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이과 남자의 과학책 읽기(과학일반_02)
아들이 중3 고등학교 입시 때였다. 열흘간의 추석연휴 동안 우리 가족은 많은 시간을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아들은 면접 대비로 학교 생활기록부 독서부문에 기록되어 있는 책들 중에 다시 읽어봐야 할 책들을 읽었다. 그중 일부의 책들이 몰려있는 아들 책상을 아내가 폰카에 담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그냥 무심코 세어보니 사진 속의 책은 28권. 완전수(Perfect Number)다. 자신의 약수의 합이 자기 자신이 되는 수. 내가 권해 준 책은 몇 권인지 세어본다. <생각의 지도>, <중력파>, <틀리지 않는 법>, <수학시트콤>, <이야기 파라독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이런. 6권. 이것도 완전수다!라고 놀라워하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세상 물정의 물리학>, <노인과 바다>, <과학콘서트> 등도 내가 권한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책은 엄마 추천도서이다)
저 에피소드가 벌써 7년 전이다. 그동안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는 출간 23년이 지났다(개정증보 2판까지 나왔다). 지금도 중학생을 위한 과학추천도서로 자주 언급된다. 나는 개정 1판을 읽었었고, 과학고를 준비 중이던 우리 아들에게 나도 추천해 주었다.
정재승 교수의 책은 <열두 발자국>이 더 낫다는 생각이 있었다. 최신작이라는 이유가 컸을 터이다. <과학콘서트>가 처음 나왔던 2001년에는 새로운 이야기였던 것이 내가 읽었던 2013년만 하더라도 이미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내용도 많아졌으니 새로운 지식이라는 느낌은 덜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첫 이야기는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의 그 누구에게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에 관한 것인데, 이 법칙은 심리학 관련 서적에서도 이제는 흔하게 접하게 되는 평범한 지식이 되어 버렸으니까.(그렇다고 <과학콘서트>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내용으로 읽힌다. 단지 새롭다는 느낌은 없다는 것일 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나의 <무늬만 이과 남자의 과학책 읽기> 과학일반 챕터에 포함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책이 중학생을 위한 과학 필독서? 아, 이건 아니다 싶다는 반성 아닌 반성이 들었다(중학생이 읽기에는 어렵다). 정재승 교수도 개정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대학생 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다. 이 책에 과학 공식이나 어려운 계산은 없다. 상대성이론도 없고 양자역학도 없고, F=ma 도 없다. 그래서 쉽냐고? 아니다. 어른이 생각하며 읽는다면 사회적 메시지도 보이고 내용이 깊다. 거의 스쳐 지나가는 듯이 언급되는 유명한 '몬티홀 문제'는 사실 나는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제인데 확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스쳐 지나가며 읽을 터이다.
정재승 교수는 물리학 박사다. 그리고 지금은 카이스트에서 뇌공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서른 즈음에 쓴 책인데, 사실 통계물리학을 기초로 하는 심리학(심리학은 과학이다) 또는 뇌인지과학에 더 가깝다. 아마도 그래서 책 제목을 <과학콘서트>로 정했을 것이다. 수식이 난무하는 정통 물리학이 아니라 대중에게 좀 더 쉬운 말로 다가가는 생활 속 콘서트형식으로 말이다.
중학생이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라고 했지만,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고 읽어두면 유익한 것은 맞다. 이 책에는 특히 카오스와 프랙털에 관한 소챕터가 많다. 프랙털이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 구조들이 끊임없이 전체 구조를 되풀이하는 형상을 말하는데, 어쩌면 물리학자이자 뇌공학을 연구하는 저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주제 중의 하나가 프랙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 서태지의 머리스타일에서, 그리고 바흐의 음악에서도 프랙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중학생도 관심 가질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주식 시장에 뛰어든 나사(NASA)의 로켓 물리학자들, 뇌파로 조종되는 가제트 형제 이야기, 상술로 설계된 복잡한 백화점의 미로 등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중에서 심장의 생리학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이곳에 옮기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는 현대 생물학적 주장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였다. 정상인의 심장 박동 간격이 훨씬 더 불규칙적이었으며, 환자들의 심장 박동 간격은 상당히 규칙적이었다. (중략) 나이가 들어 노쇠할수록 심장의 불규칙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역동적이고 유연한 상태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잘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