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의 조각들
머리숱을 다 뽑아버릴 기세로 잡아끄니 다친 짐승이 제 몸을 가누질 못하듯 팔다리를 떨었다. 울부짖는 소리 메아리가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는 와중에 진심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이웃은 없었다. 다친 짐승은 처음엔 버럭, 귀청이 떠나갈 소리로 반항했지만 그 보잘것없는 외침은 상대의 신경을 더욱더 건드렸다. 방 안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주먹이 날아오고 핏방울이 하나둘씩 시야를 메꿔 갈 때쯤 가느다란 눈이 세 사람을 노려봤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셋은 그대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날카로운 시야가 다시 손에 잡힌 짐승을 향했다.
"저것들 뭔데.“
짝-소리가 왼쪽 뺨을 내려쳤다. 다친 짐승은 실핏줄이 터진 눈알로 셋을 향해 헤벌쭉 웃었다. 허망함을 가득 실은 한숨이 떠나가고 다시금 기분 나쁜 시야가 돌아왔다.
"나한테 갚을 돈은 없고, 애새끼들 키울 돈은 있고."
주먹이 또다시 벌벌 떠는 짐승에게 꽂혔다. 하염없이 바닥에 떨어진 짐승은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기침만 토해냈다. 순간 창문 너머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이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자리엔 더럽고 추한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지독하게도 끊이지 않는 피비린내를 거쳐 엉망인 짐승한테로 가 말을 걸었다.
"언니, 괜찮아?"
"아는 사람한테 속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돈을 주고 그래. 이번에도 못 받았지?"
짐승의 귀엔 어떤 말이든 귀에 들리지 않았고. 어떤 행동이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속삭임만이 들려왔다. '다 망해버렸으니 지금 죽어버리자.' 청하는 가엽고도 멍청한 혈육의 등을 쓸었고 나래는 옆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윤슬은 복도 계단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샌가 이끌림에 의해 현관문을 바라보면 한없이 약하고, 미련하고, 추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부분이 크게 떨렸다. 집은 쓰레기장이라 해도 모자를 만큼 어지럽혀 있었다. 여기저기 병이 깨지고 가구 절반이 박살 난 구석에 커다란 몽둥이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기괴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공간에 청하는 말 없이 옷가지를 주워 옆 공간으로 치웠다. 나래는 빈 공간에 풀썩 엎드리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많은 것들을 제치고 널브러진 과자를 주워 먹었다. 어느샌가 언니는 옷 무더기들이 가득한 매트리스에 상체를 기울여 눈만 살짝 감았다. 누구 하나 제대로 치우자는 말이 없었다. 청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말없이 2층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여기까지 손을 대진 않았다. 그대로 이불도 깔지 않고 드러눕자 윤슬도 쪼르르 달려와 옆에 풀썩 누웠다. 천장 불이 뜨겁고 눈부셨다. 제대로 된 보호자 한 명 없고 서로가 의지가 되어 줄 수도 없는 상황에 배는 고파오자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평화롭던 풍경은 어디 가고 엉망인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해지고 가슴 한 부분이 쿡쿡 쑤셨다. 놀란 감정은 어느새 환경에 적응해 이내 금방 식었다. 하지만 이따금 지독한 현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현실을 금방 잊어버리기엔 너무 커버렸고, 안고 가기엔 너무 어렸다. 불안전하고 밤마다 외로움만 늘어나는 사흘이 지나고, 제대로 된 홍보가 안 되니 희망자의 수는 점점 줄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은 그날 이후로 점점 더러워져만 가고 언니는 새벽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 연락은 점점 뜸해져 간다. 처음엔 열받게 하지 말라는 등 불이 나게 화를 내던 사람들이 이젠 차갑게 비꼬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청하는 우연히 나래의 핸드폰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래야 그 있잖아, 음..."
"왜."
"아...그게."
"왜-"
"아, 아니야..."
발이 둔부를 향해 곧장 올라간다. 퍽-!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휘청거린다.
