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19화
무수한 단톡방이 있었다. 목적과 대화 주제 모두 가지각색이었다. 학급 단체방, 동기 단체방, 조별과제 방, 졸업반, 유독 깊어진 친구들 단톡방까지. 작은 메시지 창에서 하루 종일 온갖 감정이 흘렀다. 자기주장을 펼치느라 화를 돋우거나 실없는 이야기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활달하게 오르내리던 대화창들이 어느 순간 굳었다. 광고 메시지 아래로 덮여 채팅 목록 가장 밑에 잠겼다. 오랜만에 들어가 보면 기계적인 알림이 메아리 마냥 남아있었다. (알 수 없음)님이 나갔습니다. 마치 무덤처럼.
하루에 메시지를 받는 횟수가 몇 번이나 되는지, 이제는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이다. 미동 없는 채팅 목록에 익숙해질 무렵 새로운 알림이 울렸다. 파란 수모를 쓴 사람. 그가 초대한 단톡방이었다. 그는 안심하라는 듯 이렇게 말했었다.
‘회식 장소를 정할 때 말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해요.’
그의 장담과는 달리 빨간 숫자가 줄어들 일이 없었다. 주요 화자는 나를 초대한 파란 수모, 은광(가명)님이었다. 그는 스마트 워치에 기록된 운동량을 공유하거나 출근길 일화를 풀었다. 그리고 새벽 운동으로 깨어난 식욕을 간식 사진으로 알렸다. 텍스트 라디오에 호응해 주는 이는 드물었다. 나는 1인 청중이 된 것처럼 틈틈이 답장했다. 상대가 느낄 무안함을 못 견뎌하는 성격인 탓도 있지만 오랜만에 맞이한 단톡방이 꽤 반가웠다. 한 약속에 한 명 이하인 소수 모임을 좋아했기에, [수영 중급]이라는 단체스러운 이름과 40명이 넘는 인원수가 새삼스러웠다.
참여자 리스트를 둘러보았다. 모르는 이름들이 줄을 지었다. 프로필 사진 위로 흐릿한 회색과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사진을 하나씩 눌러보았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를 깜짝 상자를 여는 듯했다. 얼굴이 낯익은 이도 있고 처음 보는 이도 있었다. 셀프 카메라, 혹은 누군가 찍어줬을 사진이 보였다. 손주이거나 조카, 자녀의 아낌없는 미소를 담아둔 이도 있었다. 다들 누구일까. 물 밖에서 본 적 없는 사람들. 미스터리의 실마리에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캘린더 어플을 켜 새로운 일정을 등록했다. 오늘은 수요일이었고, 회식은 금요일이다. 그들도 나를 궁금해할까? 나를 알아볼까? 무엇을 입어야 할지 벌써 고민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 늦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예약장소는 중식집이었다. 긴장되었다. 바깥사람을 공용 샤워장에서 만나는 일도 민망하지만, 수영복만 보던 이들과 옷을 입고 만나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할 줄은 몰랐다. 큼큼 목을 몇 번 가다듬고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룸으로 들어갔다. 이미 세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목울대를 조금 높여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은광님이 가장 먼저 도착한 듯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두 여성분이 자리했다. 자주 보던 얼굴인데도 낯설었다. 머리카락이 있는 게 당연하건만, 다들 수모가 없으니 이상했다. 멋쩍은 게 나뿐만은 아닌지 ‘수영장에서만 보다가…’라는 말을 서로 반복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두 명씩 모습을 비췄다. 어머님 아버님이 다수였고 또래도 몇몇 보였다. 처음엔 주어 없이 서로 높임말을 쓰며 음식을 나눠먹었다.
슬슬 배가 찰 무렵이었다. 은광님의 주도하에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내게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단톡방에서 보았던 이름의 주인을 너무도 알고 싶었다.
첫 순서는 은광님이었다. 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운동 광인이다. 수영은 매일 새벽 6시, 저녁에는 요가를 배우며 주말에는 클라이밍을 한다고 했다.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고수를 넘어 무언가에 미쳐있던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긍정의 의미이다.
