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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든 수영 선생님

<수영하듯 살자> 13화

by 박바림


누구에게나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다. 지난 12년간의 초, 중, 고 학창 시절을 되짚어 보자. 시기별로 가장 마음 깊이 품었던 스승의 얼굴이 떠오를 테다.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얼굴들이 그립다가도, 어느새 먼 과거로 흩어졌는지 새삼스러워 몸서리를 친다.

인연의 끝은 가슴 한 편을 먹먹하게도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 사제의 인연은 수영에서도 이어졌다. 장소를 옮기고, 강사가 교체되거나, 혹은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며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수영에서 만난 스승들


처음 스승이라 부를 이는 단연코 수달 강사님이다. 물 공포 극복과 호흡을 처음 알려주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을 함께한지라 더 애틋하다. 수영은 초반에 관두기 쉽다. 호흡도 동작도 모두 어설퍼 금세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답답한데, 호통을 치는 강사를 만난다면 고통은 배가 된다. 수달 강사님은 수강생의 모자란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장난치는 얄미운 면도 있었지만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첫 시작을 꾸준히 반복할 수 있도록 해준 그에게 늘 감사하다.

다음 선생님은 새로운 수영장에서 만났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수영을 가장한 헬스트레이너’였다. 그는 4가지 영법 외에 색다른 동작들을 제안했다. 예를 들면 킥판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팔 돌리기만 2바퀴를 더 하라는 식이었다. 마침 그는 수강생을 회원님이라 불렀고, 상체와 하체 근육의 균형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유산소를 가장한 근력 트레이너가 틀림없었다.

그의 트레이닝이 효과를 보았는지 몇 달 뒤 중급 레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FM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명언을 읊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체력이 없으면 오리발과 스타트 동작 같은 기교는 배울 생각도 말아라’ 그는 매 수업 50분 동안 30바퀴 이상을 돌도록 지도했다. 취미반인지 선수 지망생 반인지 헷갈렸으나 덕분에 체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수영을 배우기 이전엔 커리큘럼이 단조로운 운동이라 여겼다. 발차기를 하다가 자유형을 배우고, 배영과 평영, 접영을 순서대로 졸업하는 단면적인 이미지를 그렸다. 실제로는 정해진 규칙이 없었다. 각기각색인 수업에서 강사님의 성격과 수영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작은 재미 중 하나였다.



나의 히든 선생님


그중 가장 독특한 스승을 만났다. 한 마디로 칭한다면 ‘한 우물 도인.’ 바로 나의 혈육인 오빠이다. 그는 어느 날 톡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도 오늘부로 수영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실은 이것보다 더 짧게 말했다.


님 나 수영 다님.


어릴 적 오빠는 수영을 잠깐 배웠다. 다만 크게 흥미를 표하진 않았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런 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수영을 한다고 했다. 공통 관심사가 생긴 우리는 오랜만에 긴 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여섯 달, 짧아야 두 달에 한 번 안부를 묻던 메시지창이 실없는 수다로 길게 늘어졌다.


수영으로 가득 메운 대화는 현실까지 흘러넘쳤다. 내가 다양한 영법을 배우는 재미를 신나게 떠들 때, 그는 오로지 자유형을 연구했다. 온라인 영상을 고심해서 분석하고 홀로 실습했다. 할머니들께 ‘자세가 고와 남자인 줄 몰랐다’는 말을 들었다며 넌지시 자랑스러워했다. (다소 성차별적인 문장이지만 옛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들만의 애정표현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남매라면 당연지사 혈육의 능력을 의심하고 보는 DNA가 있다. 그의 너스레에 과장이 심하다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는 서로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수영장에 갔다. 그러나 그의 자랑에 과장은 없었다. 지금껏 내가 봐온 일반인 중 가장 말끔한 자유형이었다. 그제야 의심을 멈추고 코칭을 의뢰했다. 마침 자유형 팔 꺾기를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연마해 온 기술을 나눌 수 있는 게 반가웠는지 수면이든 육지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작을 잡아주었다.

전문 강사는 아니었기에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한번 실험해 볼까? 새벽 강습 때 오빠에게 배운 팔 꺾기를 응용했다.

며칠 뒤 중하급에서 중상급 레일로 옮기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오지랖을 나누는 법이 없었다. 따뜻하게 해석하면 선을 침범하지 않는 배려였고, 차갑게 해석하면 어색하진 않지만 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멋쩍은 인사를 끝내면 각자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무뚝뚝한 남매, 그런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거리가 생겼다. 오빠는 나를 보면 언제나 수영 안부를 물었다. 요즘도 다니는지, 자세는 어떤지, 자신이 새로 알아낸 방법이 있는데 알고 있는지. 그는 여전히 자유형 하나만을 고수했다. 지겨워하지도 않고 더 섬세히 연마했다. 장인답게 발견한 비법을 전수하고 싶었는지 컨설팅이 끊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공중에서 팔을 휘젓도록 지시했고 엉뚱한 자세에 웃었다. 수영을 한 뒤로는 그렇게 얼굴을 자주 마주 봤다.


스승의 인연은 꽤 가까운 곳에서 이어진다. 그 인연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를 다시 느슨하게 묶어준다. 부모 다음으로 가장 친하지만 낯간지럽고, 멀게 느껴질 때도 잦은 사이. 어릴 땐 싸울 만큼 징그럽게 붙어있었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함께한 순간이 까마득하다. 서로를 잠시 등지고 각자의 세상을 넓히는 동안 우리의 접점은 좁아졌다.

그래서 그가 수영을 한다는 소식이 꽤 반가웠다. 텅 비어있던 톡 메시지창이 빈번히 채워지는 게, 좋아하는 운동으로 함께한 기억이 심어지는 게 달가웠다.

아마 수영을 하는 동안에는 오빠가 자주 생각나겠다.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팔을 분명 이렇게 꺾었는데. 안 되겠다. 나중에 꼭 물어봐야지. 스승이라는 인연으로 톡 메시지 창이 다시 길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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