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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무서워하세요?

<수영하듯 살자> 3화

by 박바림


삐이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물 밖의 사람들에겐 꽤 날카롭게 들렸을 테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흥에 겨운지 파도를 기다리며 바닥에 둥 뜬 발을 신나게 휘적거렸다.


가라앉고 있구나. 몸이 뜨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다행히 수심이 깊진 않았다. 침착하게 발이 땅에 닿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살았다. 찬 바람에 숨을 한 번 고르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던 곳을 올려보았다. 측면에 앉아있던 안내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을 바라봤다. 선글라스로 가려진 시선이 느껴졌다.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물에 빠질 뻔했다. 그날도 물 공포와 맥주병 극복은 무산되었다.


그런 이가 제 발로 수영장을 향한다. 오전 7시 수업을 듣기 위해 새벽 지하철을 탔다. 요령 없이 이것저것 한 아름 챙긴 짐처럼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과연 물에 뜰 수나 있을지, 강사님께 꾸지람을 듣진 않을지 걱정이었다. 스크린 도어에 얼굴이 비쳤다. 입꼬리가 아무 미동 없이 굳게 닫혀있다. 근래에 거울을 볼 때마다 자주 본 표정이다. 일단은 첫날이니까 킥판만 열심히 차면 되겠지, 검게 비친 얼굴에 눈을 돌리고 애써 걱정을 흘렸다.



드디어 수영장, 첫 수업


스포츠 센터에서 L을 만났다. 통유리 아래로 비치는 높고 기다란 지하 수영장을 보았다. 사람들은 투명한 물에 하얀 거품이 튈 만큼 힘차게 발을 굴렀다. 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어서 들어가고 싶어졌다. L과 곧장 카운터에서 키를 받아 샤워장으로 향했다.

단체 목욕실은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느라 몸에 군살도 많이 붙었다. 서둘러 거품칠을 마치고 수영복을 입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하나 어우러지지 않는 촌티가 딱 초보 행색이었다. 예쁜 수영복 하나 장만할 걸 그랬나. 아냐, 얼마나 오래 할지는 모르니까. 충분히 합리적이었다며 아쉬움을 눌렀다.


강습 시작까지 10분이 남았다. L과 나는 간단한 준비운동을 했다. 태생이 유연하지 못한지라 갑자기 근육을 쓰면 쥐가 날 게 분명했다. 정시가 되고 난 후 우리는 쭈뼛쭈뼛 구석진 레일로 걸음을 옮겼다. 검은색 웻슈트를 입은 이가 보였다. 가무잡잡하지만 맑은 피부를 지녔고 수모 사이로 빗겨 나온 곱슬머리가 눈에 띄었다. 어쩐지 덩치만 큰 어른 수달 같았다. 강사님은 일단 물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수영장 냄새. 쾌청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물은 차가웠다. 졸린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어깨를 바짝 말리게 할 만큼이었다. L과 나는 몸에 스며드는 찬기를 떨쳐내고자 발을 동동 굴렀다. 설레발을 떨었던 마음도 잠시, 점차 가슴이 갑갑해졌다. 사방에서 폐를 눌러오는 기분이었다. 왜 물속을 싫어했는지 기억났다. 강사님은 적응 시간은 사치라는 듯 곧바로 통상적인 질문을 던졌다.


“수영 어디까지 해보셨어요?”


L은 초등학생 때 강습을 받은 적이 있고, 나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강사님은 킥판을 하나씩 건네주더니 발차기나 한 바퀴 돌고 오라 했다. L이 앞서 출발한 다음 내가 뒤따랐다. 얼굴을 물에 넣지 않으니 겁나지 않았다. 유연성은 부족해도 다리 힘은 거뜬하다 믿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물은 공기보다 무겁다. 첫 발차기는 종아리와 발뒤꿈치에 모래주머니를 이고 가는 듯 버거웠다. 번갈아 발을 구른 지 10회도 안 되어 진이 빠졌다. 더군다나 물 위에 떠있는 건 킥판뿐이었다. 킥판을 잡은 손, 그 아래의 내 모든 신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 먹기는 싫었다. 얼굴을 물에 닿지 않으려 고개를 치켜들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발을 들어 올려 찰 때마다 허리가 과하게 꺾였다. 수영장을 겨우 한 바퀴 돌고 난 뒤 내 미래가 훤히 보였다. 앞으로 수영을 얼마나 못할지 말이다.


