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이과 남자의 과학책 읽기(과학일반_01)
1965년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QED)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천재 물리학자라고 칭해도 어색하지 않다. 파인만의 자서전과도 같은 이 책을 통해 나는 파인만을 천재형이 아니라 노력형으로 느꼈다. 평범한 내가 대단한 성과를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과학 연구를 하고 있지도 않고), 평범한 내 아들에게도 행동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노력형 괴짜가 좋다. 타고난 천재는 우리에게 너무 먼 별이니까. 파인만에 대해서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이라면, 가장 사랑하는 과학자는 리처드 파인만이다.” – 출처: 나무위키
파인만은 사랑스럽다. 사랑하고 싶다. 그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삶을 살았다. 내가 늘 입버릇 처럼 되뇌는 말,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 배우고 깨쳐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 코넬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파인만의 일화는 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귀감이다. 파인만은 친구가 식당에서 장난으로 접시를 공중에 던지는 것을 보고 접시의 운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선임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재미난 것을 발견했는데요. 접시가 돌아가면 비율이 2:1이 되는 이유는...”
그러고 나서 가속도의 균형을 설명해 주었다.
선임 교수가 말했다.
“파인만, 재미있긴 한데, 이건 어떤 중요성이 있지? 왜 이런 걸 하나?”
파인만이 말했다.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죠. 그냥 재미로 한 거예요”
그래, 바로 그거다. 재미로 하는 것. 하는 일이 재미있어야 한다.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그 접시의 요동 방정식이 또 다른 물리학의 천재 디랙의 전기동역학 방정식에 관련되고, 양자전기역학에 관련되고, 결국 파인만 다이아그램까지 이어졌다. 그것으로 파인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파인만은 어떤 결정을 내리면 바로 실행하고, 그 실행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성취의 이유는 세 단어로 충분하다. 결정, 실행, 지속. 브라질에서 있었던 일화를 보자.
<하루는, 오후 세 시 반쯤 되었는데, 갑자기 매우 강하게 이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로 그거야. 지금 당장 술을 마시고 싶어!’ 나는 술집에 들어서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지금은 대낮이야. 여기는 아무도 없고, 술을 마실 사교적인 이유도 없어. 왜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지?’ 나는 약간 겁이 났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때가 실제로 위험한 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그만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인만은 무엇이든 관심이 가면 진심으로 공부하고 노력하였다. 그림에 젬병이었지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개인전을 개최할 만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어느 날 브라질에서 ‘프리지데이라’ 라는 타악기에 관심을 가지고는 프리지데이라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파인만은 자신의 프리지데이라 연주 실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미국에 온 프랑스인이 영어를 쓰는 것과 같다. 처음에 그들은 온갖 실수를 저지르고 있어서, 이 사람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다가 연습을 거듭하여 그들의 억양에는 색다른 울림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랑스인의 말을 듣기 좋아한다. 나의 프리지데이라 연주에도 색다른 억양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평생 동안 프리지데이라를 친 사람들과 나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내가 연주한 것은 약간 둔한 억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성공적인 프리지데이라 연주자가 되었다.>
새로운 것을 대하는 태도로써 본받을 만하다. 최고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최선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성실한 노력과 완벽의 추구는 결이 다르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에게 악마의 바이올니스트로 불린 니콜라 파가니니의 연주를 원하지 않는다.
파인만은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과학자로서, 교수로서, 그가 생각하는 과학교육에 대한 이 일화만큼은 우리 교육 전반에 깊은 생각을 안겨주기에 옮겨본다. 그가 안식년 기간 동안 브라질의 대학에서 강의한 후, 학기가 끝날 무렵 타 교수들과 정부 관리들이 참여한 강의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제가 이 교과서를 아무데나 넘겨서 아무 곳이나 읽어서, 그것이 왜 과학이 아니라 암기일 뿐이지 이유를 대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청중들 앞에서 책을 아무 곳이나 펴서 아무데나 손가락을 짚고, 읽은 다음에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촤라라라락. 아무데나 손가락 짚고, 읽어 나갔다.
“마찰형광. 마찰형광이란 결정체가 부서질 때 빛이 방출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말했다.
“여기에 과학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건 단지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설명하는 것 뿐입니다. 여기에는 자연에 관해서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어떤 결정이 부서지면서 마찰형광을 내는지, 왜 빛이 나오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집에 가서 실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학생들은 실험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썼다고 합시다. [캄캄한 방에서 설탕 덩어리를 팬치로 부수면 파란 빛이 난다. 몇 가지 다른 결정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현상을 마찰현광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집에서 직접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연에 관한 경험을 얻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