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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기에 필요한 명분
아니, 살기 위해 필요한 명분

(단편 연재: 조지아에 갈 결심 epi. 10)

by 우유강

은혜가 섬으로 떠나오기 직전 근무했던 학교는 전교생이 50명이 안 되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교무실은 교감 없이 평교사 일곱 명이 전부였다.



이런 소규모 학교에서는 주당 수업 시수는 작았지만 대신, 행정적인 서류는 교사 사십 명쯤 되는 대규모학교와 거의 같아서 모두 수업이 빈 시간이면 꼼짝없이 앉아 키보드 두드리며 서류 처리하기 바빴다.



은혜의 옆자리에는 암 투병을 하다 복귀한 삼십 대의 여교사가 있었다.


일상생활을 잘 견뎌내는 것 같아 보였던 그 여교사도 복직한 후 바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옆자리에서 생활하던 직장 동료가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을 겪은 첫 번째 일이었다.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걸렸던 서너 달 동안 은혜는 불면과 식은땀에 시달렸다.



직전 학교 젊은 여교사의 죽음 이후로 수업에 대한 열정 외에는 모든 것을 내려놨던 은혜는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동료 여교사가 병자의 병가와 퇴직처리 때문에 오고 가며 병자의 생명이 수그러드는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다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것을 봐야 했다.



엉뚱하게도 은혜는 그 공황장애가 자신이 겪어야 마땅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껴안았다.



은혜가 경험했던 그 모든 죽음들은 언제나 크고 작은 얽힘으로 그녀 옆에 있었고 그녀에게 다가오다 서로 중첩되어 기어이 은혜를 흔들곤 했다.


때로는 가만히, 때로는 또 격렬히.



은혜 옆에 앉았기 때문에, 혹은 은혜랑 아는 사람이니까, 인연이 닿았기 때문에 죽거나 결국 회복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두려운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다.



허물없는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은혜는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진 그 어두운 의혹과 죄책감에 대해서만큼은 말할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그 의구심이 기정사실이 되고 말 것 같아서였다.



섬으로 온 뒤에 은혜는 잠깐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은혜는 그 때 자신의 회피기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회피가 문제라고 스스로를 꼬집고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의사는 그저 복잡한 내면에 가끔씩 더 깊이 잠수해 들어가려는 시도로 보고 더 이상의 상담을 회피하였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장례식에 모인 모든 사람들마다 그 죽음을 바라보는 생각과 감정이 같을 수는 없다는 건 확실했다.

그들은 모두 서로 다른 마음으로 죽은 자의 죽음을 바라볼 것이다.



은혜는 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책임감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대하는지 그 근원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일들 끝에 고향을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 기회만 생기면 결국 벗어나고야 말리라는 자기 암시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 학교를 마지막으로 은혜는 섬으로 떠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주변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같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던 교사는 섬으로 홀로 생태계 답사를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녀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은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심지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가 그녀가 살던 조현읍에서 일어났는데 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그녀는 그 죽음에조차 자신의 숨소리가 묻어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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