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이과 남자의 과학책 읽기(수학_02)
행복은 주관이지만 불행은 상대적이다. 날개가 없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날개가 없으니까. 나에게만 왜? 라는 좌절과 분노는 상대적 차별에 기인한다.
1955년 미국. 백화점에서 일하는 42세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퇴근길에 대중 버스를 탔다. 피곤했을 것이다. 흑인 좌석에 앉았다. 백인이 탔다. 버스가 만석일 때 흑인은 백인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로자 파크스는 거부했고, 경찰에 체포되었다. 차별에 반대하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시작이었다.
인종, 성별, 출생지역 등에 따른 차별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기득권자의 기득 권리와 관습은 차별을 허용한다. 나는 남성이고, 경상도 출신이다. 여성이고 전라도 출신이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깊게 고민해 본 적 없다. 대한민국 땅에서 나는 차별을 느낄 필요가 없는 남성이고 경상도 출신이었으니까. 잠재적 가해 동참자로서의 권리를 당연하게 누려왔을 뿐이다.
현대 추상 대수학의 개척자인 ‘에미 뇌터’는 1882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던 시기가 1918년이었음을 기억하자. 에미 뇌터는 그 해 ‘뇌터의 정리’를 발표했다. 어떤 물리 이론에 연속적인 대칭성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보존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뇌터의 정리는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에 수학적 증거를 제공한, ‘물리학을 수학적 언어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정수를 보여주는’(p.104) 탁월한 수학적 성과였다. 그런데 괴팅겐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는 ‘힐베르트’는 에미 뇌터의 교수 채용에 반대하는 대학 당국에 항의의 뜻으로 일갈했다. "저는 후보자의 성별이 교수 채용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대학은 공중목욕탕이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인 수학자 ‘에두아르도 사엔스 데 카베손’은 그 당시의 대학을 ‘무거운 기관’이라 지속적으로 따옴표에 넣어 칭하며 비판에 동참한다.
21세기 현재라고 해서 남녀 차별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유럽의 여성에 대한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오스카 브라우닝’ 교수는 19세기 영국의 보수적인 교육 개혁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조차도 "시험지 다발을 살펴본 후에 드는 생각은 점수와는 상관없이, 가장 뛰어난 여자라도 가장 못난 남자보다 지적인 면에서 열등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대한민국도 여성의 학업, 특히 수학·과학 분야의 편견은 존재했다(아마도 지금도). 우리나라에 과학고등학교가 첫 개교하였을 때 입학 자격은 남학생에게만 주어졌다. 여자는 수학을 잘 못한다는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학고등학교에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된 것은 1988년이었다.(경기과학고부터 허용되었고, 전국의 다른 과학고는 그다음 해부터)
지적인 성과를 이룬 여성 과학자 하면 '마리 퀴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없다. 수학자는? 대중에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전무할 것이다. 이것이 차별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미 뇌터를 시작으로 여성 수학자(여성 과학자)를 기억해야 함이 옳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4년마다 수여)의 첫 여성 수상자는 2014년에야 나왔다. 리만 곡면 및 모듈라이 공간의 대칭성과 동역학 연구의 ‘마리암 미르자하니(Maryam Mirzakhani)’였다. 기억하자. 2018년은 건너뛰고, 다시 4년 후 2022년에는 8차원 및 24차원에서의 구 포장 문제 해결의 ‘마리나 비아조브스카(Maryna Viazovska)’가 두 번째 여성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성과가 낮은 것이 아니다. 남성 위주의 기득권력에 가리어져 있을 뿐이다.
<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 에는 에미 뇌터 외에도 15인의 위대한 여성 수학자의 전기가 짧게 소개되어 있다. 두께는 얇지만 깊은 책이다. 차별은 언제나 나쁘다. 나쁜 것은 고쳐야 한다.
덧말 1: 얇은 책이고 표지가 가벼워 보이지만, 책 목차와 내용은 참 수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책 목차는 아래 참고.
1. 변환 Transformation
2. 정체 lmmobilism
3. 회전 Turn
4. 순환 Cycle
5. 중심 Nucleus
6. 대칭과 보존 Symmetry and conservation
7. 추상 Abstraction
8. 체계 System
9. 향수병 Heimweh
덧말 2: 웬만큼 수학에 관심있지 않다면 재미없는 책이라 느껴질 수도. 수학 수식을 걷어내고 읽으면 무지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