다른 이들의 자기소개도 흥미로웠다. 나와 비슷해서 반가운 이와, 전혀 달라서 관심이 가는 이들까지. 특히 글을 좋아하는 일언님이 자주 생각난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강력한 딱 하나의(一) 말씀(言), 일언입니다.”
함께 글을 동경하는 이로써 정말 간지나는 이름이었다. 점잖게 멋지다는 단어를 쓰고 싶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표현이 안 된다.
그의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 퉁퉁이 아버님이라 칭했다. 나만의 별칭이었다. 그는 친근함을 툴툴거리는 어투로 표현했다. 중상급으로 반이 바뀌었을 때에도 ‘할만해?’라고 묻는 친절한 아주머니들과 달리, 퉁퉁이 아버님은 이렇게 말했다. ‘힘들면 이리로 다시 오라니까!’ 그런 장난스러운 모습과 달리 육지생활은 진중해 보였다. 인쇄업에서 일을 하는데 틈틈이 시를 써왔다고, 자신이 쓴 짧은 시를 낭독해 줬다. 소개한 이름에 부족함 없는 시였다.
반전과 적중을 오가는 자기소개들이 펼쳐졌다. 그중 가장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 있었다. 나와 반대쪽으로 맨 끝에 앉은 두 할머니였다. 자기소개 시간에는 무슨 나이를 물어보냐, 알면 다친다고 웃으며 성내었다. 나중에 슬쩍 들어보니 7학년과 8학년을 재학 중이라 했다. 그렇게 허리가 곧고 정정하게 수영을 하는 데에도 말이다.
회식에 오기 전 두 할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들에게도 참여하실 생각인지 물었다. 눈인사를 자주 했던 이들이라 정이 들었다. 두 분은 손사래를 쳤다. 젊은 사람들만 모여서 불편하신 걸까, 그러실 필요 없는데. 안타까워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한 번 가봤는데 젊은 사람들이 술도 안 마셔서 재미없어.”
할머니들은 회식에서 몸소 보여주었다. 모두 제로 탄산음료를 주문할 때 두 분만 고량주 두 병과 맥주 세 병을 마셨다. 어쩜 이렇게나 잘 드세요? 저는 소주 한잔도 못 마시는데… 엄청 건강하신 것 같아요. 할머니들은 웃으며 답했다. 아직 멀었어, 원래 같으면 밤새도록 마시지. 집에서 소주 한 병씩은 기본 아닌가. 혼자서도 밥 세끼를 꼬박 챙겨 먹고 운동도 빠지지 않는 이들. 내가 어떻게 나이를 먹고 싶은지 윤곽이 확실해졌다.
예상치 못한 이들이 모여 종잡을 수 없는 대화 주제가 오갔다. 서로 ‘님’이라는 호칭을 부르고, 나이도 모두 다르지만 어쩐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들을 보며 가까운 이들이 생각났다. 나와 동갑인 아들을 둔 어머님을 보면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나이에 비해 정정한 할머니들을 보면 허리가 굽고 키가 작아져가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고향이 서울이 아닌지라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웠다면, 같이 수영을 할 수 있다면, 지금 만나서 웃고 떠드는 곳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을 곱씹었다.
해가 지날수록 오래 본 얼굴보다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이 가끔은 애석하다. 그럼에도, 오늘 새로 만난 이들을 꾸준히 보고 싶은 욕심이 불어났다. 그들이 건강히 살아주는 만큼, 그들과 닮은 내 오랜 인연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다음 회식은 언제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생각부터 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음에도 이번 모임이 썩 즐거웠다. 학연과 지연을 넘는 인연이라니,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이었다. 삶에 틀이 정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단톡방 알림이 울렸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를 남겼다. 만나서 즐거웠어요, 다음 주 수영장에서 보아요. 시끄럽게 울리는 이 단톡방도 언젠가 무덤처럼 맨 아래에 묻힐지 모른다. 언제 아는 사이였냐는 듯 말 한마디 없이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누리고 싶었다. 먼 과거가 된 순간이 불쑥 떠오르는 것도, 오래된 사진을 발견하면 잘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새로운 만남과 맺어진 인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린 자가 갖는 특권이니 말이다.
은광님이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회식은 언제가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