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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by 글품서재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관으로 생긴 생각들이 일련의 기호 형식을 갖추어 종이에 써진다. 그게 한글이든, 영어든, 불어든. 오늘은 "일기"와 "기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기"는 쓰기 귀찮은 것으로만 여겼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일기를 쓸 시간이 어디있는지, 매일 같이 기록하는 기록인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2023년 입사하고부터였나, 도저히 생각정리가 되지 않고 감정에 스스로 잡아 먹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작가이자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희의 <별게 다 영감>이었다. 읽고 난 후 나는 텍스트란 존재에 다르게 접근했다. 각자의 순간을 글씨로 표현해 낸다는게 살아가는데에 보탬이 될거라고 느껴졌다. 그 후로부터는 신기하게도 종이에 뭘 끄적이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타인을 바꾸려고 하면 안되고, 스스로 깨달을 때만 변화할 수 있다. 스스로 깨닫게 되면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을 찾게 되니까.)


퇴근하고서나 쉬는 날에는 기뻤던 순간, 슬펐던 순간, 화가 나던 순간, 우울한 순간들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집에 굴러다니는 안쓰는 공책들을 주워서 썼지만, 점점 종이를 따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무인양품의 단행본 노트만 사용한다. 부드러운 종이 위에 펜끝으로 내 마음을 흘리면서 글씨를 써내려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2024년을 마무리할 때도 그간 작성해왔던 일기장으로 한해를 마무리 했다. 그동안 썼던 일기들을 훝어보면서 가장 기뻤던 날, 가장 슬펐던 날, 가장 화가 났던 날을 또다시 적어본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지 어렴풋이 느낀다. 그리고 내가 놓치고 살아왔던, 나를 만드는 중요한 부분들에 다시 눈을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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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할 수 없는 텍스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의 책/크레이그 모드>


그런 글자들을 일기장에 꼭꼭 숨기기보다는, 지금처럼 세상에 내보내기로 했다. 나를 구성하는 철근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누군가에게는 확신으로, 누군가에게는 공감으로 다가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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