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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적거려도 앞으로 가는 우리

<수영하듯 살자> 14화

by 박바림


귀하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희와 맞지 않아…


익숙한 서론이 메일함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탈락이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적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환대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취업시장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금방 잡을 기회인 줄 알았다.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르겠나, 아쉬운 메일에도 어깨를 으쓱 털어냈다. 부족했던 게 뭘지 고민했다. 포트폴리오를 다시 고쳤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작성했다. 노력한 순간들을 꾹꾹 눌러 담아 떨리는 손으로 제출 버튼을 눌렀다. ‘만약 합격한다면…’ 긴장한 몸이 풀려 붕 뜨는 상상에 빠져들곤 했다.


이제는 상상되지 않는다. 기약 없는 탈락이 반복됐다. 내가 너무 자만했나? 겸허히 마음을 낮추고 다른 곳을 두드렸다. 그래도 건조한 소식을 길게 늘어 쓴 메일이 도착했다. 그들의 친절한 문장이 되려 원망스러웠다.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긴 문단 속에 숨어있는 탈락이라는 의미를 이해할 때까지 곱씹어 읽게 했다. 무지함으로 다 읽어버리고 나면 텁텁한 쓴맛이 더 오래 맴돌았다. ‘귀하의 부족함이 아닌… 다음에 좋은 기회로 만나 뵙길…’ 의미 없는 위로라서 더 속이 쓰렸다. 어쩌면 그 메일이라도 받은 걸 기뻐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준을 낮출수록 응답을 보내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이 시기를 겪는 이들이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어딘가에 멈춰있다. 그게 어디인지도 모르겠어서 깊이 헤맨다. 자신보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사람을 보면 뒤쫓고 싶어 애를 쓴다. 어쩌면 앞지르고 싶은 충동도 든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 국내에 넘치는 취업준비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나만 어딘가에 멈춰있다.


그 불쾌한 감각이 도저히 떼어지질 않았다. 고작 취업 따위로 엄살이 심하다 할지라도, 사회에 첫 발을 딛는 과정에서 무수한 거절을 듣다 보니 꼼짝없이 짓눌렸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지도 몰라.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홀로 멈춘 사람 같았다.




발전 없이 멈추었다는 감각은 수영에서도 따라붙었다. 징그러울 만큼 평영이 늘지 않았다. 배운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평영 발차기는 4가지 영법들 중 가장 독특했다. 종아리와 발 아치 옆면으로 물을 밀어내야 했다. 제대로 힘주어본 적 없는 생소한 근육을 쓰는 탓에 통증은 날마다 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감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긴장되었다. 너무 느려서 핀잔을 들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발을 차도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대로는 수업 진행이 안되니 맨 뒤에 섰다. 그럼에도 앞사람과의 거리가 두 사람이 껴도 될 만큼 벌어졌다. 그럴 땐 영법을 바꾸어 따라잡아야 했다. 대체 언제쯤 잘할 수 있을까. 아마 수영을 관둔다면 평영 때문이지 않을까. 호흡과 발차기 이후 두 번째로 찾아온 위기였다. 답답한 마음에 강사님께 물었다. 그는 친절한 해설지 대신 뻔한 말을 해주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요. 발차기에 힘이 붙을 때까지 계속해야 해요.


쉬는 시간이 되면 곧장 킥판을 잡았다. 그간 배운 것들을 조합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물을 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평영으로 물을 탈 수 있을까. 몸을 이리저리 바꾸며 물의 저항을 덜 받는 자세를 연구했다. 발차기를 할 땐 고개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나, 아니면 몸과 평행하게 땅을 바라볼까. 숨을 쉴 때는 고개를 너무 급하게 드나, 자연스럽게 사선을 바라볼까. 허리는 조금 굽힐까, 아니면 확 펼까. 머리가 잘 안 뜨는데 팔을 더 모아볼까. 강사님의 설명과 인터넷에서 본 정보를 되새겼다. 이전과는 다르게 수강생들의 조언도 구했다. 동작을 조금씩 교정했다. 속도는 아주 느렸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꼴 사납게 내뱉었다. 그래도 했다. 얼마나 엉성하고 느리든지 계속했다.


한 달이 지나자 점차 체력이 붙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가까웠겠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두 달이 지났을 땐 종아리 안쪽과 발바닥에 물살이 잡혔다. 네 달 정도가 지나자 발차기를 하고 난 뒤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여섯 달 정도가 지나자 평영 한 바퀴를 거뜬히 해냈다. 아홉 달이 되었을 때는 허리와 골반, 생소한 근육을 쓰느라 아팠던 곳에 통증이 사라졌다. 이제는 평영이 가장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육지에서는 비슷한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희 회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오랜 고심 끝에 지원해 주셨을지…


이번에도 실패했다. 잠을 아끼고 고쳐 쓴 서류들이 무색해졌다. 오늘도 이룬 게 없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껏 침울할 타이밍이었다. 쓸데없이 노력했다.


쓸데없이.

정말 그럴까? 내가 해온 발버둥은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을까? 갑자기 평영을 처음 배웠던 때가 스쳤다. 정공법이 뭔지도 모르고, 아무도 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 무작정 허우적거렸다. 다른 이들은 헤엄칠 때 홀로 멈춘 사람 같았다. 그 장면을 다시 되짚었다. 정말로 멈춰 있었나? 그러진 않았다. 숨을 헐떡이고 눈에 띄게 느렸지만 계속하다 보면 반대편에 다다랐다.


이미 알고 있었다. 계속하면 언젠가는 된다. 다만 ‘계속’이 두 눈을 감고 잠수하는 행위 같아서, 꼼짝 못 하고 발목 잡힌 사람 같아서 두려웠다. 이력서에 빈 시간을 공백이라는 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하지 말아주길 바랐다.


그저 인정해줬으면 했다. 평영을 했을 때처럼 한순간도 멈춰있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허우적거려도 앞으로 가는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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