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이과 남자의 과학책 읽기(수학_01)
실력은 상대적 위치다. 나는 수학을 잘 하는가?(혹은 잘 했는가?)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 상을 먹었던 과학고 동기는 나를 수학은 잘 못하는 녀석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인문계 출신인 내 아내의 눈에는 좀 과장해서 내가 수학 천재로 보일 것이다. 하물며 이화여대 생물학 석좌교수 최재천 박사는 수학자 김민형의 전작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만일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수포자’가 되지 않았을 텐데.” -최재천(생물학자, 이화여대 석좌교수)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스스로 수포자일 수 밖에. 수학은 어렵다. 나도 사실상 상대적 수포자 였다(그래서 무늬만 이과 남자라고 쓴다). 어른이 되어 시험 걱정 없이 수학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수학, 이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옥스포드 대학교 수학과 김민형 교수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대중에게도 전달하고픈 열정이 보인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대중 강연을 하고, 그 강연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서 우리에게 선물한다.
필즈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세드리크 빌라니는 <수학은 과학의 시다> 라는 제목의 수학 에세이를 펴냈다. 공교롭게도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과학자의 세상에서 시를 쓰는 이유’ 이다. 많은 수학자들이 오일러의 등식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 뇌 세포가 활성화된다고 한다(그래서 오일러의 등식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이라고들 한다). 수학은 아름답다. 시적 아름다움이 있다. 시는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수학이 어렵기도 하다.
KAIST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KAIST 비전> 2022년 겨울호 표지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다. 비록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초등교육부터 석사학위까지 한국에서 받았기에 한국 수학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자못 컸을 것이다. KAIST 수리과학과 변재형 학과장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자유로움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학문에서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진정한 자유를 갖기 위해선 자신과의 투쟁을 거쳐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필요치 않다.” – 변재형 교수, 카이스트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 푸앵카레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능력은 아이들이 자연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수학책을, 과학책을, 역사책을, 때로는 미술책을 이제서야 더 깊은 관심으로 읽는 이유는, 내 아들에게 한 권이라도 더 좋은 책을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내 아이가(이미 20대 이지만) 여전히 자연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자유롭게, 그리고 정의롭게 이 생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더 좋은 조언자가 되고 싶어서 말이다.
덧말: 책 표지의 부제는 ‘인류의 역사에 스며든 수학적 통찰의 힘’ 이다. 수학의 역사, 역사 속 수학은 확실히 수학적 통찰의 힘을 준다. 수식은 많이 없지만 중학생은 좀 어려울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