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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초콜릿의 고장 - 모디카(Modica)

모디카 초콜릿을 아시나요?

by 남쪽나라 Feb 14. 2025

우리는 오전 10시 10분 발 기차를 타고 시라쿠사를 떠나 모디카(Modica)로 향한다. 바다에서 벗어나 기차가

내륙으로 향할수록 너무나 눈에 익숙한 시칠리아의 본 얼굴이 하나하나 눈앞에 펼쳐진다. 황량한 들판과 돌산들, 넓게 펼쳐진 올리브 나무와 오렌지 나무밭. 아침에 잠깐 오던 비도 그치고 5월의 시칠리아는 눈부시게 싱그럽다. 두 협곡을 이어주는 300m 높이의 게리에리 다리(Ponte Guerrieri)가 보이는가 하더니 모디카 역이다.    

 

역시 시칠리아의 시골 역답게 그런지 역 앞은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다. 버스도 택시도 사람도. 좀 막막한 기분으로 짐을 끌고 100여 m를 걸어 나오니 반갑게도 한 자동차 정비소에 사람 둘이 보인다. 우리는 이젠 제법 뻔뻔해져서(?) 민박집 전화번호를 무작정 내밀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우리는 유심도 로밍도 해오지 않았다). 한 젊은 정비공이 일손을 멈추고 자기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더니 민박집주인이 데리러 오겠다고 한단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다시 가서 확인을 부탁하니 분명히 온다고 했으니 기다리란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역사로 들어가 보니 텅 빈 역사에서 민박집주인 조르죠가 우리를 찾느라고 왔다 갔다 하고 있지 않는가? 사람 좋아 보이는 60대 중반의 조르죠가 우리를 태우고 숙소로 향하는데 의사소통이 영 힘들다. 조르조는 영어가 전혀 안 되고, 내 이탈리아어는 짧고.     


민박집은 아름다운 정원도 전망도 좋아 아주 흡족하다. 상당히 고지대에 있는 것 빼고는. 중심가(Centro)로 갈려면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내려야 될 것 같아 무릎이 안 좋은 두 노인네는 살짝 걱정이 된다. 이 도시가 움베르토 1세 거리를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인 계곡 위의 높은 모디카(Modica alta)와 계곡 밑의 낮은 모디카( Modica bassa), 이렇게 확연히 나누어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런 줄 알았으면 낮은 모디카에 숙소를 정할 것을.     



낮은 모디카로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낮은 모디카로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


우리는 조르조가 직접 갈아 주는 그라니타(얼음과자)로 목을 축인 후 중심가인 움베르토 1세 거리로 내려간다. 시칠리아 시골 특유의 좁고 미로 같은 계단 길을 꼬불꼬불 내려가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간신히 내려오긴 했지만 숙소를 찾아 올라갈 일이 벌써 걱정이다. 모디카는 두 협곡을 사이에 둔 강가에 세워진 인구 5~6만 명 정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작은 도시이다. 이 도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콜릿 빼고는 알려진 것이 없는 그저 그런 소도시였다. 그러나 2002년 모디카는 후기 바로크 건축물로 대표되는 이 주위의 7개 소도시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시칠리아의 새로운 관광지로 떠 오르게 된다. 그중에 다른 대표적인 도시가 라구사(Ragusa), 노토(Noto), 시클리(Scicli) 등이다. 

    


모디카 중심가모디카 중심가


시아스타 시간대의 움베르토 1세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다. 상점들은 대부분 다 문을 닫았는데 간혹 카페나 간이식당들만이 문을 열고 있다. 현지인들은 거의 안 보이고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 몇이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한다. 우리는 텅 빈듯한 움베르토 1세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중심가라 해도 끝에서 끝까지 겨우 1킬로나 되려나? 한 바퀴 썩 둘러보니 벌써 눈에 다 입력된다. 도시의 역사는 오래지만 1,693년의 대지진과 20세기 초의 홍수 등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다시 지어진 것이란다. 그래도 도시는 고풍스럽고 뭔가 아우라가 있다. 한 폭의 빛바랜 파스텔화 같은 분위기다.    

