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4화
무산소 수영
유산소 운동이란 충분한 산소 공급을 조건으로 지속적인 자극 및 부하를 가하는 운동이다. 즉 숨이 가쁘지 않은 상태에서 균형 있는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소비한다. 수영도 그렇다. 그러나 초보인 나에겐 틀림없이 무산소 운동이었다.
푸학!
킥판을 잡고 발차기와 호흡을 했다. 도착지점에 닿을 때쯤엔 꼭 우스꽝스러운 날숨이 튀어나왔다. 내쉰 게 아니라 튀어나온 것이었다. 민망함에 숨을 참아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미 생존본능 수준에 이르렀는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들 평온히 숨을 고르는 반면 나는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늘 장난스럽던 강사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괜찮은지 물을 정도였다. 무안한 마음에 손사래를 쳤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레일 끝에 붙었다. 풀장 밖 벽면에 빨갛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심혈관 질환자 및 고혈압 수영 금지>. 아빠를 닮아 혈압이 꽤 높았다. 경고문구를 보니 뜨뜻한 얼굴이 정말로 터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선생님, 저 5분만 쉬면 안 될까요.”
“안 되지 사람아, 수업시간 30분 남았는데 5분이나 쉬면 어떡해?”
“……”
5분을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꺼낸 말이었건만 강사님은 더 논리적으로 맞받아쳤다. 1분의 시간을 겨우 허락받았다. 레일 끝에 바짝 붙어 멍한 눈으로 사람들을 구경했다. 원래 지구력 하나는 자신 있는데, 오래 달리기를 할 때면 쉬지 않고 완주하는데. 숨을 마음대로 쉴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강습을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차였지만 조바심이 났다. 같이 시작한 친구 L에 비해 진도가 너무 느렸다. 그를 향한 질투보다는, 내가 남들에 비해 너무 뒤떨어지는 게 아닌지 우려됐다. 강사님은 내 고민을 듣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킥판 말고 내 손 잡고 발차기랑 호흡 한 번 해보자.”
괜히 물었다. 강사님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절대 못 가라앉는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그래도 발전한 게 있었다. 일주일간 물에 조금 익숙해졌다.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는 데에 망설이는 시간이 짧아졌다. 그의 구호에 맞춰 호흡과 발차기를 했다. 강사님은 물속에서 빵빵해진 내 볼을 툭 건드렸다.
“공기를 삼켜야지. 입 안에 머금고 있으니까 숨이 차지.”
호흡이 아니라 어릴 적 친구들끼리 하던 숨 참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동안 내가 한 호흡은 음파가 아니라 ‘헙푸학’이었다. 숨을 입에 머금을 땐 헙- 뱉을 때 푸학. 사실 산소를 마신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강사님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볼에 머금은 공기를 목으로 삼키는 시늉을 했다. 산소를 삼켰다는 감각이 확실하지 않아 열심히 상상해야 했다.
호흡은 조금씩 교정이 되었으나 발차기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뒷사람에게 금방 따라 잡혀 죄송하다는 인사를 자주 해야 했다. ‘언제쯤 다른 이들과 비슷한 속도로 가려나.’ 익숙한 책망을 구겨 넣었다.
삐걱이는 노
호흡과 발차기만으로도 벅찼건만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아있었다. 팔 돌리기였다.
일명 어깨춤이라 불리는 아이돌 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댓글에 ‘따라 해보려 했으나 어깨가 따로 놀아요’라고 말했다. 이게 그렇게나 어렵나? 속도를 늦춰 동작을 흉내 냈다. 오른 어깨를 올리고 왼쪽 어깨를 내리고. 다시 왼쪽 어깨를 올리고, 오른 어깨를 내리고. 명치에서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관절이 굳다 못해 통뼈가 되어 두 벽돌을 맞대고 비비는 소리가 났다.
이 뻣뻣한 몸으로 자유형 팔 돌리기를 시작한다. 킥판을 잡고 앞으로 뻗은 양팔 중 한쪽을 물속으로 크게 휘저었다. 등과 수평이 될 때까지 밀어냈다. 이때 반대편 어깨와 팔은 앞을 향해 쭉 뻗어야 했다. 강사님은 이걸 ‘글라이딩’이라 말했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잘 안 됐다. 서걱거리는 명치로는 어깨 양쪽을 앞과 뒤로 분리해 밀어낼 수 없었다. 애초에 그 감각을 상상할 수 있다면 유연했겠다. 뻣뻣한 몸답게 팔을 물 밖으로 돌리면 몸통이 뒤집기를 하듯 세로로 휙 틀어졌다. 강사님은 발차기만 하는 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내 유연성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한참 실소를 하더니 알려줄 내용은 다 알려줬다며 다른 회원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호흡, 발차기, 팔 돌리기
자유형을 떼기 위해선 이 세 단계가 완성되어야 했다. 단기간에 여러 동작을 합치려니 머리가 복잡했다. 타이밍을 제대로 계산할 수 없었다.
발은 계속 차면서 호흡을 음- 하는 동안 왼팔을 먼저 뒤로 밀고 그때 오른쪽 어깨와 팔은 앞으로 뻗고 왼팔이 물 밖에서 포물선으로 돌려지는 동안 오른팔이 물을 밀고 이번에는 왼쪽 어깨와 팔이 앞으로 뻗는데 아 맞다 숨 쉬어야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파- 하고 공기를 먹은 다음에 오른팔이 포물선을 다 그리기 전에 다시 얼굴은 음- 하며 정면을 보고 물 안에서 숨을 참고……
킥판을 잡고 자유형을 연습하는 동안 제대로 연결한 횟수가 10번 중 겨우 2번 정도였다. 오래, 자주, 친해져. 물속을 갑갑해했을 때 강사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익숙해져야 한다. 초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깨닫고, L과 함께 평일 저녁마다 자유수영을 하기로 했다. 킥판 없는 자유형을 해내고 말겠어. 누가 정해주지 않은 작은 목표를 되새겼다. 조금 의외였다. 무언갈 해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랜만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어떻게든 멈춰 섰다. 왜 해야 하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이유를 긁어내고 애써도 안 될 것이라 단정 지었다. 그런 이가 갑자기 목표라니. 사회적 인정이 따라올 성과도 아닌, 의미 없는 목표를.
그럼에도 점점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발 끝만 보던 고개와 후회만 바라보던 시야가 점점 옆으로 틀어졌다. 무서워하던 물에서 힘껏 발을 차고, 무작정 참기만 하던 숨을 엉성하게라도 내쉬고 마셨다. 그 얇은 겹들이 쌓여 무언갈 해내리라 가정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믿음은 결국 맨몸 자유형 도전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