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5화
뜻하지 않은 SOS
맨 몸 자유형을 시도했다. 계기는 자발이 아닌 압수였다. 수영을 배운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강사님이 킥판을 뺏었다. 내 원망의 눈초리를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원래 수영은 물 먹으면서 배우는 거야. 코로도 먹고, 입으로도 먹고. 언제까지 킥판만 잡을래?”
지금은 조금 헐었지만, 본래 좌우명도 ‘뭐든 부딪히면서 익히기’였기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얌전히 레일 오른편에 섰다. 앞선 회원들이 자유형을 시원하게 구사했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걱정이었다. 초급 레일이었지만 대다수 회원들이 평영과 접영을 했다. 그들 사이에서 완벽한 초보의 모습을 보이려니 부담스러웠다. 물속에 고개를 푹 넣고 싶었다. 그때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 달에 14만 원. 백수에게는 황금 같은 돈이기에 억지로 의욕을 가다듬기 충분했다. 차례가 다가와 준비 동작을 되새겼다. 처음으로 킥판 없는 물 위에 팔을 뻗었다. 심호흡을 하고 발 끝으로 벽을 밀었다.
먼저 왼팔을 등 뒤로 쭉 뻗었다. 그대로 팔을 돌려 다시 앞으로 첨벙, 이번엔 오른팔을 똑같이 움직였다. 팔을 휘젓자마자 고개를 옆으로 틀어 숨을 쉬려 했다. 어라? 얼굴이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몸 전체가 물속에 잠겼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거북이 마냥 쑥 밀어 올렸다. 팔 돌리기를 서른 번은 한 뒤에야 반대편에 도착했다. 그래도 뿌듯했다. ‘멈추지 않고 반바퀴를 왔어!’ 이어서 남은 한 바퀴 왕복을 성공하고 싶었다. 호흡을 크게 한 뒤 다시 헤엄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턱이 뻣뻣해질 만큼 숨이 막혀오자 원점에 다다랐다.
엉성하지만 첫 맨 몸 자유형을 해냈다. 킥판을 잡아도 중간에 멈추던 이가 헤엄을 쳤다. 스스로 감격스러울 무렵 강사님은 틈을 주지 않았다.
“아니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수영하면 어떡해? 살려줘야 할 것 같잖아.”
칭찬을 기대했으나 그의 입술 끝에선 내 부족한 점만 줄줄줄 흘러나왔다. 서운한 마음에 몰래 입을 삐죽였다. 너스레를 떨며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따지진 못했다. 자유수영을 다니며 자주 연습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보이는 건 결과뿐이지. 성공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스스로 부족한 점을 타박했다.
네 번째 조건
자유형이 뜻하지 않은 SOS로 보였다. 이유는 살려고 애쓰듯 고개를 물 바깥으로 내밀었기 때문이고, 그 덕에 몸이 가라앉았다.
몸이 뜨기 위해선 무게 중심을 수면과 수평으로 유지해야 한다. 나는 손 끝에서부터 수평이 무너졌다. 앞으로 뻗은 손이 쉽게 가라앉았다. 뻗고 기다리는 시간이 짧으니 *글라이딩도 안되고 호흡 타이밍도 짧았다. 강사님은 호흡을 어려워하는 내게 다른 방안을 제안했다. 차라리 숨 쉬는 방향인 오른팔을 천천히 돌려보면 어때. 뻣뻣하고 급한 성격 탓에 천천히를 부드럽게 연결할 줄 몰랐다. 그저 팔이 공중에 오래 머물렀고, 이번에야 말로 살려달라고 손을 뻗어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이 되었다.
호흡, 발차기, 팔 돌리기. 자유형을 해내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연습했다. 발차기 힘은 이전보다 늘었고 호흡도 더 이상 불편하진 않았다. 여전히 흉부는 조금 갑갑하고 물을 자주 마셨지만 거부감이 줄었다. 팔 돌리기 또한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느리고 투박했다.
부족함을 메꾸고 싶어 억지로 속도를 붙였다. 손이 가라앉으면 가라앉는 대로 다음 팔을 돌렸다. 숨이 차올라도 더 빨리 움직여 반대편 벽에 닿고 싶었다. 정확히 익힌다는 명목으로 못 하고 헤멜 바에야, 남들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흉내 내고 싶었다.
수영한 다음날 뒷목과 승모가 빳빳하게 굳었다. 열심히 노를 젓고 모터를 돌린 건 팔과 다리건만 엄한 곳이 아픈 꼴이었다.
“팔을 그렇게 팍팍 돌리지 마.”
내 자유형을 보고 강사님이 말했다. 그렇게 하다간 어깨가 나갈까 무섭다고. 이후로도 비슷한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수영장을 옮겨 새로운 강사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도, 새로운 회원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힘을 많이 주면 수영 오래 못해요.
힘을 빼야 더 쉽게 나아갈 수 있어요.
자유형의 네 번째 조건이 있었다. 힘 빼기. 초보인 나는 이 마지막 조건이 가장 어려웠다.
힘을 빼면 되려 속도가 더뎌졌다. 그게 싫고 이해가 안 됐다. 힘을 주면 빨라 보일 수 있는데, 왜 빼야 하나.
어딘가 조급한 자유형. 그 해결책은 1년이 지날 무렵에야 이해했다. 수영이 지닌 힘의 모순을 알아차리며.
*글라이딩과 롤링
글라이딩은 추진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쭉 뻗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동작을 뜻합니다. 롤링은 자유형이나 배영을 할 때 몸통을 자연스럽게 좌우로 회전시키는 동작입니다. 롤링을 길게, 천천히 하면 팔을 돌리는 속도가 길어집니다. 즉 호흡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더하여 물의 저항을 덜 받아 글라이딩이 부드럽습니다. 다만 접촉면이 좁아져 가라앉기 쉽습니다. 롤링을 길게 하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몸이 가라앉지 않도록 받쳐줄 발차기 힘이 중요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