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조각난 마음(Piece of Mind)

by 임용철

어둠을 뚫고 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후방에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차량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이든이 탄 흰색 그랜저 차량 앞쪽에 차를 세웠다. 토사나 골재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처럼 보였다. 적재함 후면에 흰색 페인트로 쓰여 있던 글씨는 칠이 벗겨져 희미한 형체만 남아 있었다.

'안 저 거 리'

짐작컨대 안전거리라고 쓰여있을 법한데, 주행 중에 노후된 차체에서 뭐라도 굴러 떨어질까 봐 안전거릴 둬야 할 것 같았다.

트럭의 조수석 문이 열리고 한 여학생이 차에서 내렸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랜저 차량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여학생은 인디고블루색 주름치마와 동일한 색상의 옷깃이 달린 회색 반소매 티 옷을 입고 있었다.

"차에 태워 달라는 걸까요?" 아영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학생은 조수석 창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그녀가 손 하나가 드나들 정도만큼 창문을 아래로 내렸다.

"지금 엄마랑 급하게 통화해야 하는데, 제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 아빠 거는 고장이 났고. 죄송해요. 언니. 전화 한 통화만 쓸 수 있을까요?"

그녀의 왼손에 든 키스해링 디자인이 그려진 Z플립을 손으로 가리켰다. 소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주술에 거린 사람처럼 Z플립을 펴서 건네려 했다. 그 순간, 이든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아영 씨, 잠시만."

그리고는 자신의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더니 팔을 뻗어 여학생에게 내밀었다.

"학생, 이 돈으로 cu 편의점에서 전화카드사서 통화해요."

아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친절한 미소를 띤 채로 그녀의 휴대전화를 건네받길 기다리고 있던 여학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영이 학생을 다시 돌아봤을 때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초행길이라 편의점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정말 급해서... 아픈 엄마 목소리만 확인하면 되는데."

그녀는 전화 한 통화 쓰는 게 뭐 대수냐는 눈빛으로 그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 말대로 해요. 학생."

그도 그녀의 눈빛에 지지 않고 투명한 존재너머 선한 빛인양 조수석에 착 달라붙은 여학생에게 말했다. 마지못해 오천 원을 건네받고 안절부절못하던 여학생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깐 엄마 목소리만 확인한다잖아요?"

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여학생에게 건네주려 했지만 이든이 다시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전화기를 받아 들려던 여학생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지만 결국 휴대전화를 손에 넣지는 못했다. 여학생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성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언니가 전화기 빌려주겠다는데 왜 아저씨가 난리예요."


트럭에 비상등이 켜지고 운전석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트럭의 발판을 익숙한 발놀림으로 딛으며 차에서 내려왔다. 남자는 형광색 꽃무늬가 그려진 몸빼바지에 노란색 추리닝을 입은 거구의 몸이었다. 추리닝 앞면에는 ‘PEACE OF MIND’라고 파란색 글씨로 프린팅 돼 있었다. 글씨 크기가 균일하지 않아 조잡한 티가 났다. 남자는 과한 체중 탓에 쪼리를 신어서인지 몸을 심하게 옆으로 뒤뚱거렸다. 얼굴피부색은 붉으스레 했고 손질하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 탓에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왼손에 랜턴을 들고 이든의 차량 쪽으로 걸어왔다. 몸속에 있는 가래를 이번에 모조리 긁어모아 한꺼번에 뱉겠다는 심산인지, 긴 준비동작 끝에 카악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목울대에서 가래를 긁어모으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기분 나쁘게 울려 퍼졌다. 가래 뱉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렸던지 처음엔 근처에 있는 개들이 놀라 짖어댔고 나중엔 공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걷던 고양이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잽싸게 도망쳤다.

“딸, 엄마랑 통화했어?”

"아니 못했어. 언니가 핸드폰을 주려는데, 이 아저씨가 자꾸 안 된다고 막아서."

트럭 운전사는 조수석에서 차량앞쪽으로 걸어와 운전석 쪽으로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아저씨, 무슨 문제 있으요?"

열린 차창으로 남자의 몸에서 역한 니코틴 냄새가 풍겨왔다. 남자는 운전석 문을 붙잡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자 끝이 적황색으로 빨갛게 타들어갔다. 곰보로 얽은 자국과 코 주변에 모세혈관이 험악한 인상을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담배연기를 차 안에 내뿜었다. 아영이 갑자기 차 안으로 들어온 담배연기에 놀라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든이 트럭운전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와요, 사람 담배 피우는 거 첨 봅니까?"

