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전 글에서 다룬 심장이 멈춘 환자,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 몸이 불편한 환자가 있었고 이번에는 상습신고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하…. 주소지를 보니 또 거기네….”
선임님이 구급차 안에서 주소지를 확인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딘데요?”
“매일 아프다고 하는데 도착해 보면 상태 멀쩡하더라고. 그냥 장난치는 것 같아.”
나는 도착할 때까지 그가 했던 말을 되새겨보며 무슨 뜻일까 생각했다.
몇 분 후, 어느 고시원에 도착했고 나는 그 신고자를 만날 수 있었다.
신고자는 외모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고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염색했을 뿐만 아니라 지저분하게 하나로 묶은 말총머리를 하고 있었다. 참 특이했다.
그는 바닥에 누워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하지만 구급대원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 응급처치를 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숨을 헐떡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응급 상황이라고 생각한 나는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고 그 순간 선임님은 내 팔을 붙잡았다.
“00 반장님 잠깐만 기다려봐.”
“네!?”
‘아니, 지금 환자가 죽을 것 같은데 기다리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자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스로 바닥에 앉아서 우리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왜 또 신고하신 거예요? 자꾸 아프지도 않으면서 신고하시면 안 돼요! “
선임님이 짜증 섞인 말을 뱉었다.
“아니…. 숨쉬기도 어렵고 걷기도 힘드니까 그러지. 지금 화장실 가고 싶으니까 부축 좀 해줘.”
신고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본 선임들은 ‘나중에 설명해 줄게.’라며 그가 화장실을 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때 나는 불만스럽게 신고자에게 말했다.
“정말 화장실 가려고 신고한 거예요?”
“…..”
신고자는 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본인의 손을 잡아달라고 손을 뻗었다.
“00 반장님, 그냥 화장실 데려다주고 오는 게 빨라. 얼른 하고 가자”
이미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선임님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그저 그 신고자를 빨리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 지역의 유명한’ 상습신고자를 만난 것이다.
“하… 요즘 신고를 너무 많이 하네… 다른 팀은 하루에 5번 이상도 나가서 만나고 왔대”
“왜 저렇게 신고하는 거예요?”
이유가 궁금한 나는 선임님한테 물어봤다.
“모르겠다…. 간혹 저런 사람 때문에 급한 출동이 밀려서 우리 관내 출동을 다른 데서 대신해주기도 해…..”
다들 상습신고자인 걸 알고도 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해 보였다. 그 이후로도 같은 출동을 수차례 나갔고 역시나 그 신고자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 신고가 줄어들자 우리 기억 속에 그가 조금씩 잊혀 갔다.
언젠가 병원에서 우연히 다른 센터 구급대원을 만났을 때, 그 상습신고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하…. 혹시 이 사람 알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보자마자 알았다. 그 상습신고자였다.
“원래 00동에 살았는데 최근에 이쪽으로 이사 왔다네요. 신고를 너무 많이 해요…”
‘그가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니, 그래서 신고가 준 것이었어!’
속으로 그 상습신고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우리가 사진 속 그에게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호흡 곤란이란 말에 우리는 급히 출동을 했다.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니 현관 앞에 삭발을 한 남성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몸을 돌려 얼굴을 확인한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 사람이다….”
“하… 여기에 있었네…. “
나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상습신고자에게 또 한참을 붙잡혀 있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나는 그를 돌려세워 깨우기 시작했고 그는 역시나 그때처럼 태연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멀쩡한 그의 모습에 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했다. 우리는 앞다투어 그를 다그쳤다. 나는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차갑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옆에 있던 과도를 빼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우리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 흥분한 그를 잠재우기 위해 나는 그를 붙잡으려 했고 옆에 있던 선임님은 무전으로 경찰에 지원 요청을 했다.
“안 찔러. 걱정하지 마.”
그는 실실 웃으며 우리를 조롱했다.
나는 그와 대치하며 어떻게 칼을 뺏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가 칼을 살짝 내려놓으며 뒤를 돌아봤고 나는 이때다 싶어 칼을 빼앗았다. 그렇게 그를 제압했다.
“휴….”
얼마 뒤, 경찰이 현장으로 도착했고 우리는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옆에 있던 동료는 그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소리치기도 했다.
나는 센터로 돌아오자마자 광수대*에 연락을 해 오늘 우리가 겪은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는 광수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조서를 작성했다. 그저 그 상습신고자가 처벌받길 바랐다.
(*광수대는 광역수사대의 준말로, 소방공무원에 대한 폭행, 위협 등 소방활동 방해 행위에 대한 수사를 하는 기관이다.)
그렇게 길었던 그날 밤의 출동이 끝이 났고 곧 교대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히 그 사건 이후로 그 상습신고자는 경찰서에 잡혀갔고 같은 신고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 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신고하던 그 상습신고자는 정말로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다. 만약 그 순간에 응급 환자가 발생했다면 다른 지역의 구급차가 출동했을 것이다. ‘골든 타임’을 놓친 응급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