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8화
어디로 가지.
아침부터 한숨이었다. 모니터로 들어갈 듯이 고개를 내밀고 구직공고를 뒤적였다. 꽤 친절한 어투의 공고를 발견했다. 기업 규모를 찾아보니 5인 미만 회사였다. 방금 쉰 한숨보다 더 깊이 내쉬었다. 취업준비는 회사 지원조차 쉽지 않았다.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종종 교수님께 회사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급여가 턱없이 부족했다. 열심히 노동하는 마당에 하루 세 끼는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었다. 여기까진 마땅한 회피였다. 매번 이처럼 합리적인 이유로 고민했는지 묻는다면, 마냥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어디를 들어가야 체면이 설까.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분명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앉아있는데도 그랬다. ‘아니, 그것보단 이게 더 좋지 않아?’ 어떤 검열이 울렸다. 감시에 걸리지 않게 조건을 계속 붙였다. 여기는 복지가 너무 없어, 여기는 위치가 별로네, 여기는 이름 말하면 누가 알기나 할까, 여기는....
어디를 들어가야 나를 알아줄까.
그걸 정할 수 없어서 골이 아팠다.
공고 페이지를 몇 번 넘기다 보니 강습 시간이 다가왔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암막 커튼에 주황빛이 물들었다. 여름이 오는구나. 평소라면 기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수영은 여름에 하는 게 더 좋지 않아?"
겨울에 수영을 시작했을 당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비키니 수영복, 햇살, 화창한 바다. 아무렴 수영은 여름과 잘 어울렸다. 찬 바람에 목도리를 꽁꽁 두르고, 손이 벌겋게 어는 계절보다는 훨씬. 그래서 다가오는 여름이 반가웠다. 얼마나 상쾌할까. 어서 몸소 즐기고 싶었다. 노트북을 덮고 수영 가방을 메어 밖으로 나섰다.
여름과 겨울
이동거리만으로 가벼운 산책이 된 건지 목덜미가 간지러웠다. 손으로 긁적이자 손톱에 물방울이 맺혔다. 곧장 샤워장에 들어가 땀 흘린 몸을 씻었다. 이제는 실내에서 운동할 생각에 안심이었다. 햇빛에 진이 빠질 일은 없으니 말이다.
체력이 늘어 자유형 2바퀴는 거뜬해졌다. 배영도 꽤 늘었다. 몇 바퀴를 돌아보니 금세 열이 올랐다. 그러나 물에 있는 덕분에 땀으로 끈적일 일은 없었다. 이 맛에 여름 수영을 하는구나. 사람들이 좋다고 한 이유가 있었네. 겨울에는 두꺼운 외투 탓에 캐비닛이 꽉 찼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얇아진 옷 덕분에 짐을 정리하기도 수월했다. 몸도 시원하고 가벼우니 콧노래가 절로 났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그렇게 개운한 몸으로 나왔건만, 중천에 뜬 해가 수영장 바깥을 뜨겁게 데웠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옷 안으로 스며들었다. 덕분에 아침동안 세 번 샤워를 했다. 입수 전, 입수 후, 마무리는 집에 돌아가는 길 끈적한 땀 샤워였다.
'생각보다 개운하진 않은데...'
사람들의 말과 조금 달랐다. 수영을 끝내고 시원함을 누리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난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터였다. 되려 겨울이 그리워졌다. 그때는 어땠더라. 오늘 하루 일과 순으로 되짚어봤다.
일단 졸렸다. 아침잠을 깨워주는 햇빛 없이, 늦잠 자는 해와 함께 동면에 취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야 했다. 채 못 뜬 눈을 비비고 나오면 따귀를 때리는듯한 찬 공기가 맞이해 줬다. 주변은 고요했다. 도로, 건물, 하늘. 모두 그림자에 물들었다. 형광등이 땅에 동그란 구역을 그려 일부를 비출 뿐이었다. 이때만 누릴 수 있는 구경거리가 있었다. 까만 하늘에 별과 달이 선명히 빛났다. 겨울의 한기 덕분에 안개 한 점 없이 맑았다. 별과 달의 빛 세기, 혹은 흐림의 정도에 따라 날씨를 미리 예상했다. 강습에 조금 늦을지언정 사진을 놓칠 수 없어 한참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추위는 부정할 수 없었다. 실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비닛에 도착해 탈의를 하고 샤워실로 이동하는 순간,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젖은 몸을 관통하는 찬바람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잠도 싹 달아났다. 얼음 같은 물 온도에 어깨가 솟아오르고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나 곧 적응할 수 있었다. 앞사람을 따라 한 동작씩 하다 보면 열이 올랐고, 추위는 금세 잊혔다.
겨울에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달이 떠있었다. 까만 하늘에 노랗게 빛나던 것이 푸르스름한 하늘에 하얗게 새었다. 춥진 않았다. 찬 바람이 운동으로 달궈진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어 되려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때 본 달빛을 상상하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눈길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햇볕이 하얗게 내리쬈다. 다시 고개를 내렸다. 상쾌한 수영은 되려 겨울이었구나. 모르고 지나친 계절이 그리워졌다.
아니,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새벽에 보았던 화면이 띄어졌다. 공고를 둘러보았다. 또 이런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는 가는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벌어야... 적어도 이런 회사는 가야...
여러 목소리와 잡념이 머릿속에서 자리싸움을 시작했다. 골이 당겨왔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다른 소리가 새어났다.
'수영은 여름에 하는 게 더 좋지 않아?'
겨울 동안 지겹도록 들은 의문들. 물음표를 달았지만 정답처럼 흔들렸던 말이었다. 그러나 달랐다. 안전하다고 믿은 모범답안이 나에게는 틀릴 수도 있었다. 이미 메아리로 남겨진 어떤 목소리에게 이제야 답했다.
'아니, 나는 겨울수영이 좋아.'
직접 두 계절을 지내본 뒤에야 확신한 대답이었다.
공고 하나를 눌러 이력서를 작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출 이력 칸이 늘었다. 공백에서 열 개. 스무 개로.
숫자가 늘었다. 겨울 수영을 답한 횟수, 혹은 직접 해보기를 택한 횟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