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가을만 빠지고 온 가족이 아침 식탁에 앉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미역국 5인분을 물만 더 넣고 끓였다. 시장에서 사 온 반찬들로 아침상이 칠첩반상이 되어버렸다. 평소에 샌드위치에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대신하던 봄과 겨울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갑자기 하늘이 내린 효자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수저를 건네자 미역국을 한술 뜨시더니 한 말씀 툭 던졌다.
“미역국 끓이는 솜씨가 늘었구나.”
미역국의 출처를 정확히 아는 봄과 겨울이 서로 눈짓을 하며 웃는다.
“세월이 흐르면 요령도 알게 되는 거죠.”
“......흠 그런데, 너는 언제 아들 날 거냐?”
미역국을 후루룩 마신 시어머니가 한 말 때문에 겨울과 봄은 기가 막히는지 이구동성으로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은 이미 할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후렴구 같은 아들 타령이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엄마 나이가 지금 마흔 하고도 여덟이야.”
“그게 뭐? 예전엔 쉰둥이도 있었어.”
제법 근엄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또 시작이라는 눈빛으로 남편을 노려봤다. 남편은 당황해서 어머니의 말을 수습하려고 했으나 시어머니의 다음 말이 더 걸작이었다.
“집안에 죄다 계집아이들뿐이면 우리 아들 제삿밥은 누가 챙겨?”
“할머니 저희가 지내면 돼요.”
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네깟 년들이 무슨. 시집가면 그만이지.”
시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갑자기 호르몬 탓인지 열이 확 오르자 다시 내 안의 똘끼가 발동했다.
“어머니, 저 자궁 없어요. 암 수술했잖아요?”
“뭬? 언제? 아니 그런 몹쓸 병엔 왜 걸렸데?”
시어머니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이내 심란한 얼굴이 되시더니 수저를 내려놓는다. 밥맛 다 떨어졌다는 얼굴이다.
다른 날은 몰라도 토요일은 홈메이드식 브런치를 먹으며 그나마 가족다운 아침을 보냈던 봄과 겨울에게 할머니의 모습이 충격인지 덩달아 수저를 내려놓는다. 자발적 벙어리가 되기로 작정한 남편만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밥을 먹고 있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남편을 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미역국을 먹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어째서 집에서 만들어지는 인생이 고작 이밖에 안 되는 것일까? 다 져주는 척하다가 결국은 제 맘대로 하는 남편과 기억을 지우며 꿈꾸는 치매 시어머니, 그리고 사랑의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는 큰딸 가을까지 정말 대단한 패밀리다.
참다못해 식탁을 박차고 일어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드라마 속에서 차인표가 했던 분노의 칫솔질에 버금가는 양치질을 했다.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올라앉아 미친 듯이 이빨을 닦으며 치약 거품을 한가득 입에 담고 말했다.
“이래서 나의 서정성이 점점 멸종되는 거야. 오던 로맨틱도 정이 떨어져서 유턴해버리겠다.”
입안은 치약 거품으로 부글부글하고 절반은 흘리며 분노의 칫솔질을 하는 내 모습은 거의 미친 여자 수준이다. 거실에서는 시어머니의 도돌이표 노래가 들려오고 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있다. 그래 너희들은 나와는 별개로 행복하구나. 그런데 나는, 나는 말이다. 너무나 슬프다. 순간 나는 치약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대성통곡을 했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나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아무리 지랄해도 그들 마음대로 뇌는 것 같아서. 한동안 그렇게 나는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통곡했다. 암 수술 후에도 하지 않았던 대성통곡 덕이었을까? 아니면 울고 싶었는데 울었기 때문이었는지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급류가 빠져나간 것처럼 고요해졌다. 어머니의 노랫소리는 그쳤고 남편이 화장실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그래도 답이 없자 열쇠로 문을 열었다.
“사람 놀라게 왜 그래? 애들도 있고 엄마도 있는데.”
남편이 나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변기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이혼, 할래?”
남편은 순간 당황한 얼굴로 나를 봤다.
“싫어.”
남편이 짧게 말했다.
“너는 싫구나. 나는 그렇고 싶은데. 알았어”
나는 스치듯 남편을 지나서 주방 한쪽에 있는 작업실로 갔다.
남편이 나의 이름을 오랜만에 부르며 따라왔지만 나는 문을 닫아버렸다.
여름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마냥 좋다. 비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그 어떤 것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냥 비를 볼뿐이다. 비가 오기 며칠 전부터 관절이 비명을 지르지만 그래도 비가 오는 날 습한 공기 중에 울리는 세상의 소리와 여름의 묘약 같은 비의 냄새가 실린 바람과 우울한 베일에 살짝 감싸인 것 같은 실내 한 분위기가 모처럼의 외출을 행복하게 만든다.
담배 없는 일상이 후각을 더 예민하게 한다. 코끝에 맴도는 커피 향이 아찔하다. 짙은 에스프레소 한잔에 멜론 색깔의 마카롱을 곁들이면 세상에 부는 온갖 바람에 쓰러진 풀잎 같은 내 안의 감수성이 살아난다. 멜론색으로 영혼이 물드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건강은 좋으신가, 이 작가?”
기다리고 있던 허 편이 어느새 왔는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겔랑의 구슬 파우더를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색의 마카롱들에 정신이 팔려서 그가 오는 줄도 몰랐다.
그는 일수쟁이가 들고 다닐 법한 가죽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마카롱을 주워 먹는다. 그가 든 마카롱은 보라색의 블루베리 맛이다. 그는 여전히 보라색을 좋아하는 남자다.
“이메일로 보낸 스토리 괜찮던데, 갑자기 샘이 솟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그런 스토리를?”
