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서주 소패성에 키는 7척 정도에 얼굴빛은 하얗고 옥 같이 아름다우며 생각이 깊고 학문을 좋아해 속에 깊은 생각과 뜻을 품고 있는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은 이관(李貫)이요 자는 달희(達喜) 였다. 이 여인은 일찍이 결혼하여 남편이 있었는데 이 남편은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이관이 학문을 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이 남편의 이름은 이양(李亮) 이요 자는 초완(草婉) 이였다. 이 두 사람은 비록 농민이었으나 땅도 있고 부자인 편이라 평화롭게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서주 자사 도겸은 다스리는 데 능해서 서주는 부유한 편이였다. 그러나 국가 재정이 황폐해져 과도하게 세율을 매긴 까닭에 백성들은 혼란한 사회와 부패한 지배층의 실상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불만이 쌓이면 백성들은 들고 일어나는 법. 서주에는 혁명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으니 이 사건은 후세에 “황건적의 난”이라고 불리게 된다.
예로부터 난세에는 영웅이 많았다. 난세는 수많은 영웅을 길러 내고 깨우는 법이다. 초한쟁패기에도 유방, 장량, 항우 같은 영웅이 나지 않았던가. 때는 바야흐로 광화 6년(183), 한없이 평화롭고 찬란하던 한나라는 후한 환제와 영제 때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천재지변이 난무하고, 황제 곁에는 간신만이 가득한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난세는 영웅 하나를 깨워내는데, 바로 천공장군 장각이다. 장각은 원래 관리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평범한 선비들 중 하나였다. 중앙에서도 장각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어느 현의 현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장각은 뇌물을 요구하는 관리를 내쳤고 그 일로 원한을 품은 관리가 중앙에 참소하자 곧 삭탈관직을 명하는 조서가 내려왔다. 곧 장각은 부패한 한나라의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고 은거하며 약초를 캐어 내다 파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
어느 날, 장각이 약초를 캐고 있었는데 웬 노인 하나가 장각에게 따라오라 하는 것이 아닌가. 장각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따라가 보니 그 노인이 죽간을 셋 내주며, “이 책은 태평요술이다. 너는 부지런히 배워서 마땅히 하늘을 대신해 교화를 베풀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여라. 그러나 만일에 다른 마음을 품는 날에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이니, 부디 명심하여라.”라고 하는 것이다. 장각이 절하여 사례하고 일어나 보니 그 노인은 홀연히 사라져 있고 죽간 셋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장각은 그 죽간을 소중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장각은 매일 노인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태평요술을 공부했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노인의 기대를 저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공부를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장각의 두 동생, 장보와 장량은 그런 장각이 불만이었다. “형님, 얼마 전부터 왜 약초는 캐지 않고 이런 책만 보고 계십니까? 돈이 다 떨어져 다음 끼니는 굶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장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일어나서 약초를 캐러 산으로 들어갔으나 약초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이미 머릿속이 태평도술로 가득 찼으니. 결국 빈손으로 산을 내려온 장각은 마을로 가서 연마한 태평도술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마침 마을에 역병이 돌아 환자가 차고 넘치던 때였는데, 장각은 마을로 내려가 금, 은 선단을 주고 부적을 써주며 주문을 외워주어 환자를 치료했다. 태평도술은 대성공을 거두어 모든 현에 환자가 차고 넘치는 가운데 장각이 사는 현에만 역병 환자가 없었다. 이 일로 많은 돈과 따르는 무리가 생긴 장각은 태평도술을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채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 장각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장보, 장량이 돈의 출처를 묻자 장각은 태평도술로 전염병을 고치고 받은 돈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우들, 나는 군을 모집하고 농민 봉기를 일으켜 농민들의 천국을 세우려 하네.” 장보와 장량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장각의 태평도술의 위력을 보고 나서는 열렬히 찬성했다. 그날부터 장각은 장보와 장량에게 태평도술을 가르치는 한편 비밀리에 뜻을 같이할 사람을 모으니 제자 500여 명이 모였다. 장각은 도호(도교에서 쓰는 호의 일종)를 태평도인 (太平道人)이라 하고 스스로 천공장군 대현량사 (天公將軍 大賢良師)이라 칭했으며, 장보는 지공장군 (地公將軍), 장량은 인공장군 (人公將軍)이라 칭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퍼트리게 했다.