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를 맞추고
요즘 시대의 아빠들은 옛날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다르게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 노력하는 아빠들이 많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으로는 요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기 어렵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없었던 남편의 어린시절 때문에 남편은 아이들과의 관계가 서툴렀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정말 든든한 지원군인 듯 내가 어려워하는 일들을 잘 해결해 주었다.
외할아버지의 체형을 닮은 아들은 어릴 적부터 외소하지만 키가 컸다. 초등 4학년때 이미 156cm였다. 남자아이의 특성상 움직임이 많고 활발한 아이여서 나는 매일 아침 아이가 등교를 할 때마다 아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들 ~친구들이랑 몸으로 놀지 마 ~”
그러던 어느 날 학교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반에 키가 작고 아주 외소한 아이가 지난 밤에 잠들기 전 울면서 아이엄마에게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때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 놀이 중 경찰과도둑이란 놀이가 있는데 그날 그 아이가 도둑이었고 우리 아들이 경찰이었다.
도둑인 그 아이를 잡으러 우리 아들이 큰 키로 성큼성큼 달려가 아이를 잡은 것이 밀쳐져서 아이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아이가 외소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 아이 엄마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밤마다 아이에게 들었고 그날 밤 그 아이는 우리 아들에게 밀쳐져 넘어진 것에 복받쳐 울었다고 했다.
선생님께선
“ 크게 문제 될 만한 일은 아니어서 서로 화해하고 잘 마무리 했으나 어머니께서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라며 전화가 왔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아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아주 오랜만에 화가 난 목소리로
“아들아 학교에서 움직이지 마!! 그냥 숨만 쉬다 와!!! 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노니!! 엄마가 몸으로 놀지 말라고 했지!!!!”
나는 아들에게 아주 모질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아들은 울면서 말했다
“나는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왕따 놀이 하면서 그 친구 실내화 주머니 화장실 변기에 버릴 때 그런 건 같이 안했다고! 진짜 경찰과 도둑 놀이 하면서 내가 경찰이어서 도둑을 잡은 것뿐이라고!”
아이는 많이 억울해 보였다.
키가 커도 그냥 아이인데, 남자아이여서 활동량이 많은 것뿐인데, 나쁜 행동을 했던 건 아닌데 나는 다른 친구가 아들 때문에 울었다는 말에 화가 나서 내 아들에게 정말 크게 화를 냈었다.
다음 날은 수능 시험을 보는 날 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년들은 한시간 늦게 등교하는 날이었다.
남편은 아들의 등교시간에 맞춰 정장을 갖춰 입고는 조용히 아들에게 말했다.
“유성이 오늘 아빠랑 학교 같이 가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남편에게 물었다.
“왜 학교에 가?”
남편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제 당신하고 유성이 이야기 들어보니 우리 유성이가 잘못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그 아이가 유성이 때문에 속상했다면 아빠가 가서 사과하고 와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한시간쯤 지난 후, 남편이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선생님 찾아가서 인사 드리고 지난번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어 왔다고 말씀드렸지. 그리고 그 아이 만나서 무릎 꿇고 눈높이 맞춰서
‘아저씨가 유성이 아빠야 ~ 지난번에 유성이랑 놀면서 유성이가 밀어서 속상했지? 아저씨가 사과하려고 왔어. 미안해 ~ ‘ 했지.
그리고 유성이도 다시 사과하고 그러고 왔지”
나는 왜 무릎까지 꿇고 얘기했냐 물으니 남편은 “나 무릎 꿇은 거 아닌데~ 눈높이를 맞추는 데 필요했을 뿐이야”
라고 대답했다. 우리 남편은 차분하고 현명한 사람인 것 같다.
전 날 저녁 아들에게 화내며 말 할 때는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안하더니 학교에 가서 그 친구에게 사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그냥 고마웠다.
아들은 아빠가 학교에 와서 친구에게 무릎 꿇고 사과한 것이 충격이었나 보다. 그 후로 친구들과 놀다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중학교 3학년인 지금 아들은 키가 180cm이다. 나는 여전히 아들에게 아침마다 학교 가는 아들에게 몸으로 놀지 말란 말을 한다. 아들은 여전히 움직임이 많고 운동 좋아하고 활동적이며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