"아 진짜…너 숨 막혀서 집 나가는 거야?"
나래는 잠시 표정이 굳은 채 생각하다 싶더니 이내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 그냥 올 거냐 말 거냐 얘기만 나눴어. 얘 가출팸이랑 살아서 환경은 여기보다 안 좋아."
"거기도 집이 더럽대?"
"그런 거 말고.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여자애들 못 도망가게 잡아두고 그런데. 애들 팔아먹으려고 그러는지도 모르지."
작은 충격은 신경을 무감각하게 만들었고, 이내 말끝이 흐려졌다.
"쉼터 같은 데는 못 가?"
"뭐, 거기는 술담배 당연히 안 되고, 통금 있고, 이 주변엔 죄다 부모 연락 가서 불편해. 너희는 어디서 밤샘했는데?"
"바닷가랑 성당."
"하이고, 너희도 고생 깨나했겠네."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아득히 멀어지고 몸은 붕 뜨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무거워졌다.
"동공 진짜 잘 떨리네, 갑자기 막 자기 처지가 불쌍하고 그래?"
그 말에 고개를 푹, 떨구고 손 끝마디를 문질러댔다. 그러자 나래가 손바닥 부분을 상대 이마에 갖다 대며 말했다.
"네가 불쌍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에 불쌍한 거야. 불행한 기억을 가두고 절대 꺼내지 마."
이마를 틀어막으니 신기하게도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도 집도 없었지만, 본인이 불쌍하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나가는 길고양이만 봐도 순식간에 기분이 풀어졌고, 배터리 가득한 휴대폰을 보기만 해도 불안함이 사라졌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안정감이 사라지는 건 아쉬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본인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근데 있잖아 나래야, 언니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언니랑 같은 성당 다녔어. 내쪽에서 먼저 말 걸었고... 호감작 한지 2년 정도 됐을 때 여기 왔지."
"노력이 대단하다"
"그 집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리."
나래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한숨을 쉬었다. 중학생 때부터 일삼는 가출은 하루하루 메우는 날들이 쌓여 하나의 생존방식이 되었다. 공원 벤치에서 숙식을 하기도 하고, 공중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쉼터에서 지내면서 용돈을 받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보내졌지만, 꾸준히 나갈 기회를 엿봤다.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졸음과 지겹도록 찾아오는 심심함에 못 이겨 처음으로 담배를 샀다. 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는 처음부터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문이 이미 열려 있는 곳에서 출발했고, 누군가는 문을 찾아야 하는 곳에서부터 태어났다. 바다로 향하는 길은 겉으로는 똑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의 전화로 이 집에 들어왔고, 누군가는 무심한 시선 속에서 호감을 쌓고 신뢰를 얻어 이 집에 오는 데까지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문득 든 생각에 나래는 떠올렸다. 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부터 다른 사람보다 몇십 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무척이나 진절머리가 난다. 무기력의 끝을 달리는 상황에 한 명이 외쳤다.
"야, 치우자!"
짜증 섞인 목소리가 후두부를 탁 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말짱해진 정신에 나머지 사람들은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창문을 여는 것부터 해서 곳곳에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되찾는 날이 시작되었다. '속보입니다. 00구의 한 고등학교 지하 주차장에서 학생 네 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시신은 이미 사망한 지 하루가 지난 상태였으며, 현장 주변 폐쇄회로 영상은 모두 가려져 있어 정확한 시간대 추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한, 경찰은 현재까지 범행에 사용된 도구나 흉기 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외상이 거의 없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학교는 임시 휴교에 들어갔으며, 추가적인 범죄 흔적이나 목격자를 찾기 위한 수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강제로 휴교, 다행히 그때 도와준 피해자 진술에 의해 윤슬의 존재는 완전히 잊힌 듯했다. 작은 세상에선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더 넓은 세상은 한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부모는 언니 쪽이 말을 잘 맞춰 애들이 원할 때까지 잠시 보호하고 있겠다고 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성인일 애들인데, 미리 독립하는 것이라 생각하라니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언니는 그날 이후로 학교를 휴학하고 일을 늘리면서 열심히 빚을 갚았다. 여유가 있는 날은 센터를 다니거나 청하와 좀 더 시간을 보내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래는 마구잡이로 술을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날이 줄어들었다. 알바를 다녀온 날이면 그런 거 할 힘도 없다고 그대로 푹 쓰러져 잤다. 쉬는 날에는 공모전을 찾고 시나리오를 쓰는 듯 보였다. 윤슬은 요즘 아무 반응이 없다. 갈수록 희망자의 수는 줄었지만 요구하는 수준이 점점 올라가, 윤슬은 다음날 낮이고 밤이고 잠만 잤다. 가끔 걱정돼 자는 애를 깨우면 그대로 깨운 사람의 뺨을 후려치며 자신의 단잠을 방해하지 말라고 한다.