‘오늘은 킥판으로 발차기만 하면 되겠지’ 지하철에서 스스로를 다독인 말과 달리 강사님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수영 최단 코스를 밟도록 해주지.”

그는 호흡을 배우자며 킥판을 가져갔다. 대신 자신의 양손을 건넸다.


“음파를 할 거야. 내가 하나 하면 고개를 넣고, 둘 하면 다시 밖으로 나오는 거야. 숨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서 음-,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올 땐 파. 둘 다 물에 들어가고 나오기 직전에 의식적으로 코로 숨을 내쉬고 있어야 해. 그래야 물을 안 먹으니까. 자 해볼까?”


내 용모가 학생으로 보였는지 강사님은 어느새 말을 편하게 했다.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수업 진도에 당황한 덕분이었다. 첫날부터 호흡이라뇨,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는데. 무심결에 강사님께 두 손을 넘겨버렸고 그는 하나, 둘- 구령을 셌다.


“잠시, 잠시만요.”


발끝이 일렁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머뭇거리는 날 보곤 물었다.


“물을 무서워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님은 그제야 목소리를 부드럽게 가다듬고 천천히 해보자고 말했다. 그의 작은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겸연쩍었다. 발이 닿는 곳에서 뭐가 무섭다고 떨고 있을까. 언제나 머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쉬이 따라주지 않는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가 몰려오려 할 무렵 머릿속에서 단어 몇 개가 떠올랐다. 강습비. 월 14만 원. 백수에겐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니 진정되었다. 천천히 해보자. 호흡만 해내도 굉장한 발전이니까. 강사님의 구령 대신 내 속도에 맞추어 첫 호흡을 시도했다.


음-


코에 물이 들어갔다. 맞다, 들어가기 전에 코로 숨을 내쉬랬지.


파-


맞다, 물 밖으로 나오기 전에도 코로 숨을 내쉬랬지. 급하게 숨을 들이켜려다 코끝에 고여있던 물을 삼켰다.


강사님과 두 손을 맞잡고 레일을 걸으며 호흡을 반복했다. 마치 갯벌에 소금을 뿌리면 고개를 드는 맛조개처럼, 구령이 물 안으로 뿌려질 때마다 고개를 빼고 넣기를 반복했다. 속도를 점점 빠르게 할 때면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다. 강사님은 한 바퀴를 같이 돌고 ‘잘했어’라며 친구를 가르치러 떠났다. 그의 기본 멘트 같은 칭찬이 기쁘진 않았다. 누가 보아도 내 첫 호흡은 엉터리였다.



익숙해지기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야. 숨을 마시는 시간보다 내쉬는 시간이 더 길다고, 그러니까 숨이 빨리 차지.
호흡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동작은 어떻게 하는 거야?


첫 도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괜히 마음속으로 툴툴댔다. 싫어한다고 대충 하는 성질은 못 됐다. 강사님이 다른 회원을 코칭하는 동안 레일 끝 벽을 잡고 연습했다. 코호흡이 익숙한 탓에 입으로 산소를 공급한다는 감각이 어색했다. 숨을 최대한 들이마셔도 마신 기분이 아니었다. 숨을 참고 물 안에 있는 시간을 늘려보기도 하고, 목으로 공기가 들어가는 감각에 적응하고자 코를 막고 폐를 부풀려봤다. 그러나 흉부를 묵직하게 누르는 물속에선 성에 찰 만큼 숨쉬기가 어려웠다. 강사님은 내 상태가 훤히 보였는지 이렇게 말했다.


“답답하지? 일찍 도착하면 당분간은 무조건 풀장에 들어와 있어. 난 오히려 물 밖에 있을 때 흉부가 갑갑해. 너도 그 정도가 될 때까지 물에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물에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니.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이번 생에 수영은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상상이 잘 안 됐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어떨까. 나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생긴 이 ‘직감 같은 것’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첫 수업 동안 망설인 순간들이 흐릿해질 만큼 그러고 싶었다.


다음날이었다. 강사는 호흡을 연습하는 동안 뺏어둔 킥판을 다시 손에 쥐어줬다. 이번에는 킥판 끝을 잡고 발차기와 호흡을 같이 하라고 했다.


‘진짜 관둘까.’


간과한 게 있었다. 원하는 도착 지점이 생기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무수히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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