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20화
무언가에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난관이 찾아온다. 질리도록 헤맸던 평영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맨 뒤에 숨기 바빴던 이가 이제는 중간에 자리할 만큼 속도가 붙었다. 가끔 발차기를 넓게 해 옆사람과 부딪혀 발가락을 다칠 뻔한 정도는 있었지만 별다른 오점은 없었다. 이렇게 무언가에 안정되어 갈 때쯤 늘 새로운 벽을 만난다. 네 가지 영법 중 마지막 난관은 접영이었다.
종종 건너편에 있는 상급반 회원들을 흘긋 보았다. 보기엔 쉬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누군가 무엇을 여유롭게 한다면 고수이기 때문이라는 것. 배영과 평영에게 두 번 속은 뒤에야 한층 신중해졌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 요통이 잦았고 뻣뻣함으로는 어디에나 뒤처지지 않을 몸이었다. 접영의 큰 관건인 웨이브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강사님은 웨이브 순서를 머리끝과 어깨, 허리, 다리로 나누어 알려주었다. 먼저 머리를 깊이 숙여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다음 천천히 어깨, 가슴, 상체를 펴 곡선을 만든다. 발차기는 두 다리를 모으고 딱 두 번만 찼다.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고 웨이브를 시작하기 전, 웨이브가 끝나고 물 바깥으로 나올 때 한 번씩이다. 이때 다리 사이가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게 중요했다. 중요하다는 건 하기 어렵다는 뜻이고, 역시나 한참을 헤맬 거라는 예고였다.
처음에는 킥판을 잡았다. 접영을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아는 현재까지도 킥판을 잡는 접영이 가장 어렵다. 물에 뜨는 기구를 잡고 잠수할 기세로 팔과 얼굴을 집어넣는 게 쉽지 않았다. 몸이 예상보다 빨리 떠올라 발차기 타이밍도 엇갈렸다. 하지만 즐거웠다. 상체를 쭉 밀어낸 채로 움직이는 영법들과 다르게 접영은 춤을 추는 듯했다. 가슴을 펴는 동작이 스트레칭 같았다. 아침마다 20분 정도 요가를 한 덕인가. 복근에도 힘이 들어갔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가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구사했을 때의 쾌감처럼, 동작을 연결하는 맛이 있었다.
난관은 발차기였다. 양다리를 나란히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꽤 어려웠다. 물고기의 꼬리처럼 나풀나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 사이가 벌어져 난잡하게 가위 치기를 했다. 그들은 어떻게 몸통과 꼬리 힘만으로 헤엄을 치는 걸까. 말랑하게만 보였던 물고기가 얼마나 다부진 몸일지 실감했다. 인간을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 분류하지만, 다른 운동이나 수영만 해보아도 부족한 게 얼마나 많은 종족인지 알게 된다.
결국 물고기와 달리 아가미가 없기에 팔 힘을 빌려야 했다. 처음 배운 건 한 팔 접영이었다. 팔 한쪽은 글라이딩 자세로 앞을 향해 뻗고, 다른 팔은 자유형처럼 바깥으로 원을 그려 숨을 고른다. 다시 머리, 이후에 팔을 물 안으로 집어넣어 웨이브 했다. 강사님은 이를 양팔 접영의 약식이 아닌 다른 영법이라 칭했다.
양팔 접영의 핵심은 없다. 모든 연결 동작을 잘 해내야 했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제자리에서 꾸물거리는 갯지렁이가 되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타이밍과 리듬이었다. 두 번의 발차기가 엉키면 팔 동작까지 모두 엇박이 되었다. 특히 입수 때는 머리를 먼저 집어넣고, 나올 때는 어깨 방향을 틀어 팔을 반듯하게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만세가 되어 ‘살려 접영’이 되었다. 자유형에 이어 두 번째 SOS 구조 요청이었다.
잘못된 동작을 익히지 않기 위해 강사님과 회원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분명 배운 대로 하고 있으나 더뎠다. 못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수업을 제대로 안 듣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성실함이란 영특한 이가 되길 꿈꾸는 평범한 이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강사님이 추가 설명을 하는 동안 옆에서 팔 동작을 슬쩍 따라 했다. 왜 안 되지. 골똘히 연구하는 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강사님이 다가와 말했다.
“회원님은 동작이 잘못된 게 아니라 힘이 없는 거예요.”
이번에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강사님은 동작을 가르치고 나면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천천히 가도 되니까 정확하게 해 보세요. 빠르게 간다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자유형과 배영, 평영. 앞선 세 영법을 배우며 이제는 제법 담담해졌다. 못하면… 못하는 거지. 언젠간 해낼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는 조금 놀랐다. 미래를 지독하게 계획해야 직성이 풀리던 이가 꽤나 헐렁해졌다. 그건 다음 생에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오늘날 가장 재밌는 영법을 고르라 하면 망설임 없이 접영을 꼽는다. 다만 가장 잘하는 영법을 고르라 하면 대답이 달라진다.
애정하는 것에 늘 조건이 필요했다. 잘하거나 특별하거나, 재능과 관련된 이유가 붙어야 했다. 이제는 조금 단순하다. 여전히 접영만 하면 숨이 가빠 오르고 금세 지치지만 그럼에도 즐겁다. 얼굴이 물속에 푹 담기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듯한 순간, 육지에서 취할 리 없는 동작을 구사하는 게 소소한 일탈이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살려 접영’처럼 보일지라도 괜찮았다. 합리적인 이유는 부족하겠지만 기꺼이 좋아할 마음은 흘러넘쳤다.
낯설던 게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난관이 찾아온다. 실력이 늘어 회원들 중간에 서다가도 접영을 할 때면 다시 맨 끝으로 간다.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있는 반대편을 향해 뒤늦게 출발한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느라 바쁘다. 오늘은 꼭 다리를 모아서 발차기를 하자. 가슴을 펴고 어깨를 돌리는 것도 잊지 말고.
후웁. 숨을 들이마시고 발로 힘차게 벽을 밀었다. 하나- 두울. 마음속으로 구령을 외치며 한 동작씩 차근히 옮겼다. 정말 좋은데? 저번보다 훨씬 잘해. 가슴 펴는 거 잊지 말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을 작은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했다. 동작을 반복하며 다듬고 또 다듬었다. 좋아하는 만큼 그저 즐겼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