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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발 플립턴 스타트!

<수영하듯 살자> 21화

by 박바림


발차기를 열심히 하다가 네 가지 영법을 익히면 끝나는 거 아닌가. 수영을 조금 지루한 종목이라 여겼다.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심드렁한 마음을 담은 판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나의 짧은 식견이었다. 어릴 적 배운 더하기 빼기가 혼합 연산이 되고, 방정식이 되고, 함수가 되어 더 깊은 수학 세계에 입문했듯이. 수영도 익힘이 쌓일수록 무궁무진한 배울 거리가 있었다.



가끔은 재미에 한 눈 팔자, 오리발


사람들이 월요일마다 큼직한 가방을 들고 다녔다. 오리발이었다. 초급 시절엔 부러웠다. 중급 레일 이상부터 배웠기 때문에 고수의 상징처럼 보였다. 나도 언젠간 써보려나? 막연한 미래를 곱씹었건만 이제는 직접 들고 다닌다.

중급에 입성하자마자 오리발을 장만했다. 형광 주황색이 포인트였다. 하얀 부분은 뽀얗게 광이 나서 새 신발을 산 마냥 뿌듯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오리발 효과는 이러했다. 물에서 힘을 안 들여도 앞으로 쭉쭉 나가서 재밌다고. 겨우 발에 뭐 하나 끼운다고 쉽게 뜰 리가, 튜브도 아닌데. 그의 호들갑에 동조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평소보다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레일 바깥에 사람들의 오리발이 옹기종기 놓여있었다. 길이와 색상 모두 수영복처럼 각양각색이었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맨발로 몸을 풀고 있었다. 곧장 줄을 따라 킥판 발차기를 했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땐 이 발차기가 그렇게나 힘들었다. 그때에 비하면 체력이 많이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발차기만으로 두 바퀴를 다녀올 쯤에는 진이 빠졌다. 옛날에 했던 말을 머릿속에 외쳤다. 제발 발에 모터라도 달려있었으면.


인간의 전동모터, 그것은 실존했다. 오리발을 신으니 팔을 휘저을 필요 없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발 앞으로 넓게 뻗은 면이 부채처럼 물속을 펄럭였다.

지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틀린 게 있다면 재밌는 정도가 아니라 짜릿했다. 비가 시원하게 내린 뒤 빠르게 흐르는 물살 같았다. 먼저 출발한 이들과 얼굴을 마주치자 감탄사와 웃음이 절로 났다. 이걸 이제야 배우게 하다니, 평소라면 수업시간 30분쯤 숨이 턱턱 막혔을 테지만 지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힘이 부족해 어려웠던 접영도 문제없었다. 오리발 덕분에 롤러코스터를 타듯 앞으로 뻗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오리발을 한 손으로 들고 앞뒤로 흔들었다. 땅이 미비하게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흔들거리는 놀이기구를 타고 나왔을 때와 비슷했다.

한편으로는 찝찝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숨이 헐떡이지 않았다. 운동이 덜 된 거 아닐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구에 의존해도 되는 걸까. 태생이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탓에 오리발이 조금 못 미더웠다. 재미와 놀이는 고생의 뿌듯함과는 먼 극단에 있는 감정이랬다. 쉬워서 재밌었던 거지 무언갈 얻은 게 아니다. 오리발을 신나게 흔들던 손에 힘이 풀렸다.


질문을 틀었다. 오늘 경험한 걸 또 해보고 싶은가? 곧바로 ‘응’이라고 답했다.

그런 것들, 일상에서의 오리발들을 생각했다. 삶을 미루고 싶을 때 앞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보조장치가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친구와 보내는 짧은 저녁시간, 산책이 무료할 때 듣던 음악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곤, 시끄러운 생각들을 모두 내보낼 기세로 한숨을 쉬었다. 오리발의 역할을 믿기로 했다. 이 정도의 요행만으로는 게을러지지 않아, 무언가에 쉬이 질려버리거나 지치지 않게 도와줄 뿐이야. 그렇게 다독였다.



다시 도약하기, 플립턴


영문도 모른 채 킥판 두 개를 받았다. 양손으로 하나씩 잡은 다음 앞 구르기를 해보라고 했다. 플립턴 연습이었다.