그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그녀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운전사는 또 도로에 가래침을 뱉었다. 그는 아영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내려 거구의 남자옆에 섰다. 차 안에서 봤을 때보다 막상 남자옆에 서자 자신보다 머리 두 개나 더 있을 정도로 거구였다. 트럭 안에 저렇게 큰 몸체를 구겨 넣고 운전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집사람이 아파서 딸내미가 전화 한 통화 쓰겠다고 사정사정하는데, 남자가 그리 인정머리 없으요?"

"따님에게 전화카드 사라고 오천 원짜리도 줬습니다."

남자는 기가 막히다는 듯 콧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이든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한번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심산이었다.

"오천원예. 우리가 거지입니꺼?"

남자는 몸빼바지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천 원짜리 다섯 장을 이든의 얼굴에 거칠게 내던졌다. 그중에 한 장에 비에 젖은 이든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는 얼굴에 붙은 천 원짜리를 떼어내 움켜쥐었다.


이든은 어떻게든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 이 험악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잿빛 개를 치어서 이런 일까지 겪는다 생각하니 뭐에 씌어도 단단히 씐 기분이 들었다. 그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빗속에서 노란색 우비를 입은 연쇄살인마의 모습이 이 거구의 남자에게 오버랩돼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영이 차에서 내려 이든의 뒤에 섰다. 둘은 남자가 다가올 때마다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든은 그녀의 손에 자동차 열쇠를 쥐여 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운전석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그고 112에 신고해 줘요.”

그녀는 이든의 팔을 잡아끌며 숨죽여 말했다.

“경찰에 신고했어요. 지금 같이 도망쳐요.”

그녀가 경찰에 신고했다니 잠시 후에 경찰차가 나타날 거고 어쩌면 시간은 그와 그녀의 편일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솟아올랐다. 그녀가 이든의 팔을 잡아끌며 뒤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 트럭 운전수는 이든의 코 앞까지 다가와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마치 세 명이서 다리를 묶고 빨리 걷는 삼인사각경기처럼 셋은 비스듬히 서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도망치려던 이든과 아영의 다리가 엉켜 넘어지면서 그의 어깨를 붙잡은 트럭운전수도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이 넘어진 방향으로 사이렌이 울리며 경찰차가 다가왔다. 비에 젖은 도로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트럭기사였다. 그는 비대한 몸과는 달리 일어날 때는 용수철처럼 유연한 몸놀림이었다. 남자는 몸빼바지를 얼른 털고서, 오른발에서 벗겨진 쪼리를 다시 신었다. 엄마에게 급하게 전화할 일이 있다던 여학생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트럭운전수는 잰걸음으로 트럭에 올라탔다. 당연히 시동을 켜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남자는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이든을 향해 앞으로 비닐봉지를 쑥 내밀었다.

“집사람이 점심에 잔뜩 싸준 찰옥수수인데 나눠먹는 게 한국인의 정 아닙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좀 전과 달리 친절하고 공손했다.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겁니까?" 그는 남자의 손을 거칠게 밀쳐냈다.

갓길에 멈춰 선 경찰차에서 50대 남자 경찰과 20대로 보이는 여자경찰이 차에서 내렸다. 남자 경찰이 물었다. "인천 안심인 앱으로 신고해주신분이 어느 분이시죠?"

아영이 트럭운전사의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트럭 운전사는 실실 쪼개고 있었다.

"제가 신고했어요."

"별 일도 아닌 걸로 신고까지. 언제 신고를 다 했대.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은..."

아영이 운전사의 시선을 불편해하자 남자 경찰이 남자의 말을 중단시키고는 같은 순찰조의 여성 경찰에게 눈짓을 보냈다.

"잠시만요. 이따가 말씀하세요. 박 경위."

박 경위라 불린 여성 경찰이 아영을 데리고 경찰차 근처로 가서 얘길 나누기 시작했다. 남자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아픈 애엄마 상태가 궁금해서 우리 딸이 저기 친절한 여성분에게 핸드폰을 잠깐 빌려달라고 했더니, 여기 이 인정머리 없는 남자가 극구 안된다고 해서 제가 좀 화를 냈습니다."

"음주 운전하셨어요?"

"뭔 소리래요. 트럭모는 사람이 큰일 날라고요."

박 경위와 아영이 대화를 마치과 남성 경찰관옆으로 다가왔다.

