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기
두근두근. 겨울과 함께 해야 하는 큰일이 남아있다. 들어는 봤나 김장이라고. 집에서도 안 하는 김장을 파란 대문집에서 함께 시작해 볼까 한다. 사실 배추 모종을 심을 때만 해도 꿈이 컸었다. 배추뿐만 아니라 열무랑 갓에 모든 모종과 씨앗을 다 심을 기세였다. 김치도 잘 먹을 줄 모르는 내가 맛있었던 김치에 뭐가 들어갔었더라. 기억에 기억을 더듬으며 이름을 알아내 모든 모종을 심었더랬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벌레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자연농이라는 단어를 잘못 알고 거름을 제대로 안 준 탓에 배추는 다 자라도 조막만 했다. 제대로 좋은 거름을 줘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무지한 것을 탓해야지 작물에 대한 마음만은 그때도 지금도 모두들 진심이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건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배추 수확시기가 왔는데도 배추는 클 생각이 없고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와서야 큰일이다 싶었다. 밭에 줄 지어선 배추를 보며 "이거 다 담아도 먹을 거 있겠어"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예상치 못한 무가 선방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수확을 시작했다. 자라지 못한 배추에 지래 실망을 하고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조막만 한 배추들을 모두 수확해 모아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그 작은 배추를 모두 가르고 소금물에 절여 놓았다. 모여있으니 또 예쁘네. 배추는 속살을 드러내며 샛 노란색을 뽐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사실 내 눈에만 예쁜 내 새끼 느낌이랄까. 들인 시간과 노력에 함께 한 시간이 모두 모여 사랑으로 변해 아름답게 보였다는 걸 알고 있다. 다행히 어른 중 매년 김장을 하는 언니가 있어서 내가 사랑에 취해 있을 때 일하라고 정신을 차리게 해 준다. 언니의 진두지휘 아래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른들 체험이 돼버린 느낌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도 함께 한다. 김장은 양은 적어도 준비는 완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장갑에 앞치마에 전장에 나갈 준비가 끝나고 김장이라는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를 끝낸 우리는 절여진 배추처럼 앉아 서로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 웃을 수밖에. 아이들은 "김장이 이런 거구나" 하고는 자기들끼리 놀기에 바쁘다.
그런데 다 끝나고 의문이 한 가지 든다. 우리가 키운 배추가 정말 김치가 될 수 있을까?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