플립턴이란 레일의 끝에 도달한 뒤 방향을 바꾸기 위한 회전법이다. 앞 구르기는 쉽지! 학창 시절에도 체육시간을 가장 기다렸던 몸인지라 운동신경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실습도 꽤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이럴 때마다 큰 코를 다친다. 물 속이라 코가 다치는 대신 무지하게 매웠다. 몸을 회전할 때마다 코 속 깊은 곳까지 물이 파고들었다. 머릿속 뇌수 흐름이 느껴질 만큼 찡했다. 초보 딱지를 뗀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황급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침이 절로 나왔다. 누가 봐도 물을 마셨구나 눈치챌 정도였다. 멋쩍게 코를 킁킁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서있었다. 강사님은 뒤늦게서야 말했다.


“물을 안 마시려면 코로 숨을 내쉬고 있어야죠.”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 그런 건 미리 말해주셔야죠…


날숨을 신경 쓰자니 팔을 반듯하게 펴는 걸 놓쳐 균형을 잃었다. 앞 구르기가 아닌 옆 구르기가 되었다. 반듯하게. 반듯하게. 그러나 계속 옆으로 휘었다. 강사님은 연습하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설명했다. 회원님들 중 각도를 틀어서 회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였다) 그건 ‘반플립’이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그건 나중에 배울 거고 지금은 바르게 회전해야 한다고. 의도한 적이 없었는데 그럴싸하게 이해해 줘서 감사한 순간이었다.


플립턴은 수영 2년 차에 접어들 지금까지도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도무지 친해지기 어려운 기술이다. 여전히 홀로 옆 구르기를 하고 있고, 찌릿한 코를 문지르며 강사님의 가르침을 다시 되짚었다. 한 회원분은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잘 안 되는 이유를 가르쳐주려 했다. 감사했지만 누군가의 조언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짐작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낯선 기술에 익숙해질 반복의 시간이. 조금 답답해도 괜찮았다. 방향을 뒤집어 다시 출발하는 플립턴, 새로운 도약은 엉터리 구르기를 시도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타트!


세 가지 번외 기술 중 가장 두려운 것은 스타트였다. 다이빙이나 수영 시합에서 점프하듯이 입수하는 동작이다. 머리부터 물 안에 들어간 다는 점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바닥에 부딪혀버리면 어떡하지’ 같은 것들이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실수가 안면 치기 혹은 배치기였다. 덕분에 매번 배와 허벅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닥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머리부터 낙하한다는 게 영 쉽지 않은 담력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들어 올리게 됐고 배가 부딪혀 첨펑-! 큰 소리를 냈다. 시뻘게진 몸으로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섰다. 몸에 묻은 물처럼 두려움이 뚝뚝 떨어졌다. 익숙해져야 해, 반복해야 해. 그러나 그건 직접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숨을 작게 고르고 물속에 뛰어드는 일을 몇 달 반복했다. 점차 물 안경이 벗겨지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몸의 움직임도 읽혔다. 방금 다리를 너무 빨리 접었다, 이번에는 무서워서 고개를 들어버렸어. 되새기고 다시 교정했다. 그러다 우연히 완벽한 스타트를 해내는 때가 생겼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손 끝부터 머리, 흉부, 복부, 다리까지 따가운 곳 없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신이 났다. 홀로 넓게 쓰는 레일을 더 힘차게 수영했다. 쾌감을 곱씹으며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섰다. 여전히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지만 ‘할 수 있다’는 말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며 줄을 섰다.


‘자유형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게 무색할 만큼 생각도 못한 것들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 뭐가 더 있겠어. 삶을 단조롭다며 누그러뜨렸던 마음이 수영을 배우며 조금씩 허물어졌다. 다음에는 무얼 배우게 될까. 수업이 끝나고 어떤 하루를 보낼까.

하나 확실한 건, 앞으로도 작은 선택 하나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질 것이었다. 낯설던 게 익숙해지고, 두렵던 일이 가끔은 즐거울 테다.

남루하고 단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수영장에서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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