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16화
2주 만에 허벅지 잘라내기
늘어진 팔뚝살 컷팅
수영을 시작하기 전 홈트레이닝을 했을 때 자주 본 문장이다. PT를 받기에는 금액이 부담되어 영상 플랫폼을 뒤적거렸다. 표지에는 운동 전후 모습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붉은 점선으로 살을 도려낼 부분이 늘씬하게 그려졌다. 내 몸 같아서 지나칠 수 없었다.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전신 거울 앞에서 관절과 살점 하나하나를 뜯어보았다. 정상체중을 웃도는 몸이었으나 영 시원찮았다. 덜렁 늘어진 팔 안쪽과 밥을 든든히 먹은 배가 보였다. 붉은 점선을 상상하며 허벅지를 손으로 꼬집었다. 이 정도 살은 없애야 보기 좋을 텐데.
2주 만에 군살 잘라내기. 직설적인 문장에 설득되어 당장 매트를 폈다. 후들후들 떨리는 근육을 느끼며 한 동작씩 따라 했다.
목적이 어떻든 운동은 하는 쪽이 더 좋다. 체지방이 빠지고 튼튼한 근육이 생기는 일에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내 목적도 영상 그대로였다. 살이 툭 떨어져 나간 늘씬한 몸을 갖는 것. 뒷심이 꽤 좋은 편이라 한 달은 꾸준히 운동했다. 그러나 점차 흥미가 식었다. 아무리 따라 해도 사진과 비슷해지지 않았다. 허벅지 안쪽은 여전히 단단하게 뭉쳐있었다. 복부 중앙에 근육 선이 드러나긴 했으나 옆구리에 곡선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손으로 밀어 넣었다. 살이 아니라 갈비뼈가 만져졌다. 아무래도 운동을 한다고 바뀔 수 있는 체형이 아니었다. 타고난 몸이 점점 미워졌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었다. 알아차린 건 취업학원 수강생들과 잡담했을 때였다. 누군가 다이어트 이야기를 꺼냈다. 뱃살만 좀 빠졌으면, 지긋지긋한 팔뚝살, 턱살과 다리라인 좀…… 그러다 나를 향해 물었다.
“수영장 다니실 때 민망하진 않아요? 몸이 다 드러나잖아요.”
그런가, 그랬지. 수영장에 처음 입성한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공용 탈의실이 무척 어색했다. 옷으로 가려둔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게 민망했다. 최대한 덤덤히 벗었다. 주저할수록 부끄러움이 더 밀려올 것 같았다.
곧장 샤워실에 들어갔다. 그때 머리가 회색으로 흰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샤워기 물에 등을 대고 서있었다. 바닥을 따갑게 내리치는 물소리에 지지 않고자 목소리를 높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혼자 조용히 거품칠을 하는 아주머니와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별다른 눈짓은 없었다. 그들은 밀린 대화를 마저 하거나, 씻거나,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그들은 차가운 물 온도가 대수롭지 않아 질 만큼 헤엄쳤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운동. 날씬한 근육. 붉은 점선. 그러나 내가 알던 것과 달리 그들의 몸은 너무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풍채가 넓고, 누군가는 얄상한 다리와 달리 배가 불룩했다. 마른 상체에 반해 튼실한 허벅지를 지녔거나 다부진 팔뚝이 돋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몸이 드러나면 민망하지 않을까. 분명히 나도 했던 고민인데 어쩐지 낯설게 들렸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까무룩 했다. 그때 깨달았다. 거울 앞에 서는 일이 줄었구나.
가끔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날이 생긴다. 그럴 때면 다시 홈트레이닝 영상을 찾는다. 익숙한 문구들이 보였다. 2주 만에 뱃살 컷팅, 팔뚝살 제거, 허벅지살 이별하기. 싱거운 음식을 먹다가 배달음식을 맛보면 더 자극적이듯 오랜만에 본 문구들이 더 강렬했다. 내 몸이 사진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졌다. 직접 눈으로 비교하고자 거울 앞에 섰다.
상의를 들추려다 멈추었다. 수영장에서 만났던 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희희낙락 웃음보를 터트리며 온몸을 수건으로 터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마른 몸으로 분주히 출근준비를 하는 직장인, 젖살이 붙어있는 학생, 출산으로 늘어진 배와 수술자국을 지닌 여성, 허리가 구부정하지만 씩씩하게 수영 가방을 멘 할머니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새벽 6시에 샤워장에 모였다. 운동을 거르지 않는 몸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구석이 없었다.
들춰 올리려던 상의를 다시 내렸다. 아무래도 영상 이미지 속 ‘애프터’ 모습에 가까워지긴 어렵겠다. 하지만 괜찮았다. 다양한 몸을 지닌 이들이 내일도 수영장에 모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