“도둑질, 혹은 커닝이라고나 할까. 한창 진행 중인 연인들의 이야기. 힌트는 거기까지야.”
“흠. 예감은 나쁘지는 않아. 단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안 돼. 그럼 빤해지잖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합시다. 엄마의 마음으로 쓰지 말라고. 본인이 맘에 안 든다고 말도 안 되는 비극으로 초 치지 말고.”
역시 허 편은 눈치는 99단이다.
자력으로 연애소설이 써지지 않아서 딸의 연애를 커닝해서 소설을 쓰는 엄마는 아마 세상에 나 하나일 것이다. 나중에 가을이 뭐라고 하면 딸의 인생에 투자한 엄마가 본전을 뽑기 위해 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가을의 사랑을 만천하에 까발리고 내가 느낀 배신감을 퉁 치고 싶다.
나의 은밀한 바람과는 달리 가을의 연애는 아직은 봄날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데이트하는 걸 보면. 남편은 그런 가을의 연애를 알지 못한다. 그가 가을의 ‘어린 남자’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마 그의 안테나가 시어머니에게로 향하지만 않았더라면 진즉에 눈치를 채고 물어 왔을 터인데 요즘 남편은 효자 아들 노릇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는 치매 노인 전문 간병인을 고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치매인 어머니 때문에 집안에 CCTV까지 달았다. 그리곤 회사에서 실시간으로 시어머니의 하루를 본다. 조지오웰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가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요즘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혹시 어딘가 CCTV가 설치된 건 아닌지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참 그분, 가지가지 하신다. 내가 가계부 쓴다고 할 때 알아봤지만. 그 치밀함, 나는 12번 환생해도 안 된다.”
집안뿐만 아니라 자비를 들여 대문과 골목까지 CCTV를 설치했다고 하자 허편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이다.
“그러니 가을의 연애가 남편의 레이더망에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지.”
“정말 그러다 CCTV에 걸리면 어쩌지?”
허 편집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그가 걱정하는 게 가을의 연애인지 아니면 딸의 연애를 소재로 차용한 ‘연애소설’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후자일게 확실하다.
“지 팔자지.”
“...... 가을이가 꼭 선전해줘야 하는데.”
“그런데 이건 소설이 아니라 러브다큐 아닌가?”
“괜찮아. 독자가 동의하고 감동하면. 그리고 이거.”
허 편집장이 늘 들고 다니는 일수 가방을 뒤지더니 티켓을 불쑥 내밀었다. 시칠리아 행 티켓이었다.
“이건 왜?”
“엄마는 딸 연애스토리를 팔아먹는데, 뭐라도 해야지. 그동안 내가 세계 일주할 때 쓰려고 안 쓰고 모아둔 마일리지 다 털었다. 치매 시어머니 곁에서 머리 쥐 나지 말고 가라. 당신 남편이 나 죽이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또 글을 쓰고 출판할 의무가 있잖아. 지난번에 말한 그 타르미오나로 가서 벼랑 끝 호텔에 앉아서 럭셔리하게 에스프레소 한잔 놓고 연애소설을 쓰는 거야.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죽이더라. 원래, 연애 중인 사람은 연애소설을 못 쓴답디다.”
“누가 그래?”
“롤랑 바르트. 지금이 바로 그때야. 이 작가 사랑하고 있지 않은 바로 지금이 연애소설을 쓸 때라고. 생각해봐. 당신의 그 첫 작품도 사랑하지 않을 때 쓴 거지. 당신이 그 가계부 쓰는 남편과 사랑하고 결혼하는 순간 낭만이 실종된 거야. 안 그래?”
허 편이 틀렸다. 그때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세상의 모든 사랑이 최면에 걸리듯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사랑은 그 시절 동시상영 중이었다.
허 편집장이 브이 자를 그려 보이며 웃는다. 할 말이 없다. 이 진지한 남자 앞에서는. 좌충우돌에 일단은 벌이고 보는 대책 없는 남자의 진정성이 눈이 보여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독립운동가에게 암살 지령을 내리는 동지의 눈빛과 비장한 얼굴로 손을 덥석 잡는다.
“반드시 파이팅 하자고. 나, 세 명의 여자에게 양육비 줘야 하는 남자잖아. 잘 부탁해.”
그가 맞잡은 손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
그 지중해의 절벽에 걸린 도시가 ‘타오르미나’라는 걸 알기 전부터 타르미오나가 머릿속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알랑 들롱이 나왔던 영화<태양은 가득히> 때문이었다. 맷 데이먼이 분한 리플리가 있었지만 나는 주말의 명화를 통해 본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의 알랑들롱이 연기한 리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처음 보는 순간 바다를 닮의 그의 눈빛에 사로잡혔다. 내가 처음에 남편을 보자마자 그의 눈빛에 사로잡혔던 것은 현실에서였고, 알랑들롱의 눈빛은 생각 저편의 일이라 오랫동안 그의 눈빛을 닮은 바다와 도시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고 있던 그 절벽의 도시가 ‘타오르미나’라는 걸 알려 준 사람은 이 인실에 함께 입원했던 노인이었다. 나만이 타오르미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노인은 이미 타오르미나를 알고 있었다.
함께 영화를 보던 노인이 아련한 눈빛으로 코발트블루의 바다를 보며 말했다.
“딱 한 번 그곳에 가봤지. 알랑드롱은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을 닮은 바다는 봤지. 아마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을 거야. ‘카스텔 몰라 성벽의 돌 틈새에 두고 온 것은 잘 있겠지. 후후.”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즐거운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처럼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결국 그날 노인은 영화를 다 보지 못하고 잠속에 빠졌다.
노인이 그곳에 두고 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건대 버리고 싶지 않지만 버려야 하는 무엇인가를 두고 왔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