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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도 좋아

(단편 연재: 조지아에 갈 결심 epi. 12)

by 우유강

눈이 내리는 공원 숲길은 낯설고 조용하며 느긋하고 차갑다.


나무들 사이 눈 쌓인 흙길에 선 은혜는 자신이 그 풍경 속 작고 가벼운 오브제 중 하나처럼 느껴졌다.

이 풍경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오브제.

이런 느낌은 멀고 먼 여행지의 이른 아침 공원에서 주로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조지아 여행이 떠올랐다.


은혜는 다시 조지아 여행에 대한 열망이 가슴속 저 아래로부터 간질간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가본 적 없는 흑해 연안의 나라.

온화한 기후에 노란 감귤을 주렁주렁 매단 감귤 밭이나 평원에 포도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농장들이 물결 같은 낮은 돌담 안쪽에서 평온하게 자리 잡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인정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살아간다는 아름다운 나라 조지아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다시 솟구쳤다.

일 년 살기가 어려우면 한 달 살기, 한 달 살기가 어려우면 일주일이라도 기어이 조지아에 가보리라 마음먹는다.



바람 때문에 눈발이 옆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은혜는 눈가에서 물기를 느낀다.

그저 눈썹 위에 날아와 붙은 눈이 녹은 거라 생각했지만 눈 아래쪽 광대 안으로 따뜻한 물이 가득 차오르고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 때문에 진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암을 의심하고 초진과 확진을 거쳐 표적항암치료를 시작하고도 지금까지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갑자기 줄줄 흘러내린다.


그저 조지아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인데 눈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온다.

참아보려 했지만 ‘끄윽 끅’ 하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멈추지 않는 뜨거운 눈물바람에 민망해할 새도 없지만 함박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공원 숲길엔 패딩을 입힌 강아지를 데리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따금 보일 뿐이다.



그녀가 콧물까지 줄줄 흘리며 흐느낀들, 큰 소리로 ‘와악, 와아왁’ 울부짖는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펄쩍펄쩍 뛰면서 핸드폰에 대고 은혜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통화를 하던 외국인 한 사람이 그녀를 흘낏 보았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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