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의 뉴욕, 와 이리 춥노?

시골 노친네의 좌충우돌 뉴욕 구경하기

by 남쪽나라

난생처음으로 뉴욕에 왔다. 오자마자 바로 뉴욕의 중심, 미국의 중심,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맨하탄의 타임 스퀘어를 걷는다. 그런데 별다른 감흥도 없고 가슴도 뛰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로서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매력들(?)이 다 모여 있다는데. 무수한 맛집과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첨단패션과 최고급쇼핑가, 세계최고의 현대미술과 수많은 미술관들 그리고 링컨센터 등등. 세계의 부와 문화와 유행이 다 모여 있는 곳.


나이 탓인가? 그저 덤덤하다. 나의 호기심이 벌써 메말라버렸나? 하늘을 찌를 듯한 맨하탄의 마천루들과 상징물들을 너무 오래전부터 영화나 사진에서 봐와서인가? 몇 해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젊었을 때까지를 포함하면 열 번도 더 가본 이탈리아였지만 갈 때마다 가슴이 뛰곤 했다. 오랜만의 옛 애인을 만나는 것 같은 설렘, 기대, 흥분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고(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봐) 인파에 떠밀린 체 타임 스퀘어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굳이 여기가 타임 스퀘어라고 말 안 해도 금방 알겠다. 월요일의 늦은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밀려다니고 온 통 주위 건물에 병풍처럼 거대한 전광판이 다투어 번쩍거리고 있다. 길 한 곳 어디엔가 경사진 곳엔 마치 로마의 스페인 광장이라도 되는 양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맨하탄에 온 것을, 타임 스퀘어에 온 것을 열심히 기념하고 있다.


20160425_191044.jpg?type=w2 뉴욕 거리의 전광판들

그런데 타임 스퀘어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좁고 답답해 보인다. 높은 건물들에 둘러 쌓여 있어서일까? 아무래도 이곳은 사람들이 만나고 인사하고 교류하는 '사람'을 위한 광장이 아니라 거대한 미국 자본주의의 힘을 상징하고 과시하는 그런 현란한 유혹의 광장인가 보다.


1년 전만 해도 내 일생에 뉴욕 갈 일은 없어 보였다. 미국을 여행할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평소 미국여행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젊은 시절 몇 번 서부 쪽을 가 본 적은 있지만 미국은 내게 거저 부럽기만 한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땅이었을 뿐, 특별히 여행의 동기를 유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갈 이유가 생겼다. 아들내외가 연수차 1년간 보스턴으로 간 것이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보러 가야 할(?) 좋은 건수가 생긴 셈이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부랴부랴 미국 여행계획을 세우고 티켓을 예매하고 루트를 이리저리 짜보는 등 준비를 해봤지만 미국에 체류할 시간은 고작 10일 이내, 더구나 뉴욕에서는 겨우 3박. 그 넓은 미국 땅에서 욕심을 낸들 얼마나 볼 것인가? 욕심을 버리고 보는데 까지만 보자. 그래서 별다른 계획 없이 뉴욕엘 왔다. 내가 아는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센트랄 파크, 자유의 여신상, 메트오페라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도. 그것마저도 사흘정도에 보기는 벅차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식 뉴욕여행이니 단지 몇 가지에만 집중하자.


여행을 자주 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14시간의 좁은 이코노미석에서의 긴 여행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허리도 아프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지만 뉴욕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바짝 긴장해야 했다. 한인택시를 어렵사리 불러 타고 미리 예약해 둔 퀸즈의 한인 민박집까지는 잘 도착했는데, 도착서부터 엇박자다. 도무지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숙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2시간 넘게 밖에서 기다린다. 분명히 어제 출발 직전에 도착시간을 카톡으로 서로 확인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아 화가 잔뜩 난 체 숙소에 들어가는데 안주인이 미안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한다. 다른 일로 깜박했다나! 덕분에 우리는 더 살가운 특별대접(?)을 받는다. 뭐부터 봐야 할지 별다른 계획도 없이 온 우리에게 디테일하게 뉴욕관광포인트를 잘 설명해 주고 지하철역까지 직접 태워주기까지 한다.


20160425_200132.jpg?type=w2 브루클린 다리의 밤 풍경

민박집 안주인의 강력 추천대로 우리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타임 스퀘어로 가서 맨하탄 나이트투어를 예약한다. 해질 무렵 7시경이 제일 좋다 해서 2층 투어버스에 올라 꽉 막힌 맨하탄 거리를 천천히 돌기 시작하는데, 왜 이리 추운가? 4월 말의 뉴욕이. 나름대로 스웨터와 옷을 준비해 와 겹겹이 껴 입었는데도 덜덜 덜덜, 더구나 바다를 끼고 브루클린 다리인 지 하는 곳을 지날 때는 최악이었다. 구경이고 뭐고 중간에 내리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투어버스는 2시간이 소요되며 중간에 내릴 수도 없다나.


20160425_200543.jpg?type=w2 맨하탄의 빌딩들

이리하여 우리의 뉴욕여행 첫날은 덜덜 떨면서 겨우 찍은 몇 장의 뉴욕 야경사진과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가이드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맹렬한 추위의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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