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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의 겨울, 끝나지 않는 출동

by 차차 Jan 01. 2025

어느 겨울, 눈이 너무 많이 왔던 날이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늦은 오후에 출근을 했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을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때만큼은 여느 회사원들과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밥을 먹은 후에도 한참을 출동 없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중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이 오네요. 엄청 이쁘게 많이 와요"


삼삼오오 옥상에 모여 펑펑 내리는 눈을 봤고 오랜만에 본 눈에 신나서 해맑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쿵!" 순간 큰 소리가 났다. 119 안전 센터 바로 앞에서 차가 옆에 있던 벽을 박았다. 나는 물론이고 동료들은 반사적으로 장비를 챙겨 그 차로 향했고 안에 있는 운전자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운전자도 병원을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며 놀란 가슴을 쓸었다.


"왠지 심상치 않네요......"


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내리는 눈을 뒤로한 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갑자기 출동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아까 그 말 때문이었을까. 그 출동을 시작으로 우리는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돌아올 수 없었다.


"00 구급차 현장 이동할 수 있는지?"


"00 구급차 현장 근처에 교통사고 하나 있는데 마무리됐으면 이동해 줘요."


상황실에서 계속해서 출동이 가능한지 무전을 했고, 우리도 한 건 한 건 마무리 짓자마자 바로 다른 출동을 나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눈앞에서 버스가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부딪히는 사고가 났지만 우리는 다른 출동을 나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출동 중에도 그 버스 사고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때 무전이 울렸다.

"현재 서울 관내 모든 구급차 출동 중이니 펌프 차 출동해서 환자 상태 파악할 것."


서울 관내의 구급차가 모두 없어 불을 끄는 펌프 차까지 출동해 환자를 봤고 현장 교통사고가 나도 큰일이 아니라면 양해를 구하고 더 급한 응급환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밤을 새우며 바쁘게 몸을 놀렸다. 아침 7시 반이 넘어 겨우 센터로 향했다. 기쁨도 잠시, 돌아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오던 스타렉스 차량이 휘청하더니 옆에 있던 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우리는 서로 한숨을 쉬었다. 그때 나는 옆자리 앉은 동료를 바라봤고 웃음이 빵 터졌다. 몰골을 보니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갔고, 눈을 반쯤 멍하니 뜨고 있었다. 내 몰골은 안 봐도 뻔했다.


우린 사고 현장으로 바로 향했고 스타렉스 차량 운전자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운전자는 다친 곳이 없다고 했고 보험사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겨우 센터로 복귀하니 다음 팀 이미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고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끝나지 않을 거 같던 긴 출동이 마무리되었다.

교대를 하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가 뜨거운 물로 몸을 구석구석 씻었다. 거울을 보니 어젯밤 내린 눈처럼 얼굴에 피곤함이 쌓여 있었고 순간 잊고 지내던 군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생각이 났었다.'전역만 한다면 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만....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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