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금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어
날씨에 맞는 음악처럼
얼굴에 우울을 덧칠해 덕지덕지
흘러내리다 마는 꾸덕한, 비가 스며들지 않는 그런 농도로
내 옆을 지키고 있는 너에게
수사 없는 빈 손의 말들만 펼쳐놔
누구보다 멀리 보는 너의 눈에
깊은 탄복의 경배를 올리고
낮게 깔린 음악에 올라 타 순례길에 오른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묻는 순례자들의 질문에 침묵을
인생은 무엇입니까
묻는 너의 질문에 나는 약 복용법을 읊조려
의식해본 적 없는 행위로 너를 감싸 앉아
주르륵 떨어지는 물감정도의 농도로
나는 너의 윤곽 위로 녹아 흘러내리며
빗금으로 가득한 오답을 바라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