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를 걸어온 나의 퇴사일지
나는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걸 좋아했으며, 별다른 일탈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2학년 이후로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수시로 명문대에 입학했고 나름 준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적당한 시점에 업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만으로 3년차를 앞둔 지금 시점에..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왜?"라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나는 바로 그 이유를 직시하고, 또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일단은 너무도 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하고 넘어가자.
어릴 때로 돌아가보자.
어릴 적 내 삶의 모토는 "성실하게 살자"였고, 그 말에 따라 항상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 때에는 삶에 목적의식이 없었다. 그냥.. 나는 학생이고, 학생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니까, 열심히 공부를 하자. 그래서 공부를 했다.
매일같이 10시,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고 다음 날 7시에 학교를 가도 별로 회의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맡은 바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또 열심히 하는만큼 성적이 나왔기 때문에..
공부는 꽤 재밌었다. 아, 입시 스트레스는 좀 힘들었지만..
덕분에, 나는 남들은 매일같이 간다는 노래방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채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뒤늦은 자유를 맛보게 되었다.
나는 대학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자유로웠던 시기"라고 추억한다. 내가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해내고, 친구들과 자유로이 지내던 시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대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대학 시절은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짧은 취준 기간을 지나, 나는 한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
나 빼고 모두가 경력직 신입이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경험이 적다고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은성씨가 조사한 자료보다 제가 지금 즉석에서 말한 게 더 유익할 것 같네요.".. 그 때 받은 피드백들은 여전히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혀 있다.
소외감과 무력감은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렸고, 하루 24시간을 일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입사할 때 자신만만하게 작성한 제안서는 더 이상 하고싶지 않아졌고, 그럼에도 자존심 때문에 붙잡고 있다가 끝내 거기에 매몰되어버렸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우울한 감정이 극도로 치닫자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제안서 발표를 포기하게 되었다. 당연히 인턴십은 종료되어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정신이 바닥까지 끌어내려진 뒤 다시금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가.
회복에는 꽤나 오래 걸렸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삶을 온전히 돌이켜볼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나의 정신적 성숙 대부분은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회복과 취준 끝에 나는 업계에서 1황이라고 불리는 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자존감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사수분께서 칭찬과 존중으로 대해주셔서 조금은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술자리에서는 조금 진상이었지만 말이다.) 이전과 다르게 동기들과도 긍정적으로 관계맺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안정적인 회사에 적응하고 나니, 나는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냥 이렇게 쳇바퀴 굴러가듯이 살다가,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 뭐 난 결혼은 안 할 거니까. 그렇게 은퇴하게 되는건가? "전교 1등", "명문대", "대기업" 같은 목표는 더 이상 없는 건가?
나의 퇴사에 대한 고민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속해있는 한, 그것들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의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가 행복을 느꼈던 1년차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조직은 개편으로 인해 경직되었고, 원치 않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성향이 맞지 않는 리더와 맨날 충돌했으며,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매일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회의감이 들었다. "아, 나는 계속 이렇게 살고 싶은가?"
고민을 한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결심을 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나는 결심을 하자마자 회사에 통보했다.
저, 퇴직하겠습니다.
앞으로 연재해나갈 이 시리즈의 글은 내 삶의 이 모든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 즉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의 퇴사 사유와 앞으로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것 같다.
최근에 본 뉴스 기사에서는 MZ세대가 1~3년차에 퇴사하는 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누군가에게는 이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리즈의 첫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