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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람을 안고

<수영하듯 살자> 2화

by 박바림


어느 날 목소리 하나가 다가왔다.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몇 살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확실한 건 그를 처음 만난 이후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목소리의 첫마디는 응원이었다.


넌 할 수 있어!


덕분에 성공이라 불릴 경험이 쌓였다. 두 발 자전거를 탔고, 방과 후 수업 발표를 해냈고, 경시대회에서 상을 탔고,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목소리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대견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점차 성질이 변했다.


넌 해내야 해.


그는 나를 기대했다. 미래에 영특한 존재가 되어라. 원대한 목표를 세워라. 최선을 다해 성취하라.

그는 재촉했다. 독감에 걸려도 늦잠을 못 자게 했고, 어떤 사정이라도 할 일 미루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눈앞에 흐릿한 물막이 끼어도 예외는 없었다. 그저 뺨에 흐르도록 두라고 했다. 멈추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고 했다. 네가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며 절대 누구보다 뒤처져선 안 된다고. 그렇게 싸늘히 다독였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알 법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자아와 기대. 그것을 깨트리지 않고자 기꺼이 채찍을 드는 완벽주의의 삶에서 시작된다. 매서운 목소리로 할퀸 틈새에 여러 증상이 번졌고, 그때 처음으로 수영에 눈을 들였다.



우울증인가?


결국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나는 백수였다. 백수에겐 정신과에 방문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모아둔 돈은 있었으나 아껴야 했다. 언제 끝날지 가늠 못 할 백수 기간에는 식(食)과 주(住)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문드러져가는 정신보다 본능에 충실한 육체의 편이었다.


좁은 방에서 매일 공고를 확인했다. 주말에도 오전 8시에 기상하여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작했다. 틀림없이 부지런했다. 학생 때부터 그랬다. 타고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성실함만이 유일한 무기임을 지독히 알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무용지물이었다. 탈락, 탈락, 탈락.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깎였다. 주변의 격려도 부재하여 더 이상 끌어올릴 마음이 동났다.


취업 실패는 이슬비에 젖은 얇은 종이장 같았다. 처음엔 그까짓 거 햇빛에 말리면 금방 바삭해졌다. 그러나 비가 자주올수록, 실패가 반복될수록 종이는 심히 구겨졌다.


‘난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나?’

이미 구겨진 종이를 다시 반듯하게 펴기란 어려웠다. 섬유 조직이 움츠러들며 다른 의문이 피었다.


‘그렇다면 왜 노력해야 하지?’

첫 무기력이었다. 의미를 파헤치는 질문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취업 준비, 영어 공부, 최소한의 건강관리를 위해 1시간씩 걷던 산책, 30분이라도 챙기던 근력운동에 물음표가 달렸다. 왜 해야 할까. 다 부질없어. 그저 이불 안에 웅크려 눈을 감는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었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바랐다.


그럼에도 자기 계발이라 불릴 루틴은 수개월간 지속했다. 그것마저 포기하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요즘 뭐 하고 지내?’라는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백수’ 외에 남길 말이 없어 멀겋게 있을 순간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땅 아래로 꺼질 듯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보람차지 않았다. 누군가 내 뒤를 지켜보고 손가락 질 할 것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쳤을 뿐이었다. 밤마다, 해 질 녘마다. 종잡을 수 없이 튀는 불안이 건강을 녹슬게 만들었다.



불안장애

위와 장에 문제가 자주 일어났다. 장이 마비된 듯했다. 가스가 가득 차 배뇨활동에 문제가 생겼다. 배가 찌를 듯이 아픈데 가스가 압박되어 아무것도 내보낼 수 없었다. 병원에 들러 센 약을 받아 겨우 진정시켰다. 몇 주 뒤에는 배에 혈관이 들쑥들쑥 움직였다. 병원은 한 해에 한 번 갈 정도로 튼튼한 몸이었기에 갑작스러웠다. 인터넷 검색 기록은 온갖 지병을 의심하는 키워드로 가득 찼다. 서울의 큰 병원을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소견서가 필요했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찾았다.


“선생님, 배에 혈관이 움직이는 게 보여요. 혹시 이런 지병 아닐까요?”

“마른 사람이라면 (맥박 뛰는 게) 보일 수도 있어요.”


모니터만 바라보던 의사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앉아서 상의를 들춰 올린 배는 운동을 게을리한 탓에 불룩 튀어나왔다. ‘뭘 말라. 이 뱃살이 안 보이나?’ 의사도 내 불신을 읽었는지 눈썹을 찡그리며 맞받았다.


두 번째 방문은 두통이었다. 눈을 질끈 감을 만큼 뒤통수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번에야말로 소견서를 받고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반응은 비슷했다.


“스트레스 성일 가능성이 높은데요, 쉬면 좀 괜찮을 거예요.”


이 정도 스트레스는 모두 받아요. 그런데 나만 이런 증상이 있다고요. 당시에는 머리가 갑자기 뚝 멈춰 쓰러질까 두려웠다. 의사의 무던함에 심통이 났다. 결국 직접 소견서를 요청했다. 그제야 의사는 ‘그래요, 한번 가보세요.’라며 무뚝뚝하게 소견서를 작성했다.


그날 밤 소견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원하는 걸 얻었는데 편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차츰 차분해지고 병원에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의사의 표정을 다시 꺼내와 읽어보았을 때, 다른 증상을 의심하는 듯한 눈빛이 읽혔다. 어쩌면 스스로 몸 상태를 과잉 진단한 것처럼 보였을까. 나에게 취업 준비생인지 묻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갑자기 이런 단어가 떠올라 휴대폰 검색창을 열었다.


‘불안장애’


여러 게시글을 뒤적거리다가 간이 체크리스트를 발견했다. ‘근거 없이 자신이 곧 죽어버릴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두통에 관한 소견서를 제출할 일은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운동이 떠올랐다. 맑은 정신을 위해선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몸을 일으키기 위해선 움직여야 했다. 집에서 혼자 하는 운동은 제외했다. 일단 이 좁은 방 밖으로 나가야 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또래들의 SNS에는 헬스 PT와 필라테스 인증 사진이 줄을 지었다. 나도 해볼까 싶어 집 근처 장소를 물색해 보았지만 관두었다.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건강도 돈이 있어야 가질 수 있었다.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운동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수영, L이 수영을 배우고 싶다 한 말이 떠올랐다. 대학친구이자 작년부터 동네친구가 된 그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흔쾌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곧바로 사설 수영장을 찾아 초급반 강습을 등록했다.


경직된 어깨를, 팽팽히 잡아당긴 마음을, 곧 찢어질 것 같은 건조함을 어쩌면 물이 풀어줄까. 작은 바람을 안고 첫 수업 준비물을 챙겼다. 중학생 수업 시간에 단체로 구매한 수영복, 어릴 적부터 물놀이 때 썼던 수경과 수모를 가방에 넣었다. 단기간에 관둘 우려도 있기에 저렴하게 구비하고 싶었다.


이제 잠에 들면 됐다. 잠이 오지 않았다. 요 근래 새로운 건 처음이었다. 매일 비슷한 일과만 펼쳐졌으나 내일은 다른 일이 일어난다. 10년 만에 수영장을 간다. 이건 설렘이 아니라 걱정에 가까웠다. 나는 사실 물이 무서운 맥주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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