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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야, 다르다고

(단편 연재: 조지아에 갈 결심 epi. 7)

by 우유강

은혜는 그 후 오래 기다리던 교직 발령을 받았고 결혼도 했다.


결혼한 해에는 신혼집 바로 앞집의 가장이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사망해서 살림만 하던 아이들의 엄마가 생활전선으로 뛰어드는 고단한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일은 차라리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일이었다.



다음 해에는 아주 멀리 타 지역으로 발령이 났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녀는 은혜의 대학시절, 같은 과 동기들이 삼총사라고 불렀을 만큼 자주 어울렸던 친구들 중 하나였다.

은혜는 그 친구들을 많이 좋아했다.


산이 깊은 작은 읍 출신인 은혜에게 적어도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친구는 종종 우아하고 신중하게 느껴졌으며 그녀들 옆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 역시 비슷한 사람인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취향도 제 각각이었지만 세 친구들은 전공교과를 같이 선택함으로써 삼총사라는 별명에 쐐기를 박았고 은혜는 그래서 더 좋아했다.



셋 중 모란꽃 같이 화사한 친구가 가장 먼저 결혼을 했고, 가장 먼저 발령이 났으며,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이혼을 했다.


젖먹이를 키울 때만 해도 산맥을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도시에서 살던 모란은 이혼 후 젖먹이를 시댁으로 보내고 산맥을 넘어 더 먼 도시로 떠난 참이었다.



산맥 너머엔 깊고 푸른 동해가 있었다.

모란은 해안을 따라 삼십여 분 걸리는 바닷가 근처 작은 학교로 통근 중이었고 중앙선과 안전지대를 질주해 넘어온 중형 세단이 정면으로 들이 받았다고 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모란은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은혜는 부랴부랴 연가를 냈고 아홉 시간을 달려 산맥 너머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모란의 화사함과 따듯함은 차갑고 하얀 도자기 항아리에 갇혔고 다시 나무상자에 담겨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내 은혜와 다른 두 친구들의 품 안에 번갈아가며 안겨있었다.

산맥을 넘어오는 고갯길은 구불구불하고 아슬아슬한 곳이지만 느린 안개가 진하게 내려앉아서 코앞의 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가까웠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슬픔 속에서 자책하거나 후회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걸 은혜가 뼛속까지 느꼈던 모란의 죽음이었다.



‘모란이 남편과 사이가 안 좋다더라, 이혼할 것 같다더라, 어린 아기의 양육을 두고 실랑이가 있다더라.’하는 얘기가 솔솔 들려왔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가 들려올 즈음 은혜는 은혜대로 전쟁 같은 신혼부정기에 접어들어 스스로에게도 남편에게도 독 오른 살쾡이처럼 부들거릴 때여서 주위를 둘러 볼 겨를이 없었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마치 도장 깨기에 나선 무과의 짜치기 칼잡이처럼 취업, 연애, 발령, 결혼을 차례로 슥슥 베어나가던 은혜는 막상 결혼 후에 더 이상 벨 목표가 남아 있지 않자 배부른 투정이 남편과의 사소한 싸움부터 시작해서 말도 안 되는 전쟁으로 번지던 묻지마 전쟁 상태였다.


그 전쟁이 냉전으로 접어들 때쯤 모란이 떠났다.



은혜는 한동안 모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사과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다니는 꿈을 꿀 지경이었다.



어쩌면 모란이 그동안 ‘힘들다’고,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데 그걸 뿌리치거나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기억을 뒤적여가며 은혜는 한동안 마음의 병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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