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17화
나를 설명하기 난감할 때가 있다. 특출 나게 멋진 이름도 아니고 용모 한 구석이 빼어나지도 않다. 그렇다고 배워온 게 남달리 유능하지도 않다. 뉴스에서는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이가 무얼 자랑스럽게 꺼내 말할 수 있을까.
이름, 거주지, 학벌, 직장 혹은 재력. 이러한 정보들은 낯선 이와 만났을 때 필요하다. 상대의 육체 너머 그가 살아왔을 환경을 더듬어보는 데에 큰 힌트가 된다. 이름 석자에 묻은 분위기로 상대의 성격을 짐작하고, 배워온 분야가 무엇인지에 따라 관심사를 읽는다. 그러니 속물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상대를 기민하게 살피고 친해지기 위한 순수 노력인 셈이다. 인간관계란 그렇게 연결된다. 단어와 문장으로 정돈된 정보가 없으면 곤란하다. 낯선 이에게 선뜻 마음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매번 이롭지만은 않았다. 더 보기 좋게 다듬어야 한다는 부담이 따랐다. 다르게 말하면 쓸모.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당신과 친해질 자격이 있다고.
그래서 명함이 없다는 건 꽤나 외로웠다. 내세울 게 없어 자주 숨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흔쾌히 가까워지고 싶을 사람이 못 된다고 여겼다.
그런 면에서 수영장은 참 이상한 곳이다. 미묘한 낌새를 눈치챈 건 친구들과 대화했을 때였다. 나는 어김없이 수영 이야기를 했다. 거기 사람들이 참 순박한 면이 있다고. 저번에는 누가 물안경이 벗겨져 바닥을 두리번거렸는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유형을 하면서 찾아다녔다고. 별거 없는 밋밋한 실수담이지만 어르신들의 구수한 말투와 거기에 깔깔 거리는 젊은이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즐겨하던 게임, 동물들이 주민으로 나오는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내 마을에 나타난 귀여운 주민을 자랑하듯이 그들을 모사했다. 그러자 친구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다들 뭐 하시는 분이야?”
신나게 떠들다가 잠깐 머뭇거렸다. 글쎄, 새벽에 나오시는 걸 보면 아마 직장에 다니시지 않을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넌지시 말을 흐렸다. 매일 아침 눈인사를 주고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났다. 늘 같은 레일에 있었지만 정작 아는 게 없었다. 어디 사는지, 뭘 타고 오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물 바깥의 생활은 아무것도 몰랐다.
반대로 그들의 물속 필모그래피는 모두 꾀고 있다. 풀장에는 몇 분쯤 들어오는지, 인사를 할 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잘하는 영법과 힘겨워하는 영법이 뭔지, 들고 다니는 짐꾸러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같은 것들. 심지어는 가지각색인 웃음소리의 주인을 모두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함에 쓰일 이름 석자는 몰랐다.
수영장에서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굉장히 길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 있잖아, 보통 3번째에 서서 한 번도 안 쉬고 쉬는 시간까지 수영하는 사람. 혹은 그 사람 말이야, 매일 다른 아주머니 아주버님들께 손을 빠르게 흔들면서 방긋방긋 인사하는 사람. 간결한 명사 대신 그들의 특징을 설명하느라 말이 길어진다. 그나마 명확한 방법은 수영복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일반 의류보다 브랜드가 다양하지 않음에도 똑같은 복장을 입은 이는 드물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매서운 눈빛에 반해 귀여운 아이스크림이 그려진 수모를 쓴 아주머니를 보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말랑한 구석이 숨어있을 것이 상상됐다. 수수한 얼굴에 반해 화사한 은비늘 수영복을 입은 이도 있었고, 과묵한 은둔 고수처럼 검은색 세트를 착용하는 이도 있었다. 수모, 수경, 수영복 3요소에 각자의 취향이 가득 담겼다.
통성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물속을 좋아하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쉽게 젖어버릴 명함, 사회에서 부르던 호명은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고 헤엄치는 동안 씻겨 나갔다. 머릿속에 각인할 명사 대신 눈인사에 익숙해졌다. 서로에게 스며들어 반가이 맞이한다. 나를 서술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쩐지 해방감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 한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한 주, 그다음 주, 한 달이 걸리도록 모습을 감췄다가 다음 달이 되어서야 만났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주어 없이 말을 건넸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꽤 오랫동안 안 나오신 것 같아서요.”
“아, 응. 몇 번 안 나오니 귀찮더라고. 저번 달 통으로 쉬었지 뭐야.”
“그럼 다행이에요. 잠이 보약이니까요. 사실 어디 아프신가 걱정했어요.”
“아냐, 별일 없었지. 그래도 기억해 주다니 너무 고맙네.”
오늘도 서로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옷을 다 갈아입고 어디를 가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다음에 봐. 네, 다음에 또 봬요. 서로의 미래를 빌어줬다. 다시 만나서 같이 수영을 할 소박한 미래를.
당분간 이곳에서 내 소개를 다듬어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는 데에 명함은 필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