"송 경위님, 여성분의 말을 들어보니 저 남성분의 따님이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고 여기 옆에 계신 남성분이 오천 원 짜리를 주며 전화카드를 사서 통화하라는 말에 아빠 되시는 남성분이 차량 안에 담배연기를 뿜고 도로에 침을 뱉으면서 두 분에게 겁을 주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세 분이 실랑이가 벌어져서 도로에 넘어지신 거라고 합니다. 송 경위가 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출소에 가서 조서를 작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 생각에는... 서로 약간의 오해가 있으셨던 거 같은데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시고 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이든이 송 경위에게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의 오해요? 아까 그 상황을 보셨어야 하는 건데. 얼마나 저희에게 험악하게 굴었는데요. 아마 경찰차가 안 왔으면 저에게 주먹이라도 날렸을 겁니다."

"아니, 내가 무슨 깡패도 아니고 댁한테 왜 주먹을 날려요."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정 비닐봉지를 경찰에게 열어 보여줬다

"경찰관님, 싸우려고 덤벼드는 사람이 옥수수 드셔보시라고 이렇게 들고 다닌답니까?"

이든은 기가 차서 헛웃음 소리를 냈다.

"여름 날씨라 금방 쉴 테고. 음식 남겨서 버리면 벌 받아 안그라요.” 남자는 코를 쿵하고 풀더니 몸빼바지에 대충 손을 비벼댔다. 그리고는 봉지 안에 손을 넣어 옥수수를 꺼내 이든의 코앞에 내밀었다가 그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자, 이번에는 송 경위에게 내밀었다. 아침에 삶았다는 옥수수 표면에 윤기는 사라지고 말라가고 있었다. 송 경위도 손을 들어 사양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박 경위가 이번에는 안심인 앱으로 신고한 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영은 이든을 잠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영이 수첩과 펜을 꺼내든 박 경위에게 말했다.

"그냥 집으로 가서 얼른 씻고 쉬고 싶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송 경위가 박 경위에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그녀는 경찰차량에서 음주측정기를 가지고 왔다. 트럭운전수는 술을 안 먹었다고 경찰에게 항변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음주측정기에 대고 후우 하고 운전수가 세게 입으로 숨을 내뱉었다.

"송 경위님, 혈중알코올농도는 0.02%인데요."

"거 봐요. 감기기운 있어서 감기약 먹은 거밖에 없다니까." 남자는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비에 젖은 쪼리가 미끄러운지 남자는 비틀거리며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의 비상등이 꺼지고 열린 창문으로 트로트메들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운전수는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는 말했다.

“살펴들 가슈."

트럭이 출발하자, 경찰차도 서서히 트럭의 불빛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앉은 아영이 이든에게 차 키를 건네주며 말했다.

“근데, 왜 아까 그 여학생에게 휴대폰 건네는 걸 막으신 거예요?

"그 여학생이 갖고 달아날까 봐요."

"네?"

아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원래, 그렇게 남을 잘 못 믿는 성격인 거죠."

"그 여학생이 차에 다가올 때부터 어쩌면 휴대전화를 갖고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다예요."

"그냥 여고생 전화 한 통화하게 두었으면, 지금쯤 펍에서 기분 좋게 소개팅하고 있을 텐데..."

"아 참, 아영 씨 소개팅..."

아영도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때, 아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영아, 너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선임이 자기 바람맞았다고 방방 뜨고 난리야.'

아영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줬다는 연구소 여자 동기의 전화인듯했다.

"선미야, 미안해. 차 타고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소개팅남이랑 너한테 전화할 겨를이 없었어. 내가 잠시 후에 전화로 사과할게."

이든이 폭탄이 날아가 터지는 소리를 내자 아영이 따라 웃었다.

"삐유우웅 펑, 소개팅 날아가서 어떻게 해요?”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중간에 그 여학생이 갑자기 사라진 건 좀 이상하긴 한데. 그리고 박 경위가 근린공원일대에서 스미싱 범죄가 몇 건 접수됐다는 얘길 하긴 했어요. 뭐, 우리랑은 상관없는 얘기겠지만요.”

말을 마친 아영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입술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들은 니체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니체가 뭐라고 말했는데요?"

"아까 못 들었어요? 힘든 고갯마루를 넘을 때 다리가 부러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넓은 대로에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리가 부러진다."

그는 차량의 시동을 켜고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에 자차 사고를 접수시켰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을 속으로 곱씹어 보았다.

'넓은 대로에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리가 부러진다고...'

"아까 우리 제법 손발이 잘 맞았죠.”

그녀의 말을 듣고 이든은 민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왜 타이밍에 민주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민주가 약학대학 1학년 여름에 함께 떠난 자전거 여행 첫날에 그에게 건넨 말 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오늘 우리 제법 잘 해낸 거 맞죠.'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프리카 남아공 케이프 타운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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