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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찬바람.

열무. 목공의자.

by 선영언니 Mar 07. 2025

열무김치 만들기


우리 밭에는 각자 먹고 싶은 작물이 있다면 의견을 내어 심을 수 있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느 때 인지도 모르게 누군가 열무김치를 먹고 싶다는 말에 열무 씨앗을 사다 심었더랬다. 이게 진짜 자랄까 의심을 하며 씨앗을 뿌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며 가며 모두의 돌봄과 사랑을 먹고 자라서인지 때가 되니 정말 열무가 열렸다. 이제 찬바람이 슬슬 불어오기 시작한다. 열무 크기가 작다고 더 키울 수도 없는 때가 왔다는 뜻이다. 조막만 해도 신기하고 예뻐 사진에 눈에 열심히 담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웃음이 난다. 잎은 애벌레 밥으로 키운 건지 우리 먹으려고 키운 건지 모를 정도로 구멍이 뚫려있다. 모르긴 몰라도 다듬을 때 떼어 버려야 할 정도의 잎이다. 하지만 키운 정이 있어서 그것도 버리지 못한다. 솔직히 말해 다듬으면 먹을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이다. 벌레가 먹었다 싶어 식초에 헹궈 김치를 만들어 본다. 질기지만 몸에 좋을 거라며, 먹을만하다며, 우리끼리 되도 않는 위로의 말들로 합리화시켜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우리는 맛에 감탄하고 진정 몸에 좋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말한다. 이게 뭐라고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나 싶다.


목공 의자 만들기


찬바람이 불어오니 일 년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텃밭의 시간을 함께 지나면서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해보았다. 지난 시간을 이야기해 보니 농부들은 마당에 모일일이 많은데 마당에 함께 모이려면 의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이것도 우리 손으로 해보자."

아이들과 둘러앉을 수 있고 함께 만들 수 있고 정리가 용이하게 만들기로 했다. 단순하지만 마음은 거창하게 시작해 본다.

텃밭은 방과 후에 함께한 시간이라 아빠가 함께 할 일은 잘 없었는데 이번엔 아이 아빠가 시간이 되어 함께 하기로 했다. 텃밭에서 내가 여러 감정을 느낄 때마다 아빠들은 매 순간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구나 이건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함께 느끼면 좋겠다 싶었다. 그 순간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미안함과 고마움 등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들었었다. 오늘은 아이와 아빠도 작은 순간이지만 이렇게 함께 하는 순간들을 각자의 방법으로 마음에 담고 있겠지 싶어 속으로 신이 났다. 드릴 소리, 의논하는 소리, 나무 향기, 못질하고 기름 바르고 사포질까지. 어떤 것 하나 빼먹으면 진행이 안된다. 농사처럼 순서와 때가 있고 과정이 있다. 요즘 내가 농사에 빠져있긴 한가보다 모든 것이 농사처럼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만들고 오일을 발라둔 의자들은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 말리고 오일 바르고 며칠 몇 날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지나 이제는 모두들 디자이너가 될 시간이다. 우리는 계절을 함께 날수록 무모함이 늘어난다. 

"이랬으면 좋겠어요~ 저랬으면 좋겠어요."

꼬마 디자이너 들은 이미 머릿속 구상이 끝난 듯하다. 색을 선택하고 칠하고 그리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우리끼리는 디자인 가구보다 더 아름답다며 환호하며 완성. 칠도 장인들 저리 가라 식으로 열심히 해 낸다. 오늘은 바람도 빛도 우리를 도와 빛나는 느낌이 든다. 천천히 기다리고 다듬으면서 서로를 만들어간다. 우리는 함께하는 매 순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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