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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INFJ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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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피 Dec 12. 2024

조화는 맞닿은 슬픔을 빨아먹으며 핀다

- 시


소란함에 내려다본 콘크리트 바닥
박힌 못처럼 서 있는 머리들
슬픔을 강하게 주장하는 현수막
울퉁불퉁한 목소리로 써 내려가는 편지
내용을 몰라도 느껴지는 사연의 질감
가로세로로 퍼져가는 슬픔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곳을 쳐다보지 않는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 따위
동정도 공감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숙여 잰걸음으로 스쳐간다

시신을 길어 올려 조금 더 안전해지는 사회
사람에 불이 붙어야 경각심을 갖는 생각들
울분이 끓어 넘쳐야 쳐다보는 관심들
같은 아픔으로 울어야만 완성되는 탄원
혀를 차며 돌아서는 조소
땅바닥에 밟히는 하얀 호소

꽃을 든 여자가 소음원의 중심을 향해 걷는다
하얀 국화와 대비되는 검은 옷
머리를 숙이고 꽃을 내민다
공기 속에 소음이 줄고 울음들이 그 사이를 메운다
어떤 말로도 전해지지 않을 이해
조화는 맞닿은 슬픔을 빨아먹으며 핀다
박혀있던 못이 하나씩 빠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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