞고 있어도 예리는 어찌어찌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된 거지.’


예리는 전화기 너머로 오히려 미리 걱정을 하였다.

큰아버지들(예리는 서슴없이 그들을 그냥 큰아버지들이라고 했다.)한테도 전화를 따로 하겠다고 예리가 미리를 안심시켰다. 서슴없이 나오는 큰아버지라는 단어가 예리와 그들을 가족처럼 묶어주는 것 같았다.

미리는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 할머니의 다른 아들들과 그 가족들이, 예리에게는 의심의 여지없이 같은 가족이라는 것이 미리의 마음속에서 예리와의 거리를 또 저만큼 떨어뜨려 놓는 것 같았지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예리와의 통화가 끝날 때쯤 영천이 미리를 찾으며 다가왔다. 우찬이 다소 뻘쭘하게 미리의 곁에 서있었고 영천은 줄곧 시선을 우찬에게 꽂은 채로, 입관식 하러 가야 한다고 입만 미리를 향하고 있었다.

미리는 눈짓 손짓으로 자신이 통화하는 상대가 예리라고 영천에게 알리고자 했고 영천도 드디어 예리와 연락이 닿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하는 몸짓을 보였다.


통화가 끝나자 영천이 미리에게 우찬이 누구인지 묻는 눈짓을 보였지만 미리는 어찌할 줄 모르고 우물쭈물 하다 대답할 적절한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미리는 우찬에게 기다렸다가 점심 같이 먹자고 말을 하고 빈소로 몸을 돌렸지만 끝내 영천에게 우찬을 소개하지 못했다.


빈소에 모여 있는 상주들을 향해 가는 미리의 상복 입은 모습이 아른아른하게 흔들린다는 착시를 느끼던 우찬은 미리를 데리고 가다 뒤돌아보는 영천과 시선이 마주쳤다.

우찬은 영천을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좀 늦은 인사인건지 아직 빠른 인사인건지, 인사가 맞는 것인지도 모를 인사였다.

영천이 우찬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려 소리 없이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우찬은 그가 미리가 통화하던 막내삼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찬은 조금이 아니라 영원이라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양병원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아버지의 양식장에 갔다가 우찬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우찬은 그날 저녁 갑자기 소집된 동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우연찮게 미리네 가족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친구가 미리의 이모할머니 아들과 같은 농협조합원 후배였고 초상집 첫날 이래저래 좀 도와줬었다고, 이제는 공통화제가 사라진 어린 시절 친구에게 심심풀이 화제 거리로 꺼낸 얘기였다.


제주는 그렇게 좁은 곳이었다.

아주 작은 제주의 시골 마을서 자라다 갑자기 서울로 옮겨가 성장해야 했던 우찬에게 다른 지역의 정서는 어떤지 비교 불가였지만 집안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랬다.

동부, 서부가 아무리 서로 상종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고 남제주, 북제주 서로 쓰는 말이 조금씩 달랐다고 해도 한 다리 건너 두 다리만 지나도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 제주였다.

틈만 나면 장정들을 집어삼키는 파도 살벌한 바닷가 마을에서는 가족관계가 얽히는 것은 원래 별 일 아닌 곳이다.


더구나 4.3 이후에는 바닷가 아니라 배 탈 일 없는 중산간 마을과 제주시까지도 사지 멀쩡한 남자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남아 남지 않던 시절을 겪은 곳이었다.

남의 집 속사정은 서로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모르는 척 해도 소리 없이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다들 알고 있었고 그중엔 남보다 더 유별났던 미리 할머니의 속 아픈 이야기가 바람만큼이나 빠르게 소곤거리며 동쪽 해안마을을 날아다닌 모양이었다.


미리 할머니 초상에 하늘길이 막혀 자식들이 오지를 못해 오일장을 하게 생겼다는 이야기야 우찬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줄줄이 나오는 복잡한 가족사가 어쩌면 드라마처럼 가공되고 각색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듣는 내내 우찬은 속이 시려워져서 뜨거운 조개탕 국물을 자꾸 후루룩거렸다.

keyword
이전 10화눈물은 마음의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