"예이..."
나래는 낄낄 대며 웃다가 제 뺨을 만지작 거리는 청하에게 물었다.
"근데 너희 번 돈은 어디다 쓰고 있어?"
"엄, 윤슬이 간식."
나래는 그 말에 혀를 끌끌 차더니 쉬는 날 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대학교 주변으로 가니 놀거리들이 눈에 훤히 보였다. 몇 시간 동안 노래방에 틀어박혀 있는가 하면 반나절을 꼬박 옷을 고르는데 쓰기도 하고, 틈만 나면 인형 뽑기, 눈만 돌리면 스티커 사진을 찍어댔다. 주변에 떡볶이집은 죄 다니고 하루 종일 영화관에서 그날 영화를 몰아보기도 했다. 몸이 뻐근하다 싶으면 볼링장이나 당구장으로 향했다. 아무 팝업샵을 둘러보다 이따금씩 야구장에서 목청 터지게 응원을 하기도 하고, 조용한 곳이 좋다 하면 만화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회전 놀이기구를 30번 넘게 타기도 했다. 어느 날은 하루에 게임만 10시간 넘게 해보곤 했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이 온 정신이 무너질 것 같은 날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 캐릭터는 육성 페이백 주니까 무조건 키우고, 파티 구성은 탱딜딜힐 이런 식으로."
"와 이것만 몇 시간 째람, 이러다 중독되면 어떡하지."
윤슬이 나래의 뒷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말했다.
"우린 이미 현세라는 삶에 중독됐어, 삶이 너무 즐거우시기! 우리 내일은 또 어디 갈까?"
"근데 너희 요즘 희망자 얼마나 받아? 돈 얼마 남았어?"
잔고가 텅 비어갈 때쯤 윤슬은 고민했다. 의뢰를 받으면 하루 이틀을 버리게 된다. 그럼 즐거운 시간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
"너흰 평일인데 학교 일찍 마쳤니?"
"세 명이서 놀려고 쨌는뎁쇼."
오후 시간대에 바닷가로 불려 간 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해가 산마루에 걸려 붉은 원반은 반쯤 잘린 채, 하늘은 선명한 진홍빛으로 번져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 바닷가는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고,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곧이어 사람들 사이로 풍경 사진을 찍는 희망자를 만나러 갔다. 요구한 것보다 훨씬 적은 금액에 나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신고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순간 다들 겁먹은 채로 받은 돈도 내팽겨 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쳐 왔다. 꿀꿀한 부위기 속 관심의 질문을 쏟아 넣었다.
"엄, 알바는 잘 돼가?"
"뭐... 근로 계약서도 안 쓰고, 부모 허락받아 오라는 말도 없어서 이상하긴 한데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
"왜 집에서 나왔어?"
"의식의 흐름이냐. 번화가 쪽에 작은 성당 같은 건물 하나 있거든? 부모가 거기 사이비 교주인데, 허구한 날 미친 소리 해대서 집 나왔어."
말이 끝났을 때 눈앞에 텁텁한 공기가 가로막고 있었다.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그냥 모른 척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화면창에는 지켜달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