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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이네

<수영하듯 살자> 15화

by 박바림


새벽 수영에 다닌다고 하면 자주 듣는 말이다. 취업학원 동기들은 어떻게 그 시간에 일어나는지, 진정한 미라클 모닝이 아닌지 감탄을 쏟아냈다. 듣고 나면 왠지 모르게 겸연쩍었다. 뿌듯함을 누설하여 상대의 호의를 억지로 끌어낸 건 아닐까. 물론 칭찬이란 귀한 마음이 담긴 말이다. 서로를 향한 격려보다 시기와 질투가 쉬운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단맛이 삶의 원동력인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부룩하다. 건강을 위해 단 음식을 조절하듯, 칭찬과 격언을 조금만 들으려 하는 습관이 생겼다. 너무 중독되면 삶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걸 이제는 알아서 말이다.



갓(god) 생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god) 같은 생활. 갓생이라는 말과 함께 따라다니는 짝꿍이 있다. 바로 자기 계발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가꾸는 행위라는 인상이 짙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면 어딘가 모순이 느껴진다. 개인의 삶은 지극히 다를 텐데, ‘갓생’이라는 단어가 가진 모양새는 어쩐지 일관적이다. 아마 모두가 비슷하게 묘사할 것이다. 일찍 일어나기, 필독서 읽기, 영어단어 외우기. 가만히 멍 때리는 일보다 빈틈없이 할 일을 가득 메꾸는 쪽에 고개를 끄덕일 테다.


무언가를 해내고 결과를 얻는 삶. 역설적으로 이 생활에 집착했던 때는 우울감이 짙은 시기였다. 시작은 질문이었다. ‘왜 해야 하지?’ 매일 하던 산책과 운동, 영어와 전공 공부에 모두 의문이 달렸다. 그러나 관둘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요즘 뭐 하고 지내?’라는 말에 ‘취업준비’라는 말만 할 수는 없었다. 삶의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선 작은 공들을 끌어모아 탑처럼 쌓아둬야 했다. 근황을 한참 누설하고 나면 지인은 정말 열심히 산다며 띄워줬다. 가라앉아있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들의 인정 덕분에 포기하고 싶었던 하루가 조금 의미 있어 보였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루틴을 다시 했다. 신체에 맞지도 않는 운동을 무리한 탓에 무릎 연골이 닳아 시큰거렸다. 멈출 수 없었다. 다음에도 같은 말을 듣고 싶었다.


갓생이네.


시작은 자기만족이라 하지만, 어쩐지 지속의 동력은 타인의 찬사에 뿌리를 두고 있어 보인다.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을 외부의 긍정으로 이해했다. 부정을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목표 없는 인정을 쫒느라 에너지를 소진했다. 방향성이 없었다. 미비했던 우울증이 깊어갔다.


그 뒤로 갓생이라는 말이 왠지 거북해졌다. 열심히 사는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여전히 동경한다. 다만 부지런한 인생의 이미지가 하나로 귀결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무수히 흘러갈 인(人) 생


지금도 누군가는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어두고 있을 테다. 누군가는 책상에 앉아 남은 일을 하고 있겠다. 갓 자라나는 생을 돌보느라 바쁘거나,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사람까지. 신처럼 확고하지 않은 무수한 생을 짐작한다. 물처럼 형체가 없고, 여러 방향으로 흘러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시간을 상상한다.


세간은 수영의 효능을 이렇게 설명한다. 공복 유산소로는 칼로리 소모가 가장 높고 근육을 다양하게 쓴다고. 내가 수영을 계속할 이유는 그보다 게으르다. 물에서 발을 대강 첨벙거려도 운동을 한 기분이라 좋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편하다. 다른 이들과 기상시간이 조금 이를 뿐이지 꼬박 7시간을 잔다.

수영을 하기 힘든 새벽이면 언제든 포기한다. ‘아침형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영광을 놓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어제 너무 멋있는 사람을 발견해 밤새 영상 목록을 뒤적이느라, 이불냄새가 너무 포근해서, 수영장에서 울리는 소음도 듣기 싫을 만큼 귀가 피로해서. 혹은 오늘은 잠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수영 전도사’지만 수영이 매번 만병 통치약은 아닐 때도 있다.


학원 수업이 끝난 후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불을 모두 끄고 보슬보슬한 이불을 덮었다. 방금 누웠으면서 일어나기 싫다는 말을 중얼거린다. 알람을 맞추기 위해 휴대폰 화면을 열었다. 시계가 커다랗게 떠있었다. 화요일, 밤 10시. 내일은 수영에 가는 날이다. 몸이 너무 무거운데 제때 일어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못 가면 뭉친 근육을 늘릴 요가나 하지 뭐. 실없는 다짐을 했다. 내일도 갓생은 아닌 인생을 살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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