 

성 피에트로 교회성 피에트로 교회
성 조르지오 교회성 조르지오 교회
산 조반니 교회산 조반니 교회


문이 열려 있는 관광 안내소에 들려 우선 동네 지도부터 한 장 얻는다. 등치 큰 사내가 열심히 영어로 가봐야 할 곳들을 설명해 준다. 혹시 뉴욕에서라도 살다 왔나? 시골사람 같지 않게 영어가 본토 발음이다. 움베르토 1세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다소 오래된 느낌의 성피에트로 교회(Chiesa di San Pietro)는 계단 주위로 12 사도의 조각상들이 서 있는 아주 우아한 바로크 건물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언덕 위의 성조르지오 교회(Chiesa di San Giorgio)도 '모디카의 영광'이라는 자랑대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바로크가 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디카 전경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디카 전경
골목 안의 이동 과일가게골목 안의 이동 과일가게


성조르지오 교회 부근 좁은 골목길에는 모디카가 배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살바토레 콰시모도(Salvatore Quasimodo)의 생가도 보인다. 또 다른 언덕바지에 위치한 산 조반니 교회에 오르는 길은 찾기가 쉽지 않다. 겨우 찾은 교회 앞 광장은 노인들 차지이다. 그들은 뭔가 새로운 것, 신기한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몸은 벤치에 둔 체 시선들은 낯선 두 동양인을 따라다닌다. 교회는 굳게 문이 닫혀 있다. 대신 근방에 있는 조망대(Belvedere)에 서니 모디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주 오래된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분명히 칼라로 찍은 사진 같은데 오랜 세월로 흑백 사진처럼 퇴색되어 버린 듯한. 비탈지고 꼬부라진 골목길은 겨우 소형차 하나가 지나다닐 정도인데 이 좁은 길에서 과일과 야채를 파는 조그만 삼륜차를 만나니 무척이나 정겹다. 오후 5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도시는 살아난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한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고 문을 닫았던 식료품 상점들과 가게들도 차례로 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우리도 점차 스페인 사람들이 심어놓은 이 개으른 관습에 적응되어가나 보다.   

  


유명한 보나유토 초콜릿 가게 입구유명한 보나유토 초콜릿 가게 입구
가게 안의 무료 시식 코너가게 안의 무료 시식 코너
아즈텍식 전통 초콜릿 제조 방식 모형아즈텍식 전통 초콜릿 제조 방식 모형


우리는 움베르토 1세 거리 중심에 위치한 100년이 넘는다는 유명한 초콜릿 가게 보나유토(Antica Dolceria Bonauto)를 찾는다. 마침 매장 안에는 일본 어느 TV방송에서 온 현지 취재팀이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고 있어 우리는 밖에서 한참을 기다린다. 모디카는 아즈텍(Aztec)의 전통적인 초콜릿 제조방식으로 만드는 초콜릿으로 유명하다. 그런 소규모 제조업체가 수십 개가 있다. 그 역사는 무려 400년, 초콜릿이 신대륙에서 처음으로 스페인으로 전래된 역사와 비슷하다. 한때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스페인 덕분이다. 가게 진열대 앞에는 고맙게도 각종 초콜릿 제품을 맛볼 수 있는 무료 시식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과연 소문대로 맛이 독특하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좋아할 초콜릿 같다. 카카오 함량을 기준으로 50%, 70%, 80%, 100%의 다크 초콜릿도 있고 바닐라, 시나몬, 피스타치오 등 각종 향이 가미된 초콜릿도 있다. 우리는 좀 많은 양의 초콜릿을 산다.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초콜릿이라 선물도 할 겸해서.     


대부분의 초콜릿들은 카카오 메스, 카카오 버터, 설탕 등을 섞어 일정한 온도까지 열을 가해 완전히 용해시킨 후 다시 식혀 만들기 때문에 온도에 굉장히 민감하고 잘 녹는다. 하지만 모디카 초콜릿은 설탕이 용해되지 않을 정도로 열을 가해 설탕 입자가 씹히는 기분이며 전체적으로 단단하다. 그 대신 열에 아주 강해 한여름에도 녹지를 않는다. 초콜릿 가게에 오면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일까? 공짜 초콜릿도 먹고 공방 구경도 하고 제조방식에 대한 궁금증도 알아보면서 어린애처럼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전통 식당 오스테리아전통 식당 오스테리아
식당 내부의 오랜 주방 도구 장식식당 내부의 오랜 주방 도구 장식


저녁 시간이 되자 조르죠가 추천해 준 전통 향토음식점 오스테리아(Osteria)를 찾는다. 7시 반이지만 고맙게도 문을 열어주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주문한다. 오스테리아는 원래는 선술집 같은 곳이었지만  요즈음은 그 지방 고유의 전통 음식을 주로 선보이고 있어 현지인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식당 입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향토 식당잊혀진 맛을 찾아서(Osteria dei sapori perduti)> 그런데 메뉴가 이탈리아어도 아니고 온통 시칠리아 말이다. 시칠리아어 사전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도 시칠리아 말을 이해 못 한다고 하는데 우리더러 어쩌라고? 다행히 음식 사진이 함께 있어 주문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 이 식당에는 우리가 아는 파스타, 피짜,해물 요리 이런 건 하나도 없다. 전부 처음 보는 음식들이다. 그런데 먹어 보니 이건 정말 최고의 음식이다. 우리나라 시골 어느 이름 모르는 식당에서 할머니가 정성 들여해 주는 시골밥상 그런 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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