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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난타

(단편 연재: 조지아에 갈 결심 epi. 9)

by 우유강

출산을, 결혼한 여성의 당연한 과제 수행으로 여겼던 은혜는 다시 임신에 성공했다.


은혜는 새로 찾아온 아이를 지켜내는 일에 온전히 몰두해야 했다.



육아휴직 후 친정인 ‘남정’읍으로 이동해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주위에 찾아왔던 죽음들로부터 멀어지는 듯 보였다.


대학입학 후 고향을 떠나기 전 고향과 죽음은 거리가 멀었다. 나이 드신 친인척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지만 다들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은 예전과 달랐다.

예기치 않은 젊은 죽음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일어났고 그녀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늘 지근거리의 교사들이 한 명씩 유명을 달리했다.



은혜는 자신이 주제를 따와서 운영했던 연구학교 업무를 담당했던 학교에서 젊고 열정적인 신규 여교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복되어 돌아온 적이 있었다.

책임감 강한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부모님들은 아프다고 대충 하지 말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고 충고했다는 그 소중한 딸은 스물일곱에 다시 쓰러졌고 회복하지 못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딸을 죽게 했다며 가슴을 부여안고 울며 딸의 죽음에 학교가 짊어질 부담을 덜어내려 애를 썼었다.



은혜는 그 젊은 여교사가 맡았던 학급의 남은 기간에 담임을 맡았고 여교사가 남긴, 학생들과 주고받은 인터넷의 모든 사진과 글, 그 열정의 흔적들을 모아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담임을 잃고 상처받은 학생들과 젊은 딸을 잃고 고통에 빠진 부모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은혜 자신이 짊어진 죄책감으로부터 다소라도 벗어나고 싶어서 자처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어 달을 밤을 세워 작업했던 그 일은 은혜로 하여금 일말의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주지 못했다.



젊은 교사들은 언제나, 어쨌든, 더 많은 시도에 참여해야 했던 때였다.

열정 페이는 당시 젊은 신입 직원들의 진을 빼먹는, 국가적으로 고질적인 관행이었고 연구학교를 운영하는 담당자였던 은혜 역시 그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인의 죽음에 어떻게든 관여되어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이런 일은 은혜를 깊은 심연에 빠뜨렸다.



은혜를 붙잡고 온 몸을 흔드는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옷자락을 흔들 만큼, 머리카락을 흔들만큼, 동공에 지진이 날 만큼의 죽음들도 흔. 했. 다.

생각보다 많았다.



중학교 때 은혜의 은사였던 한 교사는 불순한 행적으로 고발당했다.

가정파탄과 급성간경화로 그의 불순한 행적이 덮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젊은 시절 남편의 제자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먹여주고 재워뒀던 부인은 끝내 그를 버리지 못하고 돌아와 병간호 중이었다.


그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 검고 노란 얼굴과 복수로 가득 부푼 배를 가릴 수 없었지만 제자인 교사를 마주보지도 못하고 얼굴색만 더욱 노랗고 검어져갔다.

그의 부고는 아침 참새 소리만큼이나 재빠르게 날아와 작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사적인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도 유독 은혜가 자신과 다른 면으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리스펙하던 친구의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사를 알려왔을 때 은혜는 자신이 이미 이혼하여 먼저 보낼 배우자가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섬에서 접했던 그 소식은 갑작스럽게 남편을 보낸 친구의 슬픔을 다독거려줄 수도 없었지만 이쯤 되자 은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죽음들과, 혹은 죽음을 관장하는 신(神)과 한 판 붙어야할까 고민하느라 불시에 찾아오는 불안한 눈빛과 불안정한 호흡을 다스릴 방법을 간절히 찾게 되었다.



은혜는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나 이 정도 빈도로 죽음을 만나며 살아가는 거라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은혜의 탓을 할 수 없는 죽음들조차 하나씩 은혜 곁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은혜 자신이 프레임을 씌워 가두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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