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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돌아가기

<수영하듯 살자> 7화

by 박바림

자유형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매번 비슷한 피드백을 받고 연습한 탓에 점점 지루했다.

그때 배영에 눈이 갔다. 얼굴이 천장을 향하고 있으니 숨 쉬기 편해 보였다. 물에 뜨는 것도 이제는 자신 있었다. 때마침 강사님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했다. 드디어 새로운 영법을 배우는구나.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킥판을 다시 잡았다.


“킥판을 안고 뒤로 누워서 발차기를 해봐.”


처음에는 얼굴이 푹 담가졌다. 또 물을 한가득 먹었다. 급하게 몸을 띄우고자 킥판을 배에 닿도록 꽉 잡았다. 더 세게 발을 찼다. 턱은 여전히 잠겨있었지만 눈, 코, 입 삼면이 물 밖으로 나왔다. 맥주병이던 옛날보다는 큰 발전이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왜 앞으로 안 가지?’


벽을 발로 찬 속력이 떨어지자 천장의 타일이 움직이지 않았다. 열심히 발차기를 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아 제자리걸음이었다. 아래쪽에서 누군가 내 발바닥을 잡았다. 물 안에서 강사님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렸다.


“자, 발등을 쭉 펴고. 하나 둘, 하나 둘 차는 거야.”


강사님이 내 발등을 꾹 눌러 양쪽 다리를 번갈아 가위 치기 했다. 골반 아래 근육부터 허벅지, 종아리, 발끝까지 모두 일자로 펴서 발길질을 하라고 말했다. 그가 발을 잡아줄 땐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영법이었다. 숨 쉬기도 편하고 몸이 둥둥 뜨니 말이다. 문제는 손을 놓으면 다시 제자리걸음이었다. 강사님은 내가 풀장 한가운데에 머무르게 둘 수 없었다. 몇 번 더 배영 발차기를 교정해 준 후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팔 돌리기를 마저 알려주었다.



머리가 띵

“앞에서 잡아줄 테니 누워서 손을 뻗어봐.”

강사님은 귀를 스칠 만큼 팔을 쭉 편 상태에서 뒤로 돌리라 말했다. 구령에 맞춰 휘저었다. 그러자 얼굴 옆으로 물이 첨벙 튀어 올랐고 코와 입 속으로 맵게 파고들었다.


“호흡을 해야지. 팔이 뒤로 넘어가기 전에 음-, 뒤로 넘어가고 반대쪽 팔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 파- 그리고 다시 빠르게 음-”


미리 숨을 참고 팔을 돌리라는 의미였다. 눈으로만 보았을 땐 편해 보이는 영법이었건만, 실제로 해보니 자유형보다 신경 쓸게 많았다. 옆 레일에서 누가 접영이라도 하면 물 바가지를 얼굴에 붓는 것 같았다. 뇌수의 흐름이 읽힐 만큼 골이 띵했다. 찡한 머리를 비비며 서있었다. 강사님은 당황스러운 듯 말을 흐렸다.


“자유형 호흡을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배영을 해보라 한 건데……”


암요. 저도 쉽게 할 수 있는 영법인 줄 알았죠. 그러나 오산이었다. 물 안에서는 쉴 새 없이 발차기를 하고, 기관지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팔 돌리기와 호흡 타이밍을 정교하게 맞춰야 했다. 호수 위 평안한 자태와 달리 다리는 쉴 새 없이 휘젓는 백조들처럼.


가끔 무언가 잘 안 풀린다면

우습게도 배영을 익힌 이후 자유형을 더 좋아하게 됐다. 무방비로 물을 마셔야 하는 배영보다 자유형 호흡이 훨씬 편안했다. 강사님이 배영을 가르쳤을 땐 '자유형보단 잘하지 않을까'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그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나는 언제쯤 다른 영법을 익힐까.'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가도 끝내 강사님께 먼저 말하지 않았다. 자유형이 완벽하지 않았다. 그걸 놓아두고 다른 영법을 배우기엔 불안했다. 나무 쌓기를 할 때 중간 구조를 놓쳐 언제 무너질지 모를 것과 같았다. 그러나 탑 쌓기가 아니었다. 배영으로 자유형의 매력을 더 깊이 알았듯이, 꼭 한 가지를 집요하게 붙잡지 않아도 됐다. 잠시 멈추었을 때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할 수도 있었다. 원한다면 다시 돌아가도 됐다.


자유형이 또 지루해진 날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다시 배영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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