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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수비오 화산 – 이렇게 쉽게 오를 줄이야!

동네 뒷산만큼 쉽게 오르는 베수비오 화산

by 남쪽나라

남부 5일째

베수비오(Vesuvio) 화산 등정은 거의 포기할 뻔했다. 나폴리에 오기 전 한동안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어디서 어떻게 오르는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 흔한 이탈리아 여행기에도 베수비오 등정기는 보질 못했다. 너무 높아서 오르기가 힘든 것일까? 기껏 1,281m인데. 230여 년 전 괴테도 걸어서 세 번이나 올랐다지 않나. 아니면 시간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건가? 나는 오랫동안 베수비오 화산에 오르고 싶은 작은 염원을 품어 왔다. 그건 나만의 무슨 별난 염원이 아니다. 한라산이나 백두산에 오르고 싶은 그런 염원과 다를 바 없다. 아주 오래전 젊은 시절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베수비오 화산 분화구를 내려다보았을 때 왠지 가슴이 뛰고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젠가 폼페이와 나폴리에서 화산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도 그 염원은 굳어갔다. 꼭 한 번 올라가 봐야지 하고.


Vesuvius_from_plane.jpg?type=w2 베수비오 화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C0%CC%C5%BB%B8%AE%BE%C6_%BF%A9%C7%E0_2012-5_026.jpg?type=w2 나폴리 항에서 본 베수비오 화산

그런데 며칠 전 나폴리역 관광안내소에 붙어 있는 광고 하나를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거 진짜 맞아? 베수비오 화산 관광 안내 Ercolano Scarvi 역에서 Vesvioso Express 차 편으로 왕복 10유로.

아침 일찍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로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나폴리역에서 베수비오 순환열차(Ferrovia Circumvesviana)를 탄다. 만원 승객들 틈에 끼여 20여 분쯤 오니 Ercolano Scarvi 역이다. 역 앞의 Vesvioso Express사에서 표를 사자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다. 10여 명을 태운 승합차는 꾸불꾸불 좁다란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데 올라갈수록 시꺼먼 용암 자국들이 뚜렷하다. 20여 분 만에 승합차 기사는 1,000m 높이의 화산 중턱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주고 2시간 안에 내려오란다. 주차장에서 분화구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따로 내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다. 어린 학생들도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단체로 소풍을 오거나 수학여행 왔나 보다. 마치 주말 남산이나 청계산을 오르는 것 같다. 베수비오가 이렇게 쉽게 오를 수 있는 화산일 줄이야 미처 몰랐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지그재그로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아내는 입구에서 빌려주는 나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오르는데도 좀 힘들어한다.


%C0%CC%C5%BB%B8%AE%BE%C6_%BF%A9%C7%E0_2012-5_201.jpg?type=w2 베수비오 화산 오르는 길

30 여분쯤 걸려 드디어 분화구에 오르니 사진 1장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은 분화구 주위가 온통 사람 천지이다. 기념품 가게 앞은 어깨가 부딪칠 정도다. 너무 장터 같고 아무나 쉽게 올라오는 동네 뒷산 같아서 조금 실망스럽다. 하지만 거대한 분화구를 내려다보니 감격스럽다. 아! 드디어 베수비오 정상을 밟는구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나폴리만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발아래 구름이 걸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분화구도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C0%CC%C5%BB%B8%AE%BE%C6_%BF%A9%C7%E0_2012-5_202.jpg?type=w2 베수비오 화산 분화구

2,000여 년 전 번성하던 도시 폼페이(Pompei)를 한순간에 삼켜버리고 지금까지도 50여 차례 크고 작은 폭발을 기록해 온,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 중의 하나. 마지막 대폭발은 1,944년 3월에 일어났다. 이때의 폭발로 엄청난 피해가 나고 그 유명하던 후니쿨라(등산전차) 시설도 완전히 파괴돼 버렸다. 지금도 분화구 한쪽에서는 하얀 연기가 오르고 있다. 언제 또 폭발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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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설치된 몇 개의 야외 테이블에는 5월의 따사한 햇살 아래 나폴리만을 내려다보며 마치 피크닉 온 것처럼 점심을 즐기는 사람도 보인다. 우리는 아쉽게도 1시간여 만에 기다리는 승합차로 내려온다. 무릎이 좋지 못한 아내는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을 더 힘들어한다. 먼지를 펄펄 날리며 뛰어 내려오는 아이들 사이로 아내는 조심조심 지팡이를 짚고 지그재그로 천천히 내려온다. 후니쿨라(Funicolare, 등산전차)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폴리 민요 <후니쿨리 후니쿨라>에 나오는 바로 그 후니쿨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불러 보았을 유명한 나폴리 민요.

‘무서운 불을 뿜는 저기 저 산! 올라 가자! 올라 가자! 그곳은 지옥 속에 솟아 있는 곳, 보고 가자! 보고 가자!

산으로 올라가는 전차 타고 누구든지 올라가네! 올라 가네! 흐르는 저 연기는 손 짓 하네, 올라 오라! 올라 오라! 가자! 가자! 저기 저 산에, 가자! 가자! 저기 저 산에 푸니쿨리 후니쿨라 ~ ~ ~ ~누구나 타는 후니쿨리 후니쿨라.~ ~’


capture-20121221-164041.png?type=w2 초기의 후니쿨라(사진 출처: vesvioinrete.it)
funicular.gif?type=w3840 1944년 화산 폭발 전의 후니쿨라(사진 출처:vesvioinrete.it)

언제 들어도 신명 나는 노래! 이 노래를 듣고 어떻게 후니쿨라를 타보고 싶지 않을까? 사실 이 노래는 순전히 후니쿨라를 타게 하려는 홍보용 노래이다. 1880년 베수비오 화산에 오르는 후니쿨라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 사람들은 겁이 나서 아무도 타려 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당국이 루이지 덴자(Luigi Denza)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의도적으로 유행시킨 노래이다. 1944년 화산 폭발로 후니쿨라 운행이 중지된 지 오래지만, 오히려 이 노래는 대표적 나폴리 민요가 되어 오늘날도 세계적으로 애창되고 있다.


Vesuvius321stCassino1.jpg?type=w2 1944년의 대폭발(사진 출처 : 미군 warwingart.com)

내려오는 좁은 차도는 줄이어 교차하는 대형 관광버스들로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혼잡하다. 이 산중에서 승객들이 내려 교통정리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나폴리로 돌아가는 순환 열차에서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베수비오에 계속 우리의 시선이 고정된다. 베수비오의 참 얼굴은 무엇일까? 베수비오는 지금처럼 조용하고 얌전한 동네 뒷산으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일순간에 무서운 불을 뿜는 활화산으로 다시 살아날까? 하나님만이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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